[골프한국] 가끔 라운드를 갖는 친한 지인 두 분과 함께 프로라는 말을 듣는 분을 초청해 라운드를 가졌다. 두 분은 서로의 실력을 다 아는 가까운 사이지만 프로라는 분은 나와는 초면이었다.

골프장으로 오면서 들은 얘기를 종합해보면 한때는 두 사람에게 몹시 시달린 하수였지만 지금은 연습을 열심히 하고 라운드 경험도 많아 꾸준하게 70대 중반을 치는 완전한 싱글로 변모해 있는 듯했다. 다만 옆에서 조금만 신경 쓰이는 행동을 보이면 절로 리듬을 잃고 무너진다는 단점이 있다고 했다.

골프장에 도착할 때쯤 두 지인은 프로 수준으로 변한 왕년의 하수를 번 혼내주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얘기를 듣다 보니 나도 어느새 두 사람과 한편이 되어 일주일에 서너 번 라운드 한다는 프로 같은 아마추어를 혼내주는 모의에 동참하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골프장 식당에서 첫 대면을 했는데 아닌 게 아니라 골프를 잘 칠 것 같은 외모를 갖고 있었다. 내가 그리고 있는 골프를 잘 칠 것 같은 외모란, 몸이 호리호리하고 키는 보통이면서 얼굴을 가무잡잡하게 그을었고, 손등과 팔뚝은 검게 그을려 필요한 근육이 적당히 발달된 그런 외모다. 우람하거나 근육질의 체격을 갖고 골프를 잘 치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식당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펼치는 모습이 역연했는데 나도 그만 그런 분위기에 이끌려 ‘오늘 뭔가 확실히 보여주어야겠구나!’하는 다짐을 하고야 말았다. 뭔가 보여주려 하다간 내가 추락하는 사례를 수없이 겪어 온 터라 ‘이러면 오늘 라운드를 망칠 텐데’하는 우려가 없지 않았지만 자신도 모르게 두 지인의 모의에 동참한 입장이 되어 있었다.

첫 홀부터 네 명은 모두 적으로 변해 있었다. 모의과정에선 한 명을 혼내 준다고 얘기가 모아지는 듯했으나 막상 라운드가 시작되니 서로가 모두 세 명을 적으로 삼아 플레이하는 상황으로 변하고 말았다. 물론 프로라는 분한테 보이지 않는 이런저런 방해공작이 집중되었으나 동시에 스스로도 돈은 잃지 않겠다는 각오가 대단해보였다.

예상대로 집중 공격대상이 된 프로라는 분은 하이에나 무리에 쫓기는 늙은 사자처럼 절룩거리기 시작했고 나머지 셋의 플레이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그러나 홀이 늘어날수록 지나치게 승부에 매달린 나머지 모두의 성적이 영 말이 아니었다. 본래 자신들의 호흡대로 자기 플레이를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을 붙들고 늘어지기 위한 플레이를 하니 게임이 제대로 풀릴 까닭이 없었던 것이다.

겉으로는 웃으면서, 속으로는 타도를 외치는 분위기의 라운드는 꽤 힘들었다. 스코어는 네 명 모두 80대 초중반. 한두 타 차이가 있었지만 아무 의미가 없는 스코어였다. 프로라는 분은 70대 초반을 치는 코스에서 80대를 쳤다며 억울해 했고 나머지 두 분은 확실하게 혼을 내주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그리고 나는 괜히 적대적 게임에 휘말려들어 근래 보기 드문 추한 라운드를 하고 말았다는 자책감을 떨칠 수 없었다.
상대방을 혼내주겠다는 마음의 폭탄은 결국 각자를 산산조각 내고 말았던 것이다.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뉴스팀 news@golfhankook.com 

저작권자 © 골프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