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투어 플레이오프 2차전 네드뱅크 챌린지 2위

왕정훈(21)이 13일(현지시간) 막을 내린 유럽프로골프투어 네드뱅크 골프 챌린지에서 단독 2위에 올랐다. 사진제공=아이에스엠아시아
[골프한국] 롤러코스터(roller coaster)는 고속에다 중력을 거스르는 비상과 낙하로 탑승자로 하여금 비명을 지르게 하면서도 짜릿한 쾌감을 안긴다. 평소 체험할 수 없는 속도감과 중력을 뛰어넘는 예측불허의 수직 이동이 롤러코스터의 매력이다.

롤러코스터는 17세기 무렵 러시아에서 인기를 모은 얼음 미끄럼 타기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미터 이상의 가파른 목재 미끄럼틀 위에 얼음을 얼려 나무토막이나 얼음조각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 모래밭에 멈추는 놀이였다. 19세기 초 프랑스에선 트랙과 트랙 위를 미끄러지는 카트로 이뤄진 롤러코스트가 등장해 공중회전의 묘기까지 선보였다. 미국에선 산을 넘어 석탄을 실어 날랐던 협궤철도가 롤러코스터의 원조다. 펜실베니아 산악지대의 탄광이 폐쇄되자 쓸모없게 된 협궤철도를 놀이시설로 활용, 경사진 철도를 미끄러지며 주변의 경치를 즐기는 관광상품으로 개발되었다고 한다.

인공적인 놀이시설로 본격적인 롤러코스터가 등장한 것은 1884년. 뉴욕 코니아일랜드에 높이 15미터 길이 180미터의 가파르고 뒤틀린 트랙이 만들어져 미국인의 사랑을 받았다. 당시 카트의 최고속도가 시속 16km로 오늘날의 시속 190km 전후에 비할 바가 못 되지만 비명과 탄성이 터지는 놀이로 각광을 받았다.

10세기 전후 스코틀랜드에서 발원한 뒤 몇 차례 쇠락의 위기를 넘기고 이어져온 골프가 오늘날 가장 열광적인 애호가를 거느린 스포츠의 하나로 각광받는 것은 그 속성이 롤러코스터와 너무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롤러코스터가 주는 쾌감의 원천이 예측불허의 추락과 급상승에 있듯 골프 역시 한결같은 흐름과는 거리가 먼 추락과 반등이 늘 같이 한다. 천재 소리를 듣는 골퍼가 느닷없이 추락하는가 하면 부진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골퍼가 새로 태어난 듯 화려하게 상승기류를 타기도 한다. 한결같이 상승곡선을 그리는 골퍼는 없다. 물결처럼 상승과 하강 곡선을 그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물론 여기엔 예상 밖의 추락과 급상승이 등장한다. 이 때문에 좌절과 함께 안도와 환희를 맛보기도 한다. 골프 최대의 매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골프는 롤러코스터와 흡사하다. 완만한 속도의 편안한 주행에 안주하다간 급상승과 급추락을 이겨내지 못한다. 골프란 스포츠의 속성이 추락과 반등이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있는 만큼 추락과 상승을 자연스럽게 흡수하지 못하면 골퍼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3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선시티 게리 플레이어CC에서 열린 EPGA(유럽프로골프투어) 네드뱅크 챌린지에서 EPGA투어의 루키 왕정훈(21)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극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PGA투어 플레이오프 성격의 파이널시리즈 2차전인 이 대회에서 왕정훈은 3타 차이 선두로 마지막 라운드를 시작, 시즌 3승과 함께 지난해 안병훈(25)에 이은 한국선수 신인왕 연속 등극을 앞두고 있었으나 바로 앞조에서 신들린 플레이를 펼친 스웨덴의 알렉산더 노렌(34)에게 역전을 허용하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이 대회에서 가장 극적으로 롤러코스터의 묘기를 보여준 선수는 물론 바이킹의 후예 알렉산더 노렌이다. 1라운드 3언더파, 2라운드 5언더파로 순조로운 상승세를 타던 그는 3라운드에서 더블보기와 보기가 속출하는 플레이로 3오버파로 추락하며 우승권에서 멀어지는 듯 했다 그러나 4라운드 첫 홀부터 3연속 버디로 치솟으며 전반에만 6타를 줄이는 불가사의한 플레이를 펼쳤다. 후반 들어서도 그의 비상은 멈추지 않았다. 한 번의 보기가 있었지만 이글과 버디 2개로 3타를 더 줄여 9언더파란 기적의 플레이로 3타를 잃은 왕정훈에 6타 앞선 완벽한 우승을 거두었다

비록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왕정훈 역시 슬기롭게 롤러코스터를 탈 줄 알았다. 1라운드 4언더파로 공동선두로 쾌조의 출발을 한 그는 2라운드에서 덜컹거리며 1타를 잃었으나 3라운드에서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와 이글과 버디6개로 8언더파를 몰아치며 선두로 나섰다.

4라운드에서 왕정훈은 빠른 속도의 롤러코스터에 겁먹은 아이처럼 자신 없는 플레이로 자주 페어웨이를 놓치고 온 그린에도 번번이 실패했다. 지난 5월 모로코 하산 2세 트로피대회와 아프라시아뱅크 모리셔스 오픈 우승으로 신인으로서 확실한 존재감을 심었지만 21살의 루키로서 파이널시리즈 대회에서 유럽의 강호들과 경쟁한다는 게 벅차 보였다.
같은 조의 루이 우스투이젠과 앤디 설리번을 비롯, 세계 랭킹 4위인 헨릭 스텐손, 마틴 카이머, 빅터 뒤비송, 크리스 우드 등 기라성 같은 선수들이 즐비해 애송이 왕정훈이 과연 마지막 라운드의 압박감을 이겨낼까 우려되었다.

드라이버나 아이언 비거리도 뒤지고 코스조차 생소해 비명이 나올 법 했으나 정신을 잃지 않고 끝까지 퍼팅감을 놓치지 않는데 성공해 준우승을 지켜낸 것만도 대단하다. 왕정훈은 파이널시리즈 랭킹 15위로 60명이 겨루는 최종전 DP월드 투어챔피언십(두바이)에 진출하게 돼 신인왕 가능성도 높아졌다.

왕정훈은 2013년부터 아시안투어에 발을 들여놓았으나 투어카드를 잃었다가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해왔다. EPGA투어 출전자격도 없었다. 아시안투어 선수자격으로 대기 순번에 이름을 올려놓고 기다리다 운이 닿아 출전을 통고받고 아버지 만류를 뿌리치고 모로코로 날아갔다. 그리고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역전극을 펼치며 연속 우승, 유럽 골프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180cm 73kg의 훤칠한 체격을 가졌지만 아직은 기량이나 정신력에서 앳된 티를 벗지 못한 느낌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경기경험이 쌓이면서 골프가 안겨주는 모든 상황을 즐기며 인내심을 갖고, 포기하지 않고, 기회를 기다릴 줄 알고, 기회가 오면 몰입할 줄 아는 선수로 성숙해가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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