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경(28)에게 인고(忍苦)6년은 달마대사의 면벽좌선(面壁坐禪) 9년과 다름없을 것이다.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로 추앙받는 보리달마(菩提達磨, Bodhidharma)는 남인도 마드라스지방 출신으로 불법(佛法)을 전하기 위해 중국 양()나라로 건너와 무제(武帝)와의 선문답으로 황제인 무제를 당혹케 한 뒤 소림사(少林寺)의 동굴에서 9년 동안 벽을 마주보고 앉아 선정에 들어간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달마대사의 9년간의 면벽좌선과 김인경의 6년의 인고를 같은 저울에 올려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달마대사의 면벽좌선은 해탈을 위한 선정이었고 김인경의 인고는 패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김인경이 2일 중국 베이징 근교 레인우드 파인밸리GC에서 열린 LPGA투어 '아시아스윙' 첫 대회 레인우드 LPGA클래식에서 값진 역전 우승을 일궜다
▲6년만에 LPGA 정상에 오른 김인경이 우승컵에 입을 맞추고 있다. LPGA 제공


2010LPGA 투어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 우승 이후 6년만이고 LPGA투어 통산 4승째다.

그동안 김인경은 LPGA무대에서 우승이 없는 6년이란 세월을 견뎌내야 했다. 기량이 출중한 후배들이 속속 등장해 우승 퍼레이드를 벌이는 것을 지켜보며 절치부심의 기간을 보냈다.

특히 2012년 메이저대회인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ANA 인스퍼레이션) 마지막 라운드 18번 홀에서 50도 안 되는 우승 퍼트를 놓쳐 연장전에서 유선영에게 우승컵을 넘겨준 뒤에 그가 겪은 나락의 세계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 전에도 2007LPGA투어 웨그먼스 클래식에서 마지막 두 홀을 남기고 세 타를 앞서가다 로레나 오초아에게 역전패 당하는 아픔을 겪었지만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패배의 충격만큼은 아니었다.

이후 비운의 골퍼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녔고 매년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이 열릴 때마다 리바이벌 되는 짧은 퍼팅을 놓치는 장면과 허탈한 표정은 그의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

보통 선수였다면 좌절의 늪을 헤매다 일찌감치 포기하고 짐을 쌌을 텐데 김인경은 극한을 치닫는 인내심으로 자신을 다스리며 도전에 도전을 거듭했다.

2011LPGA 에비앙 마스터즈 공동 3, LPGA투어 로레나 오초아 공동 2, 2012LPGA 투어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2, 2013LPGA투어 KIA클래식 2, 2013LPGA투어 US여자오픈 2, 2014년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 ISPS 한다 레이디스 유러피언마스터스 우승, 2014LPGA투어 포틀랜드클래식 2, 2015LPGA 롯데 챔피언십 3, 2016LET ISPS 한다 레이디스 유러피언마스터스 우승 등 결코 얕잡아볼 수 없는 성적이 그에겐 희망의 불씨였다.

그럼에도 골프팬들 사이에선 김인경의 재기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없지 않았다. 새로 등장하는 선수들, 특히 한국에서 건너오는 어린 선수들이 신체적인 조건은 물론 기량 면에서 뛰어나 단신(160cm)의 김인경이 그 틈에서 재기를 노린다는 것이 무리인 것처럼 비쳤다.

17세 때인 2005년 미국주니어골프투어(IJGT) 챔피언십 우승, 미국주니어골프투어 토너먼트 우승에 이어 2005US 여자주니어골프선수권대회마저 휩쓸고 2006LPGA투어 Q스쿨을 공동 1위로 통과하는 등 화려했던 주니어시절은 흘러간 과거로 치부되는 듯했다.

그러나 김인경은 레인우드 LPGA클래식에서 크래프트 나비스코 충격을 뛰어넘어 한 차원 높은 선수로 다시 태어났음을 훌륭히 증명했다.

사실 김인경은 이번 대회에서 우승경쟁을 벌인 다른 선수들에 비해 여러 모로 차별화되었다. 우선 신장 면에서 불리했고 파워나 비거리도 뒤졌다. 그와 우승경쟁을 벌인 176cm의 허미정을 비롯해 이미림, 펑샨샨, 아리야 주타누간, 양희영 등과 비교하면 대학생들이 벌이는 경기에 중학생이 참가한 느낌을 줄 정도다. 브룩 핸더슨은 신장은 크진 않지만 파워나 비거리는 김인경을 앞섰다.

그럼에도 힘찬 스윙과 긴 비거리를 자랑하는 경쟁자들에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자신만의 플레이를 펼쳐나가는 김인경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볼을 길게 힘차게는 날리지 못하지만 대신 또박또박, 정확하게, 그린에서는 더욱 정밀하게 볼을 다룰 줄 알았다.

김인경이 6년간의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오며 얼마나 많은 정신적 수련과 육체적 단련을 해왔는지 느낄 수 있었다.

연습벌레답게 신체적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한 훈련은 기본이었겠지만 특히 유난히 깊은 마음속의 트라우마를 씻어내는 정신수련이 어떠했는가를 짐작해보면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다.

오래 전부터 불교에 심취해온 것으로 알려진 김인경은 크래프트 나비스코 충격이후 마음 수련을 위해 인도네시아에서 단식수련을 하는가 하면 인도의 요가센터를 찾아 요가명상을 체득했다고 한다. 이 정도면 달마대사의 면벽좌선 9년의 각고(刻苦)와 흡사하지 않은가.

구도자를 방불케 하는 이 같은 처절한 마음 수련으로 아픈 트라우마를 말끔히 씻고 한 차원 높은 새로운 선수로 거듭 난 김인경은 그를 아끼는 골프팬들에겐 정말 경험하기 힘든 감동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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