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스코틀랜드에서 열린 리코 위민스 브리티시오픈에서 우승하면서 27세의 어린 나이에 LPGA투어의 네 개 메이저대회 타이틀을 모두 석권하는 커리어 그랜드슬램의 위업을 달성한 박인비는 올해 리우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골든 그랜드슬램이란 새로운 금자탑을 세웠다.

그 누구도 살아있는 골프의 전설이 된 박인비의 업적과 골프코스에서 펼치는 그의 천의무봉 에 가까운 플레이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박인비가 자신이 이룬 업적만큼 과연 최고의 골프선수인가에 대한 물음엔 의견이 엇갈린다. 엄밀히 말해서 그에게서 딱 부러지게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신체조건, 스윙, 비거리 등은 최고 수준과는 거리가 멀다.

우선 그의 스윙은 수많은 골프교본과 레슨프로들이 가르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드라이브 샷을 포함한 거의 모든 스윙이 4분의 3에 머물고 코킹도 충분히 이뤄지지 않는다.

스윙 플레인도 유소연, 최나연, 미셸위, 리디아 고, 김효주, 이미림 양희영 등 LPGA투어의 대표적 스타일리스트들이 보여주는 것과는 다르다.

물론 이런 박인비만의 스윙은 톱 스윙에서 손목을 뒤로 제칠 수 없는 신체적 특성 때문에 나온 것이지만 교과서적인 스윙을 철칙처럼 배운 프로는 물론 아마추어들도 고개를 젓는 그런 스윙이다.

신체적인 조건도 프로 골프선수에 적합해보이지 않는다. 미셸 위나 리디아 고, 김효주 등처럼 허리가 날씬해 몸통의 꼬임이 극대화한 힘차고 아름다운 스윙을 구사하는 선수와는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지구촌 골프역사에 새로운 장을 장식하며 살아 있는 전설이 된 까닭은 무엇일까.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그의 타고난 평정심과 함께 썩 아름답지도 완벽하지도 않은 평범한 스윙에서 답을 찾게 된다. 자신의 신체조건에 맞는 스윙, 유별나지 않고 언제나 재현 가능한 익숙한 스윙을 체득해 코스에서의 실수를 최소화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메이저대회인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우승, LPGA투어 2승을 모두 메이저대회로 장식한 전인지(22) 역시 눈이 번쩍 할 정도의 화려한 퍼포먼스는 보이지는 않는다.

그의 스윙은 우아하기는 하지만 힘차거나 날카롭지 않다. 박인비와 달리 교과서적인 스윙은 터득했지만 전체적으로 무던하다는 느낌을 준다.

다이나믹하고 날카로움이 느껴지는 샷을 구사하는 렉시 톰슨, 미셸 위, 브룩 핸더슨, 브리타니 랭과는 다르다.

전인지와 박인비는 화려한 장타자도 아니고, 짜릿한 아이언 샷을 구사하지는 않지만 기복 없는 무던한플레이와 담담하고도 평온한 표정으로 골프코스에서 무결점에 가까운 경기를 펼치는 것을 보면 노자(老子)대교약졸(大巧若拙)’이란 말이 떠오른다.

대교약졸은 노자의 도덕경45장에 나오는 말로, 전문은 아래와 같다.

大成若缺, 其用不弊. 大盈若沖, 其用不窮. 大直若屈, 大巧若拙, 大辯若訥. 靜勝躁, 寒勝熱. 淸淨爲天下正.’(크게 완성된 것은 마치 부족한 듯하지만 그 쓰임이 닳아 없어지지 않는다. 크게 가득 찬 것은 마치 비어 있는 듯하지만 그 쓰임이 끝이 없다. 크게 바른 것은 마치 굽은 듯하고, 크게 솜씨가 좋은 것은 마치 서툰 듯하며, 크게 말 잘하는 것은 마치 어눌한 듯하다. 고요함은 떠들썩함을 이기고 차분함은 열기를 이긴다. 맑고 깨끗한 것은 천하의 바른 길이다.)

대교약졸이란 보기엔 서툴고 졸렬한 것 같지만 실은 대단한 고차원의 솜씨라는 것이다. 소박하고 졸렬한 듯하지만 기교가 최대한 배제된 무위자연의 졸박미(拙樸美)야말로 최고의 기교라는 철학관이다.

박인비나 전인지 같은 선수가 화려한 스윙을 자랑하는 선수들에 비해 실수를 최소화하면서 자신의 리듬을 지켜나가는 견실한 플레이를 펼쳐나가는 이유는 자신들은 의식하지 않고 있겠지만 스스로 대교약졸(大巧若拙)’의 철학을 터득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렇게 장황하게 박인비와 전인지의 예를 든 것은 골프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박성현(23) 얘기를 하기 위함이다.

이미 KLPGA투어에서 여왕의 자리에 오른 박성현은 에비앙챔피언십에서 전인지와 대접전을 펼쳐 세계 골프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남자를 방불케 하는 힘찬 스윙과 톱클래스 수준의 비거리, 아이언 다루는 능력과 카리스마를 풍기는 외모 등은 LPGA투어의 흥행을 견인해줄 스타로의 부상을 예견케 했다. 주저함이 없이 활처럼 휘어지는 허리의 꼬임은 아무도 흉내 내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박성현의 골프백엔 남달라라는 글자가 새겨져있다. 에비앙챔피언십 때는 영어로 ‘Namdalla’로 새겨져 있었다.

남들처럼 평범한 스윙, 평범한 플레이가 아닌 남과 확실히 다른 플레이를 펼치겠다는 각오와 다짐이 전해진다.

보다 나은 스윙과 기량을 보이겠다는 정신은 바람직하다. 박성현이 오늘의 기량에 오른 것도 이런 자세가 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골프의 최고 덕목은 유별난 기술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샷을 실수 없이 완벽하게 재현하는 데 있다.

경기 때마다 남다른플레이를 펼치겠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창의적인 기량을 배우고 터득하는 것은 좋지만 실제 경기에선 실수를 최소화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해야 승률을 높일 수 있다.

골프백에 남달라를 새겨 넣을 정도로 지나치게 남다른 플레이에 얽매여선 평정심을 바탕에 깐 담담한 플레이를 펼치기 힘들다



남다른 플레이를 펼치겠다는 것은 남보다 과감하고 도전적이고 저돌적인 플레이를 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만큼 미스 샷의 확률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쩌면 남달라가 박성현에게 강박관념이 되어 부정적 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미 박성현은 충분히 남다른 기량과 플레이를 펼치고 있다.

우승컵을 차지하는 선수들의 경기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듯 유별나지 않는 평범한 플레이가 승리의 바탕이 된다는 것을 박성현이 깨달았으면 좋겠다.

이때 비로소 대교약졸(大巧若拙)’의 진리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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