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A투어 마지막 메이저대회 에비앙챔피언십이 끝난 지 1주일 만에 열린 KLPGA투어 미래에셋대우 클래식은 여러모로 우리 골프팬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전인지(22)와 인상적인 우승경쟁을 벌이다 공동2위를 차지한 박성현(23)이 여세를 몰아 안방 KLPGA투어 경기에서 승수를 보탤 것인가, 먼저 LPGA투어에 진출해 파이터로서의 명성을 얻은 김세영(23)과의 맞대결에서 과연 누가 승리를 거둘 것인가 팬들은 궁금했다객관적인 상황을 놓고 보면 박성현과 김세영의 승부는 예측할 수 없으나 김세영만 제친다면 큰 어려움 없이 승리를 쟁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2라운드까지 공동선수로 나섰던 박성현은 마지막 3라운드에서 올 시즌 가장 저조한 6오버파 78타를 쳐 공동17위에 머물렀고 우승은 양채린(21)에게 돌아갔다. 양채린은 합계 10언더파 206타로 정희원(25)과 동타를 이뤄 세 홀 연장전 끝에 우승을 차지했다. 박성현은 중위권에 머물다 뒷심을 발휘해 9언더파로 공동 3위에 오른 김세영에게도 밀렸다


1주일 전 LPGA투어의 강자들과 각국의 우수 초청선수들이 열전을 벌인 메이저 대회에서 세계 골프팬들은 물론 참가선수들의 눈을 휘둥그레 하게 만든 박성현이 내년 시드 확보를 걱정하는 선수에게 우승컵을 내주었다는 것은 쉬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올 시즌 단독선두 또는 공동선두로 마지막 라운드에서 나서서 한 차례도 우승을 빼앗긴 적이 없는 박성현이기에 무명선수에게 역전패 당했다는 것은 의외다.  그러나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골프에선 무슨 일이든 일어나기 때문이다. 예기치 않은 추락과 비상이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는 스포츠가 골프다.

좋은 신체조건에 훌륭한 기량을 갖추면 훌륭한 선수가 되고 좋은 성적을 낼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불리한 신체조건에도 피나는 노력으로 승리를 쌓아가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좋은 신체조건과 좋은 기량을 갖추고도 도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교과서 같은 이상적은 스윙을 갖고 있는 선수가 승리와 인연이 멀거나 저건 아닌데싶은 스윙을 가진 선수인데도 의외로 승리를 잘 챙기는 경우도 있다.

신체조건이나 소질, 기량 면에서 보면 천하의 타이거 우즈가 아마추어 주말골퍼 수준으로까지 추락하리라곤 상상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한때 세계 랭킹 1위에까지 올랐던 PGA투어의 데이비드 듀발이나 LPGA투어의 청야니가 중위권에도 들지 못하는 것 역시 골프팬들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나 골프라는 스포츠가 수많은 경우의 수가 만나 만들어내는 조합의 경기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골프에서 벌어지는 황당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을 수긍할 수 있다.  골프에서 경기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의 수를 들라면 끝이 없을 것이다.

우선 타고난 신체조건, 자신만의 운동습관, 누적된 연습량, 부상 여부, 경기를 펼치는 시간과 공간의 변수, 계절과 날씨, 경쟁해야 할 선수와 동반자에 대한 감정, 골프코스에 대한 친밀도, 그때 그 시간 자신의 골프감각, 캐디와의 교감 정도, 그날의 생체리듬, 골프 외에 사소해 뵈는 개인적인 문제 등 수많은 경우의 수가 서로 맞물려 화학반응을 일으키고 이 화학반응에 골프는 절대적인 영향을 받게 돼있다.

타이거 우즈를 예로 들자면 좋은 신체조건, 천부적 소질, 어릴 적부터 쌓인 많은 연습량 등은 긍정적 경우의 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골프선수로서 맨 꼭대기에 오른 뒤에 더 오를 곳이 없다는 자만심과 목표의식의 상실, 지나치게 과격한 스윙에 따른 잦은 부상, 경기를 앞두고 나타나는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한 여성편력, 이로 인한 가정의 혼란 등은 부정적 경우의 수다. 전자의 경우와 후자의 경우가 서로 뒤섞일 때 어떤 화학반응이 나타날지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박성현의 경우 남이 흉내 내기 어려운 멋진 스윙, 장타력, 탁월한 아이언 다루는 솜씨, 흔들림 없는 일관성, 외부의 상황에 영향 받지 않는 정신력 등 긍정적 경우의 수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미래에셋대우 클래식에서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없었던 것은 큰 대회에서 예상 밖의 성과를 얻은 뒤에 찾아오는 정신적 이완, 장시간 이동과 휴식 없는 강행군에 따른 육체적 정신적 피로, 주변에서 보여주는 지나친 기대감, 대결구도를 만들어 즐기는 대중들에 대한 불편한 심기 등이 부정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 아닐까 여겨진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경우의 수는 불가항력적이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해결의 열쇠는 주어지는 수많은 경우의 수를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있다.

주어진 경우의 수를 피할 수는 없지만 경우의 수를 어떻게 조합하는가는 자신에게 달려있다. 주어진 환경과 상황에 휩쓸려 홍수에 떠내려가듯 그냥 쓸려가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경우의 수 효과를 극대화하고 부정적인 경우의 수 효과를 최소화 할 수 있도록 지혜로운 조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고도의 평정심, 얼음처럼 차가운 냉철함, 진흙탕 속에 피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 같은 고고함, 안팎의 충격을 스스로 완화시키는 정신적 정화능력 등이다.

진정 훌륭한 골퍼란 주어진 경우의 수에 수동적으로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경우의 수를 냉철하게 파악하고 상황에 맞게 지혜롭게 조화하며 긍정의 조합을 만들어내는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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