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정(17·영파여고)이 8일(한국시간) US여자아마추어골프선수권대회 정상에 올랐다. 사진은 2013년4월20일 넥센 세인트나인 마스터즈 2R의 모습이다. ⓒ골프한국
[골프한국] 성은정에게 ‘괴물(monster)'이라는 수식어는 천형(天刑)인 것 같다.

1999년 10월31일 생이니 2개월 정도 모자란 만 17세다. 175cm의 키에 또래 남자 고등학생에도 뒤지지 않을 잘 발달된 골격과 근육으로 무장한 성은정은 흠잡을 데 없는 스윙을 체득, 동반자들을 주눅 들게 한다. 드라이버로 250m 이상을 날리고 아이언으로 200m까지 보낼 수 있는 파워, 정교한 어프로치샷, 늘 홀을 지나치는 자신감 넘치는 퍼팅, 나이에 걸맞지 않는 놀라운 집중력 등 그는 골퍼가 갖춰야 할 장기는 골고루 가졌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우승 퍼레이드가 시작되면서 성은정에겐 자연스럽게 ‘괴물’이란 애칭이 따라붙었다. 2011년 한국 여자아마투어 골프선수권대회 초등부 우승을 시작으로 주니어대회와 성인 아마추어 대회를 거의 석권, 자녀를 골프선수로 키우려는 골프 대디들에겐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2014년 US 여자아마추어 퍼블릭링크스 대회에 출전,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자신감을 얻은 그는 2015년 US 여자 주니어선수권대회에 도전, 우승컵을 거머쥐고 지난달 24일 같은 대회에서 또다시 우승을 차지하며 USGA(미국골프협회) 사상 새로운 기록을 작성했다. USGA가 주최하는 대회의 결승 진출자 최연소 기록과 함께 1949년 US 여자주니어선수권대회가 출범한 후 2년 연속 우승한 세 번째 선수가 되었다. 주디 엘러이가 1958년 이 대회 2연패를 달성했고, 홀리스 스테이시는 1971년 3년 연속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한국 선수로는 1998년 박지은이 우승한 후 18년 만이다.

그의 질주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US 여자 주니어선수권대회가 끝난 지 2주도 채 안된 지난 8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스프링필드 롤링그린GC에서 36홀 매치 플레이로 치른 결승에서 이탈리아의 비르지니아 엘레나 카르타에 1홀 차이로 극적 우승하면서 106년 USGA 사상 최초로 같은 해에 US 여자 주니어선수권대회와 US 여자 아마추어선수권대회를 동시에 석권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USGA 홈페이지는 USGA 사상 처음 같은 해에 로버트 콕스 트로피(US 여자 아마추어선수권)와 글레나 콜렛 베어 트로피(US 여자 주니어선수권)를 차지한 성은정의 소식을 대서특필했다.
전에도 교포인 펄신(1988년 US 여자아마추어 퍼블릭링크스 선수권, US 여자아마추어선수권)과 제니퍼 송(2009년 US 여자아마추어 퍼블릭링크스 선수권, US 여자아마추어선수권)이 같은 해에 2승을 거둔 적이 있지만 모두 성인대회고, 주니어선수권대회 우승자가 성인 아마추어선수권까지 차지한 것은 성은정이 처음이다. 

성은정에겐 USGA 사상 희귀한 대기록을 세운 것 자체도 대단한 경험이었지만 비르지니아 엘레나 카르타와 펼친 36홀 결승전은 두 번 다시 접할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이었다.
지난 6월 KLPGA투어 비씨카드·한경 레이디스컵 최종 라운드에서 17번 홀까지 단독 선두로 질주하다 18번 홀(파5)에서 통한의 트리플보기를 하면서 연장전에서 오지현에게 우승컵을 내준 쓰라린 경험이 있지만 이번 US 여자아마추어선수권 결승전에서의 경험은 전혀 차원이 달랐다.

지난 5월 미국 대학 여자골프선수권대회 개인전 우승을 차지한 강자 카르타와의 숨 막히는 승부에서 보여준 놀라운 집중력도 인상적이었지만 카르타가 후반에 어지럼증으로 고통을 겪으면서 벌어진 상황은 성은정에게 골프가 품고 있는 위대한 철학을 깨닫게 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성은정이 리드하는 가운데 카르타가 어지럼증을 호소하면서 자칫 성은정이 리듬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 벌어졌다. 의료진이 카르타에 따라 붙고 진행요원이 차가운 물수건을 건네는가 하면 그늘에서 한동안 쉬도록 하기도 했다.

승리를 눈앞에 둔 성은정으로선 상대방으로 인해 리듬을 잃는 것을 걱정하며 초조해질 위험이 있었으나 ‘골프란 배려의 스포츠’라는 대전제를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짜증난다거나 초조한 기색 없이 상대방이 정상을 되찾을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었다. 마지막 36번째 홀을 맞아 한 홀까지 추격을 당했지만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 12m 롱퍼팅을 성공시켜 대미를 장식했다.

성은정은 아무리 빅 매치라 해도 상대가 불리한 상황에서 경기를 강행해 이기는 것이 골프가 아니라는 것을 체득했을 것이다. 이 경험은 성은정이 골프선수로 활약하는 동안 그를 지켜주는 귀중한 대들보가 될 것이다.  

성은정은 만 18세가 되는 내년 11월 KLPGA투어 정회원 자격을 얻어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프로로 뛸 전망이지만 이번 대회 우승으로 내년 US여자오픈은 물론 ANA 인스퍼레이션, 브리티시여자오픈, 에비앙 챔피언십 등 LPGA 투어 주요 메이저대회 출전권을 확보, 프로무대 데뷔 전에 그의 활약을 보게 됐다.

KLPGA투어에서 독주체제를 보이는 박성현은 물론 LPGA투어의 리디아 고, 아리야 주타누간, 브룩 핸더슨 등 강자들과 어떤 대결을 펼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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