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39)가 제71회 US여자오픈을 끝으로 사실상 25년의 길고 긴 골프 대장정을 사실상 마감했다. 사진제공=하나금융그룹
[골프한국] 박세리가 25년의 길고 긴 골프 대장정을 사실상 마감했다.
제 71회 US 여자오픈을 마지막으로 미국에서의 LPGA투어 생활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던 박세리는 7월 8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마틴 코드베일GC에서 시작된 US 여자오픈에 USGA(미국골프협회) 초청으로 참가해 컷 탈락, LPGA투어 선수로서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공식 은퇴식은 아니었지만 2 라운드 마지막 홀에서 퍼팅을 마치고 홀 아웃 하는 박세리를 USGA(미국골프협회)와 LPGA 관계자들이 도열해 포옹해주고 그동안 동고동락했던 한국의 후배 선수들은 물론 각국 선수들이 눈물의 포옹으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박세리(39)에게 골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얼핏 물으나마나한 질문처럼 보이지만 박세리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결코 일반 골프팬들이 생각하는 범주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소식 외에 그로부터 솔직한 속 얘기를 들을 기회는 없었지만 그동안 박세리가 이룬 업적과 이에 따른 환희와 감동, 이를 위해 그가 쏟은 열정어린 노력,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가 겪었을 갈등과 후회 등이 촘촘한 그물처럼 얽혀 있을 것이다.

14세 때 아버지의 인도로 골프를 시작해 지금까지 걸어온 그의 골프여정은 바로 한국 여자골프와 궤를 같이한다. 1997년 Q스쿨을 거쳐 LPGA투어에 발을 들여놓은 박세리가 쌓아올린 금자탑은 아무리 칭송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첫해 메이저 2승을 포함해 4승을 올린 것을 비롯, LPGA 통산 25승(메이저 5승)에 동양인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그의 업적은 아무리 뛰어난 후배라 해도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다.

박세리의 진정한 위대함은 이처럼 화려한 개인적 성공이 아니라 한국국적 또는 해외교포를 불문하고 태극낭자들이 세계 여자골프의 지배세력으로 급부상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박세리의 LPGA도전에 자극받은 또래들의 잇단 미국 진출, 박세리의 극적인 우승 장면을 지켜보고 프로골퍼의 꿈을 키운 세리키즈의 등장, 이 세리키즈의 성공에 용기를 얻은 세리키즈의 키즈 등이 나타나 한국 여자골프의 도도한 흐름을 형성한 것이다.

한국에 뿌리를 둔 다국적 태극낭자들의 맹활약은 LPGA투어 선수들에게도 자극을 주고, 아시아나 유럽의 골프 변방국 청소년들에게 영감을 주어 LPGA투어의 수준을 업그레이드 시키는데도 큰 역할을 해내고 있다. 박세리가 겁 없이 LPGA에 도전장을 내밀지 않았다면 한국은 골프에 관한 한 아시아의 변방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대회 때마다 리더보드 톱10의 절반 이상을 태극낭자들이 차지하는 현상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의 한국 여자골프는 박세리를 빼곤 설명할 수 없다. 박세리는 한국 여자골프 비상의 촉발자이자 원동력 그 자체다.

그러나 그의 골프역정이 영광과 보람으로만 점철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성공의 뒤안길이 어떠했는지 잘은 모르지만 단편적으로 전해지는 뉴스 혹은 소문들을 모아보면 그가 늘 영광과 환희, 보람에 찬 선수생활을 보내지 않았음을 알아챌 수 있다.
정규 교육을 제쳐놓고 오직 골프만을 위해 혹독한 훈련을 받은 청소년시절에 대한 회의, 그리고 그런 길을 강제로 이끈 아버지에 대한 원망, 박세리가 성공한 뒤 아버지와 얽힌 소문과 사건들, 골프에 전념하면서 경험할 수 없었던 다른 세계에 대한 동경과 지적 결핍감, 다양한 취미활동을 하며 공부하면서 골프를 하는 새로운 세대와의 괴리감, 기량 면에서 후배들에게 쫓기는 초조감, 전과 같지 않은 골프에 대한 재미와 의욕 등등 어떤 형태로든 그에게 정신적 스트레스를 안겨준 부분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골프를 빼고 나면 과연 나는 어떤 존재인가’ ‘골프를 할 수 없을 때 나는 어떤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와 같은 존재론적 의문을 던질 때 그는 답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국의 골프팬들이 “우리나라에는 왜 줄리 잉스터나 캐리 웹, 로라 데이비스 같은 주부골퍼, 40대가 넘어도 딸 같은 젊은 선수들과 당당히 대결하는 골퍼가 나타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도 그에겐 적지 않는 압박감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원하는 걸 모두 갖고, 원하는 걸 모두 이룰 수 없는 게 인생이다.
그가 이룬 것만으로도 존경을 받고 보람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선수로서는 골프채를 놓지만 눈앞에 다가온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한국 여자골프 대표팀의 코치를 맡아 좋은 성과를 올려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후배를 위한 골프아카데미를 계획하고 있다고 하니 그에겐 ‘제2의 전성기’가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미국 언론과의 작별 기자회견에서 박세리는 “나는 세계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다.”라고 했다는데 이 말대로 은퇴 이후의 계획대로라면 그는 정말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이다.

박세리가 성공적으로 ‘제2의 전성기’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인가 여부는 전적으로 자신의 마음 자세에 달린 문제가 아닐까.
아버지가 이끌었지만 자신이 좋아서 그 길을 갔다. 그 길에서 위대한 업적을 쌓았지만 ‘골프 바깥의 세상’에 대한 결핍감을 떨쳐내지 못한다면 ‘제2의 전성기’가 보장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즉 골프의 세계를 여태 자신을 가둔 ‘우리’라고 생각한다면 골프 기피증이 도질 우려가 높고 ‘골프 바깥세상’에 대한 유혹이나 호기심을 견뎌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벼랑에 매달린 것과 같은 좌절을 맛볼 수도 있다.

우리의 위대한 영웅 박세리의 ‘제2의 전성기’를 위해 국민들이 그를 에워쌌던 우리를 걷어주자. 그가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듯 이제는 우리가 그에게 사랑을 줄 때다. 그를 얽어맸던 우리의 그물이 없다면 굳이 골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지 않아도 될 것이고 자신이 원한다면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날개 짓을 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골프의 우리’에서 박세리를 놓아주자. 골프가 되었든 골프가 아니든, 박세리가 맘껏 날개를 퍼덕이며 힘차게 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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