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정훈(21)이 3일(현지시간) 끝난 유럽 투어 프랑스오픈에서 공동 22위를 기록했다. 사진제공=아이에스엠 아시아
[골프한국] 4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르 골프 나쇼날 골프코스에서 막을 내린 프랑스오픈 100주년 대회는 왕정훈(21)에게 앞으로 자신이 가야 할 프로 골퍼의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 깨닫게 해주었을 것이다.

굴곡진 사연 없는 프로골퍼가 어디 있으랴마는 왕정훈에게 우승자 통차이 자이디(46·태국)는 넘기 힘든 거대한 산맥이었다. 왕정훈은 외국을 오가며 어렵게 프로골퍼의 꿈을 키워왔으나 국내에 둥지 트는 것을 거부하고 눈물 젖은 빵을 씹으며 한국과 아시아, 유럽을 떠돌다 올해 모로코와 모리셔스에서 열린 유러피언골프투어(EPGA)에서 2연승 하면서 새로운 골프스타로 부상했다. 180cm 75kg의 좋은 체격에 티 없는 미소를 지닌 그는 골프팬들이 고대하는 스타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이번 대회 3라운드 전반 4개의 버디를 쓸어 담으며 2위 통차이 자이디를 4타 차로 따돌리자 유럽의 스타급 선수들이 총출동한 대회에서 아시아의 신인이 우승을 차지하는 이변의 주인공이 되지 않을까 기대를 모았으나 후반부터 그의 속절없는 추락이 이어졌다.

프랑스오픈 100주년을 기념해 역대 우승자와 EPGA투어 상위 선수들이 총출동한 대회라 여기서 우승하면 그 가치와 명성은 메이저급 대회 우승과 다름없다. 세계랭킹 4위인 로리 매킬로이를 비롯해 마틴 카이머, 모리나리 형제, 브랜든 스톤, 리 웨스트우드, 대니 윌렛 등 참가자 면면을 보면 대회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대회에서 아시아의 나이어린 선수가 선두로 치고 나갔으니 현지 언론이 놀랄 만도 했다.

그러나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다 겪은 통차이 자이디를 따돌리기에 왕정훈으로선 역부족이었다. 46세의 통차이 자이디의 인생역정에 비교하면 왕정훈의 그것은 ‘하룻강아지’나 다름없다.

170cm 63kg으로 골프선수로선 다소 왜소해 보이지만 잔주름 가득한 햇볕에 그을린 얼굴, 다부진 체격, 표정의 변화 없이, 유럽의 거한(巨漢)들을 상대로 냉정하게 경기를 풀어가는 모습은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족하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6세 때부터 골프를 익혔다고 한다. 골프클럽을 살 돈이 없이 버린 헤드를 대나무에 꽂아 골프를 익히다 축구선수로도 활동했다. 골프선수로서의 길이 잘 열리지 않자 공수부대에 입대, 담력을 키우고 온갖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 방법을 터득한다.

군에서 나온 그는 프로골퍼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국내 투어, 아시안 투어에서 경험을 쌓아 1999년 30세라는 늦은 나이에 EPGA투어 출전권을 확보한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어 2000년 코오롱 한국오픈에 참가해 프로 첫 우승의 감격을 맛봤고 2009년에는 제주도에서 열린 발렌타인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그동안 아시안 투어 13승, 프랑스오픈을 포함해 유러피언투어 8승을 거두어 태국에선 골프영웅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1라운드부터 선두로 나선 그는 3라운드에서 왕정훈에게 추월당했으나 자신의 리듬을 잃지 않고 골프선수가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명플레이를 펼쳤다.

골프란 상황이 급변하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스포츠다. 왕정훈과 통차이 자이디는 이 상황변화에 적응하는 자세, 마음의 동요를 자제하는 평정심 유지 능력에서 확실한 차이를 보였다.

기능적 측면에서 두 선수 모두 유럽투어 정상급 선수와 별 차이가 없다. 문제는 선수의 신체리듬은 끊임없이 등락을 거듭하고 골프에 임하는 마음의 움직임도 매번 변하는데 여기에서 두 선수는 차이를 보였다. 

골프란 항상 최상의 조건 속에서 플레이하는 경기가 아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예측불능의 상황이 이어지고, 내 자신의 컨디션 역시 늘 최상이 아니다. 신체리듬을 경기 일정에 맞추어 조절하는 것도, 내 마음이 경기 상황에 따라 요동치지 않게 단속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일은 좋은 경기를 이끌어가는 최고의 덕목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해야 하는 골퍼로서의 마음가짐과 전략적 판단이 왕정훈에겐 부족했고 통차이 자이디에겐 틈이 보이지 않았다.

3라운드까지 선두와 2타 차이 공동 2위로 기대를 모았던 왕정훈은 마지막 라운드에서 보기 6개와 더블보기 한 개, 버디 하나로 무려 7 오버 파를 쳐 공동 22위로 추락한 반면, 통차이 자이디는 때로는 여우처럼 영리하게, 맹수처럼 과감하게, 사슴처럼 조심스럽게 경기를 펼쳐 1971년 루량후안(대만) 이후 무려 45년 만에 두 번째 프랑스 오픈을 차지하는 아시아 선수가 되었다.

불행하게도 왕정훈은 신체리듬도 좋아 뵈지 않았고 제대로 풀리지 않은 경기 때문에 그의 마음은 안정을 찾지 못하는 듯했다. 유럽피언 투어 2승으로 스타가 된 기분에 들떠있을 왕정훈에겐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추락은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겸손하고 겸허하게 현 상황을 수용하고 마음을 비우고 초심으로 돌아가 차근차근 갈 길을 열어가는 자세, 자신을 학대하거나 멸시하지 않고 자포자기 하지 않는 기다림의 자세 등을 익혀야 함을 깨닫는 귀중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통차이 자이디는 왕정훈에겐 훌륭한 스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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