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한국] 최초의 인간이 포도 씨앗을 뿌리고 있었다.
그때 악마가 다가와 “무얼 하느냐고?”고 물었다.
인간이 대답했다.
“나는 지금 대단한 식물을 심고 있다네.”
악마가 말했다.
“전에 이런 식물을 본 적이 없는데….”
인간이 설명했다.
“이 식물에는 아주 달고 맛있는 훌륭한 열매가 열리는데, 그 즙을 마시면 더없이 행복해진다네.”
악마가 말했다.
“그렇다면 나도 꼭 한몫 끼워주게나.”

그러고 나서 인간과 악마는 양과 사자, 돼지, 원숭이를 죽인 다음 그 피를 거름으로 뿌렸다. 식물은 열매를 맺고 그 열매로 포도주가 만들어졌다. 포도주를 마시기 시작했을 때는 양처럼 온순해진다. 조금 더 마시면 사자처럼 사나워지고, 좀 더 마시면 돼지처럼 추해진다. 아주 많이 마시면 원숭이처럼 춤을 추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며 허둥댄다. 술은 악마가 인간의 행동에 베푼 선물이다. (『탈무드』중에서)

골프와 술은 과연 어떤 관계일까?

『탈무드』의 교훈을 수용한다면 골프를 하는 사람은 양처럼 온순해지는 수준의 음주로 만족해야 할 것 같은데 현실은 다르다. 음주와 관련, 골퍼는 크게 두 부류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라운드 중에는 물론 라운드 전에도 술을 절대 금기시 하는 사람, 라운드 전후는 물론 라운드 중에도 적당한 음주를 즐기는 사람.

내 경험으로 보면 구력 5년 미만에 스코어도 80대 진입을 앞둔 골퍼들이 음주를 삼가는 편이다. 음주로 인해 집중력이 떨어지고 몸의 균형이 흐트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구력 20년 이상에 싱글 스코어를 자주 치는 사람, 그리고 60대에 접어든 골퍼들은 비교적 음주골프를 즐기는 편이다. 사람에 따라 편차가 있을 수 있겠지만 스코어에 집착하는 사람일수록 술에 과민반응을 보이고 술을 거부하지 않는 사람일수록 안정된 스코어를 만들어낸다는 생각이다. 

골프와 술은 따로 떼어놓고 얘기할 수 없다.
술은 골프의 태동과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갑고 거친 바람이 몰아치는 스코틀랜드 해안 링크스코스에서 골프 놀이를 하는데 위스키는 필수적이었다. 살을 파고드는 북해의 찬 바람은 위스키의 도움을 받지 않고선 이겨낼 수 없었다. 특히 라운드를 마친 뒤에 찾는 선술집은 필수코스였다. 내기의 결과에 따라, 또는 주머니에 여유가 있는 동반자들의 추렴으로 위스키를 마시며 뒤풀이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골프가 영국을 벗어나면서 이런 전통은 많이 퇴색했지만 적당한 음주는 골프를 윤택하게 하는 요소인 것만은 변함이 없다. 

술은 골프를 망치게 할 수도 있지만 술 없이 골프의 대미를 장식할 수는 없다. 물론 웬만큼 구력이 길지 않는 경우 라운드 전 음주는 금물이다. 지나치게 신경이 곤두선 골퍼들이 긴장을 풀기 위해 맥주 한 캔이나 위스키 한 잔 정도 마시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대체적으로 골프 전에 음주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알코올이 체내에 들어가면 근육이 말을 듣지 않아 평소의 샷을 날리기 어렵다. 다리는 흔들리고 집중력도 현저하게 떨어진다. 판단력이 흐려짐은 물론 자만이나 아집, 독단에 빠지기도 쉽다. 긴장을 풀기 위한 한 잔이라 해도 초반 몇 홀이라면 모를까 시간이 지날수록 엉뚱한 결과에 시달리기 십상이다.
겨울철 라운드 때 추위를 잊기 위해 따끈한 정종을 마시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의 골퍼들이 ‘정종효과’의 희생자가 되고 만다. 물론 온몸을 데우는 온기와 함께 스코어에 관대해지는 느긋한 마음, 동반자들과의 화기애애한 분위기 조성 등 따뜻한 정종이 안겨주는 혜택이 적지 않지만 풀어진 팔 다리와 집중도가 떨어진 정신은 골퍼의 기대를 배반한다.

그러나 라운드가 끝나고 마시는 술은 골프의 대미를 장식하는 역할을 한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찬 맥주나 짜릿한 소주나 위스키 맛은 라운드로 쌓인 긴장과 스트레스를 말끔히 풀어준다. 라운드 중에 기막힌 플레이가 있었다면 그 쾌감을 배가시키고 동반자들의 우의를 확인시켜주는 촉매제 역할도 한다.

프로골퍼 중에도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물론 라운드 전이나 라운드 중에는 일체 입에 대지 않지만 라운드를 마친 뒤 경기의 스트레스와 피로를 풀기 위해 술에 의존하는 경우는 많다.
1920~30년대 미국에서 ‘골프의 왕’으로 추앙받던 월터 해이건(Walter Hagen)은 전천후 술꾼으로 유명했다. 경기 전날에도 긴장감 때문에 잠을 잘 수 없다며 밤새 술을 마셔대기 일쑤였고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출전해 여러 차례 우승하기도 했다.
1924년 US PGA선수권대회에서 술이 덜 깬 상태에서 라운드를 시작한 그는 우여곡절 끝에 우승 트로피를 안았다. 그는 시상식 후 귀가 길에 술이 너무 취해 우승트로피를 택시에 두고 내렸다. 다음 해 빈손으로 US PGA선수권 대회장에 나타난 그는 “친구 집에 두고 깜박 잊어버렸는데…. 뭐 어차피 내가 또 우승할 테니까.”라고 얼버무렸다.
주최 측이 새 우승트로피를 만들었지만 그는 새로 만든 우승트로피는 차지하지 못했다.

우리 조상들은 음주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 것 같다. 
조선 초기 문인인 정극인은 『상춘곡(賞春曲)』에서 “갓 괴어 익은 술을 갈건(葛巾)으로 걸러 놓고, 꽃나무 가지 꺾어 수놓고 먹으리라. 화풍(和風)이 건듯 불어 녹수(綠水)를 건너오니, 청향(?香)은 잔에 지고, 낙홍(落紅)은 옷에 진다”며 술을 즐겼다.
송강(松江) 정철(鄭澈)은 『장진주사(將進酒辭)』에서 “한 잔(盞) 먹새 그려, 또 한 잔(盞) 먹새 그려. 꽃 꺾어 산(算) 놓고, 무진무진(無盡無盡) 먹새 그려”라고 읊었다.  우리 조상들은 술을 마실 때에도 꽃가지를 꺾어 잔을 세며 마실 정도로 운치가 있었다.

이에 비해 중국의 음주문화는 호걸(豪傑)다운 면모를 보이지만 다소 과장된 느낌이 든다.
이백(李白)은 『장진주(將進酒)』에서 ‘마셨다하면 모름지기 300잔은 마셔야 하지!(회수일음삼백배 會須一飮三百杯)’라며 호기를 부리는가 하면,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에서는 ‘시를 짓지 못하면 술을 말로 마시는 벌을 내리겠다(如詩不成 罰依金谷酒數)’라고 읊었다.

중국이라고 해서 이런 이백 스타일의 호기로운 음주가(飮酒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 못지않게 술을 사랑한 도연명(陶淵明)은 음주(飮酒)와 관련해 20여수의 시를 남겼는데 대부분이 소박하게 술을 즐기는 내용이다. 예컨대 ‘홀연히 한잔 술과 더불어 살아가니(忽與一觴酒) 조석으로 즐겨하며 서로를 지키리라(日夕歡相持)’라고 노래하는가 하면 ‘한 잔 술을 비록 혼자 마시지만(一觴雖獨進) 잔이 비면 술병이 스스로 기울여 따른다(杯盡壺自傾).’며 술병과 대작(對酌)할 정도였다.
술병을 창문 밖에 나뭇가지에 걸어놓을 만큼 술을 사랑했던 그도 ‘매일같이 술 끊으려 했으나(日日欲止之) 기혈 작용이 멈추어 순조롭지 못하네(營衛止不理), 술 끊으면 즐겁지 않다는 것만 알뿐(徒知止不樂) 술 끊는 것이 내 몸에 이로운 줄 몰랐노라(未知止利己).’라고 읊은 걸 보면 끝내 술 끊는 데 실패했음은 물론이다.

나의 골프 음주 습관은 변천을 거듭했다.
타고난 애주가는 못되었으나 골프채를 잡은 뒤 애주가를 지나쳐 음주골퍼로 낙인찍히는 지경이 되었다. 골프의 묘미에 빠져 스코어 줄이는 데 집중할 때엔 가급적 술을 자제했으나 수많은 지인들과 라운드를 하면서 술 실력이 늘었다.
나의 골프 사전에 술이 없는 골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권하는 술을 거절할 수 없는 탓도 있었으나 차츰 술맛을 알게 되고 술의 효과도 알게 되었다.
요즘 월례회에 가면 시작 전부터 막걸리나 소주로 얼큰해 진다. 겨울에는 코냑이나 위스키를 휴대용 용기에 담아 라운드 중에 홀짝 거리고 한 여름에도 생수병에 소주를 담아가거나 생막걸리를 챙겨 갈 정도다. 그런데도 라운드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을 보면 용하다. 술이 긴장을 풀어주는 역할을 해 부드러운 스윙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는 것 같다.

최근 라운드 한 지인 중 ‘아직 술이 부족하다’는 분을 만났다. 라운드 전 얼굴색이 불콰할 정도로 술을 하고 라운드를 하면서도 그늘집에서 꽤 술을 마셨으나 그늘집과 그늘집 사이에서 그는 술이 부족하다고 했다.
“좀 술이 부족한 듯 하구먼요.”
그러면서도 싱글을 간단히 쳐내는 그를 보며 술도 사람에 따라 효과가 다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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