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애(28·스리본드)가 19일 프로 전향 이후 프로대회에서 45승을 거둬 국내 여자 선수 최다승 기록을 갈아치웠다. 사진은 2013년10월18일 LPGA 하나외환 챔피언십에서의 모습이다. ⓒ골프한국
[골프한국] 더스틴 호프먼이 열연한 ‘작은 거인(Little Big Man)’은 백인으로 태어났으나, 인디언에 의해 길러져, 백인에게 잡혀, 백인의 인디언 토벌대 척후병을 하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실제 인물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다룬 영화다.
이 영화는 단신의 주인공 더스틴 호프먼의 이미지와 겹쳐 덩치는 작지만 거칠고 폭넓은 궤적의 삶을 산 사나이를 다룬 영화로 국내 영화 팬들에게 어필했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주 무대가 샤이언 인디언과 커스터 장군이 지휘하는 미 기병대가 격돌한 ‘리틀 빅혼(Little Bighorn) 전투'라는 사실을 알면 ‘Little Big Man’이 ‘작은 거인’임과 동시에 ‘리틀 빅혼의 사나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빅혼(Bighorn)’은 록키산맥 일대에 서식하는 큰뿔산양의 이름이다. 백인들은 이 큰뿔산양의 이름을 차용해 샤이언 인디언과 일전을 벌인 지역을 ‘Little Bighorn’이라 불렀고 근처에 흐르는 강 이름도 ‘Bighorn river’라고 지었다. 

영화는 121세의 잭 크랩이란 늙은이의 회상으로 시작된다. 그의 가족은 많은 백인들과 함께 서부로 향하던 중 인디언의 습격을 받아 목숨을 잃고 어린 아이인 크랩은 크로우족 추장에 발견돼 인디언으로 길러진다. 추장은 크랩이 어리지만 용감하고 지혜로운 인디언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곤 ‘Little Big Man’이란 이름을 붙여준다.
인디언전사로 자란 그는 백인 토벌대의 인디언 토벌작전 때 붙잡혀 백인임이 드러나 백인의 삶을 살다 샤이언 인디언과 일전을 선언한 커스터장군 휘하부대의 척후병으로 차출된다. 커스터장군 휘하의 기병대가 전멸한 이 전투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그는 인디언과 백인사회를 넘나드는 기구한 삶을 살아간다.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 파란만장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여자골프 계에도 3명의 걸출한 ‘리틀 빅 우먼(Little Big Woman)’이 있다. 그들의 궤적이 골프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뿐 그들이 국내외 투어에서 남긴 발자취는 위대하고 극적이다. 

신지애(28), 김미현(39), 장정(36)이 바로 주인공들이다.

신지애는 지난 19일 막을 내린 JLPGA투어 니치레이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단일대회 3년 연속우승이란 대기록을 세웠다. 시즌 2승째이자 JLPGA 통산 14승으로, LPGA투어 3승을 포함해 국내외 45승을 기록하며 국내 여자프로의 최다승 기록(구옥희 44승)도 깼다. 
중·고등학생 때부터 아마추어대회를 석권해온 그는 프로세계에 뛰어들어서도 발군의 실력으로 여왕의 자리를 지켰다. 2008년 브리티시 여자오픈 때 작달막한 그가 우람한 선수들 틈에서 기죽지 않고 무소처럼 당당한 플레이를 펼쳐 우승하는 장면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러나 이런 신지애의 화려한 영광도 김미현이나 장정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신지애가 프로의 길로 들어서기 전에 김미현, 장정이 ‘리틀 빅 우먼’의 길을 개척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신지애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3명의 ‘리틀 빅 우먼’은 당연히 키가 작다. 신지애 156cm, 김미현 157cm, 장정 153cm.
2년의 시차를 두고 LPGA투어에 진출한 김미현과 장정이 서로 ‘원조 땅콩’임을 주장하며 거구의 선수들 틈에서 경기하는 모습은 눈물겨웠다. 그러나 경이로웠다.
쭉쭉 빵빵한 선수들 틈에서도 기죽지 않고 상상을 초월한 오버스윙과 마술 같은 페어웨이 우드 샷(김미현), 페어웨이를 놓치지 않는 정교한 샷(장정)으로 세계의 골프팬들을 매료시켰다. 김미현의 LPGA투어 8승은 그의 신체조건이나 비거리를 감안하면 불가사의에 가깝다.
장정은 LPGA투어에서 2승밖에 올리지 못했지만 자주 톱10에 이름을 올리면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특히 2005년 브리티시 여자오픈에서 우승하는 장면은 경이 그 자체였다. 골프코스를 롱 샷으로 잡은 화면에 나온 장정의 모습은 약간 긴 점처럼 보였고 골프본향의 애호가들은 움직이는 작은 점에 박수와 환호를 아끼지 않았다. 
뜬 눈으로 중계방송을 지켜본 뒤의 감동이 며칠씩이나 긴 여운을 남긴 기억이 새롭다.

자신과 비슷한 신체조건의 김미현과 장정 언니가 훌륭히 해내는 모습은 신지애에게 큰 자극과 희망이 되었을 것이다. 한국, 미국, 일본의 골프투어를 모두 섭렵한 신지애는 JLPGA투어에서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한 이보미(27)나 김하늘(27)과는 다른 차원의 겸손하면서도 자존감 넘치는 묵직한 플레이로 골프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김미현, 장정이 개척한 길 위에서 더 넓고 먼 세계를 펼쳐나가는 신지애의 전도가 어디까지일지 궁금하다.
이 땅의 골프애호가로서 세 명의 ‘리틀 빅 우먼’에게 마음에서 우러난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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