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정훈 등 젊은 골퍼들, 한국의 지평을 넓히는 프런티어

최경주
[골프한국] 미국 중서부 콜로라도 계곡에 서식하는 흰 머리 독수리는 튼튼한 둥지를 짓기 위해 무려 250km 이상을 날아 단단한 나뭇가지를 물어온다고 한다.

머리가 흰 이 독수리는 미국의 국조(國鳥)로, 미국을 상징하는 휘장에도 등장한다. 영어 이름은 ‘대머리독수리(Bald Eagle)’이지만 머리 색깔이 희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머리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멋있고 용맹스런 외모에도 불구하고 동물의 사체를 먹이로 하는데다 매우 게으른 편이이서 국조로 정하는데 논란이 없지 않았지만 확고부동한 미국의 상징이 되었다.

국조로 정했으니 이 독수리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었던 미국 정부는 독수리 생태를 다각도로 연구 관찰했는데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둥지를 처음 지을 때는 어미 독수리가 나뭇잎 깃털 풀 등 부드러운 것을 켜켜이 쌓아 새끼들이 편하게 지내도록 하지만 새끼들이 자라나면 부드러운 것들을 덜어내고 대신 거칠거나 가시가 돋은 나뭇가지로 대체한다는 사실이었다. 새끼들이 둥지 안에 안주하지 않고 날개 짓을 익혀 둥지를 떠나 스스로 살아가게 하기 위한 모성애 부성애의 발현이라는 설명이다. 미국을 상징하는 새가 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춘 셈이다.

모든 새는 때가 되면 둥지를 떠나야 한다.

기러기, 꿩, 오리처럼 둥지가 땅 위에 있는 새들은 부화하자마자 둥지를 떠나는 연습을 한다고 한다. 주변에 천적이 워낙 많아 둥지를 떠나지 않고선 생명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둥지에 남아 있어도 형제간의 투쟁으로 살아남기 어렵다. 검독수리나 쇠백로 등 일부 새의 새끼들은 먹이를 독점하기 위해 힘이 약한 동생들을 부리로 쪼고 둥지 밖으로 밀어뜨려 죽이기도 한다. 이른바 형제살해의 예다. 

두견새, 부엉이, 제비처럼 높은 곳에 둥지를 둔 새들의 새끼들은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둥지에 머물며 어미의 보호를 받는다. 그러나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 날개가 자라면 모든 새는 둥지를 떠난다.
새뿐만 아니라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태어난 둥지를 떠나 새로운 터전을 잡는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은 말할 것도 없고 식물조차 다양한 형태의 씨앗 형태로 둥지를 떠난다. 인류의 역사를 이주와 정착으로 구분해 살펴보면 이주의 역사가 97%이고, 정착의 역사는 3%에 불과하다고 한다.

세계 곳곳에서 승전보를 전해주고 있는 한국 또는 한국계 골프선수들을 보며 이들이야말로 둥지를 박차가 나간 용감한 새들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척박한 국내시장에서 안주하지 않고 보다 넓은 세계에서 큰 뜻을 펼쳐보겠다는 야심으로 미국행을 택한 박세리나 최경주는 그 원조다. 만약 그때 박세리나 최경주가 LPGA투어나 PGA투어에 눈길을 주지 않고 국내 둥지 안주에 만족했다면 어떠했을까. 한국 골프는 지구촌 변방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박세리 김미현 박지은 등에 자극받은 꿈나무들이 보다 높고 넓은 세계를 향한 비상을 꿈꾸며 국내의 둥지를 벗어나기 위해 각고의 날갯짓을 한 결과 칭기즈칸의 대제국을 연상시키는 세계 골프의 주류로 자리 잡은 것이다.

여자골프의 거센 흐름에는 못 미치지만 최경주 양용은 등 국내의 좁은 둥지를 박차고 나간 용감무쌍한 프런티어들 덕분에 후배들도 자극을 받고 용기를 얻어 아시아 투어, 일본투어, 유럽투어는 물론 골프 최고의 빅 리그인 PGA투어에까지 많은 한국선수 또는 한국계 선수들이 진출해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

여자 골프의 경우 국내 시장도 활황세를 보이고 있지만 워낙 좋은 재목들이 많아 앞으로 둥지  탈출은 더욱 활성화할 전망이다. 국내 둥지에 머물고 있는 선수들과 둥지를 떠난 선수들 간의 선순환 자극으로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잘 굴러가고 있다.

그러나 남자 골프의 경우, 시장규모는 물론 골프풍토 자체가 워낙 척박해 새로운 꿈나무들의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대회 후원기업이나 스폰서를 찾기 어려워 대회 수도 턱없이 적어 실전경험을 쌓는 것 자체가 어렵다. 해외로 전지훈련을 나가자니 비용이 너무 들고 해외투어에 뛰어들자니 체계적으로 안내해주는 곳도 없다.   

유럽투어에서 아시아인 최초, 한국인 최초로 2연승의 쾌거를 이룬 왕정훈의 케이스는 국내 둥지에서는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준 사례다. 골프 수준은 떨어지지 않는데 스폰서가 없고 대회 수도 적어 선수들이 생계유지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니 선수들 스스로 둥지 탈출을 도모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 결과 PGA투어를 비롯해 일본 투어, 아시아 및 유럽 투어에서 승전보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 국가 지원 없이 오로지 선수 자신의 실력으로 해외에 나가 승리함으로써 선수 개인의 자아성취는 물론 한국 인지도를 이만큼 높이는 스포츠 종목이 또 어디 있을까.

둥지를 박차고 나가 노마드생활을 마다하지 않는 젊은 골퍼들이야말로 한국의 지평을 넓히는 프런티어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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