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한국] 골프는 연속되는 깨달음의 긴 여정이다.
초보 때는 초보대로, 중급자는 중급자대로, 싱글골퍼는 싱글골퍼대로 그 단계에서의 깨달음을 얻으며 다음 관문을 두드린다. 그래서 연습장에서 주위를 살펴보면 “아!”하는 탄성이나 “골프가 뭔지 이제야 알겠어!” 하는 대오성(大悟聲)을 심심치 않게 듣게 된다.

한창 골프의 매력에 빠져 연속되는 깨달음에 남모르게 미소 짓던 20여 년 전, 골프를 엄청 좋아하는 친구가 들려준 일화는 지금도 생생하다.

나이 70이 넘어서도 여전히 골프를 즐긴다는 친구의 장인은 라운드를 하고 돌아오면 자주 장모를 찾아 이렇게 외친다고 했다.
“여보, 오늘 골프가 무엇인지 깨달았어! 이제야 골프를 좀 알 것 같아.”
이때 장인의 모습은 정말 새로운 비밀을 알아낸 소년 같다고 했다.
그러면 친구의 장모는 “그래요? 좋겠소. 골프장 갈 때마다 뭔가 깨닫고 오신다니 얼마나 행복하겠소. 그래 오늘은 또 무엇을 깨달았어요?”하고 묻곤 한다는데 그러면 장인은 골프가방을 풀지도 않고 장모에게 그 날의 깨달음을 진지하게 털어놓는다고 했다.
물론 장모는 장인이 말하는 내용을 깊이 알아듣지 못하지만 그냥 들어주는 것이란다. 친구의 장모에겐 20년 가까이 남편이 라운드를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들어온 대오성인 셈이다.

골프가 실증이나 지루함 없이 항상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 해답을 찾아 나서면 비로소 골프의 비밀과 매력을 깨닫게 된다.
골프가 언제나 새로운 경험을 안겨주는 것은 두 번 다시 똑 같은 샷을 날릴 수 없는 특성 때문이 아닐까. 라운드마다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곤 하지만 그 상황은 비슷하기만 할 뿐 결코 똑 같지는 않다. 새로운 상황을 맞으니 새로운 샷을 만들어내야 하고 새로운 경험을 하며 예기치 않은 굿 샷과 미스 샷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전에 알지 못한 새로운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영원히 되풀이 할 수 없는 샷임에도 불구하고 골퍼들은 다시 한 번 샷을 날릴 수 있기를 고대하며 그때에 대비해 칼을 가는 것이다.
 
또 다른 골프의 특성, 즉 한시도 머물지 않고 사라져 버리려는 골프감각의 속성이 골프를 언제나 새롭게 느끼게 한다.
아마도 이 세상에서 골프의 감각만큼 붙잡아 두기 힘든 것도 없을 것이다. 장시간 땀과 열성을 쏟아 골프의 감을 근육과 머리에 깊숙이 각인시켜 놓았다고 안도하는 순간 이미 골프의 감은 뒷문으로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다.
많은 골퍼들이 한두 개의 멋진 샷을 날린 뒤 “바로 이 맛이야!”하고 무릎을 치지만 결코 그 순간의 감각을 잡아둘 수 없는 게 골프다.
‘골프는 아침에 자신을 얻었다고 생각하면, 저녁에는 자신을 잃게 하는 게임’(해리 바든)이다.
골프에 관한 한 ‘이제 됐다’는 순간은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 진정한 골퍼라면 눈을 감는 순간까지 새로운 깨달음의 노력을 포기할 수 없다.

친구 장인의 얘기를 듣고 “골프란 운동의 속성이 산꼭대기로 바위를 굴려 올려야 하는 시지프스의 형벌이나 다름없으니 눈을 감을 때까지 깨달아가는 건 당연한 것 아니겠어?”하고 흘러 넘겼던 내가 친구 장인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음을 알아챘다.
그동안 체험한 깨달음 중에서도 최근에 머리를 때린 깨달음은 내겐 아주 특별하다. 그 동안의 수많은 깨달음 중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이 아닐까 여겨질 정도다. 골프와 인연을 맺어 같은 길에서 헤매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그 깨달음을 털어놓는다.

‘골프는 기다림의 운동이다.’
이것이 내 머리를 울린 깨달음의 핵심이다. 동네 연습장에 겨울철 할인혜택이 주어지는 3개월짜리 회원등록을 한 뒤 거일 매일이다시피 3~5 박스정도 연습 볼을 쳐왔는데 마지막 무렵에 번개처럼 ‘골프란 기다림의 미학’이란 생각이 번쩍했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의 ‘기다림의 미학’ 개념을 적용해 연습을 했더니 비거리 방향성 안정성 등 모든 것이 개선되었다. 이때까지 내가 해온 골프와 차원이 달랐다. 무엇이 골프를 망치게 하는가도 이 ‘기다림의 미학’의 대척점에서 찾을 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성급함으로 귀결되었다.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이 결여된 성급함 조급함이 자연스럽고 힘찬 스윙을 방해하는 것이다. 풀 스윙을 못한다는 것은 백스윙과 팔로우 스윙을 제대로 못한다는 것인데 이는 곧 기다림의 결여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되었다.
많은 아마추어들이 허리와 어깨가 충분히 돌아가 완벽한 백스윙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오로지 볼을 때려내겠다는 생각에 탑 오브 스윙에 도달하기 전에 클럽을 끌어내린다. 뿐만 아니라 클럽 페이스가 지면에 놓인 볼과 정면으로 만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머리 가슴 등 상체를 일으키거나 너무 빨리 허리를 돌리는 바람에 스위트 스팟에 볼을 맞히는 데 실패한다.

여기에 볼을 멀리 날려 보내겠다는 욕심까지 더해 몸에 힘을 잔뜩 주고 회전운동을 하는 바람에 몸의 중심축도 무너져 버린다. 볼을 가격하는 데 몰두한 나머지 팔로우 스윙 역시 중도에 멈춰져 버리고 만다.
클럽의 헤드가 중력과 관성에 따라 내던져져 완전한 팔로우가 이뤄질 때까지 기다리면 방향성과 비거리가 보장되는데도 클럽헤드가 완전히 등 뒤로 넘어가기 전에 중단해버림으로써 비거리도 손해보고 엉뚱한 미스 샷을 유발하고 만다. 뒷땅이나 토핑, 하이볼, 슬라이스나 훅 등 모든 미스 샷은 모두 백스윙, 히팅 순간, 팔로우 스윙 시점에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성급하게 덤빈 결과로 빚어지는 것이다.
 
‘기다림의 미학’은 스윙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성급하게 좋은 결과를 바라거나 조바심을 내는 행동은 전체 게임의 흐름을 방해한다. 잃은 타수를 만회해야겠다는 조급함, 동반자보다 많은 버디를 낚아야겠다는 경쟁심 역시 골프를 망치게 한다. 
 
최근 이 깨달음을 바탕으로 연습한 결과 전보다 훨씬 크고 부드러운 스윙을 구현할 수 있게 됐다. 내 나이에 남들은 비거리가 준다는데 오히려 비거리가 늘고 방향성도 좋아졌다.
‘기다림의 미학’이란 깨달음이 지워지지만 않는다면 나이에도 불구하고 급격한 후퇴는 예방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기다림의 미학’을 공유하는 독자가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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