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야마 히데키(23·일본)가 8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의 TPC스코츠테일 스타디움 코스에서 열린 PGA 투어 피닉스 오픈 우승을 차지했다. 사진은 2015년10월8일 2015 프레지던츠컵에서의 모습이다. ⓒ골프한국
[골프한국] 스포츠 중에 정숙을 요구하는 종목을 꼽자면 단연 골프가 으뜸일 것이다.
대부분의 스포츠가 선수와 관중이 혼연일체가 되어 열광의 도가니에 휩싸이지만 골프만은 선수가 샷을 하는 순간에 고도의 침묵과 정적을 요구한다. 그래서 골프애호가들은 골프를 ‘구도자의 스포츠’라고 일컫는 데 공감한다. 물론 결정적인 순간에 소음이 없는 정적을 요구하는 것은 골프 외에 테니스 양궁 사격 역도 등이 있지만 골프만큼 긴 시간, 그리고 자주 정숙을 요구하는 스포츠는 없다.

그러나 이제 골프도 정숙의 스포츠에서 벗어날 시기가 온 것 같다.
일본의 마쓰야마 히데키(24)가 미국의 리키 파울러(27)를 꺾고 우승한 PGA투어 웨이스트매니지먼트 피닉스오픈은 전통적인 시각에서 보면 골프가 아니다. 골프의 고향인 스코틀랜드에서 열리는 디 오픈(브리티시 오픈)을 비롯해 마스터스 토너먼트 등 PGA투어 메이저대회와 유러피언투어 대회를 보면 선수가 플레이하는 순간만은 정적에 가까운 고요가 코스를 지배한다.

샷을 하는 순간에는 선수에게 어떤 방해도 해서는 안 된다는 골프철학이 불문율로 받아들여져 왔기 때문이다. 샷이나 퍼팅의 결과에 따라 환성과 탄식을 토해내는 것은 허용되지만 선수가 플레이하는 순간만은 철저한 정숙을 지키는 것이 동반자와 갤러리들의 기본적인 에티켓으로 인식되었다. 일본인 최초로 PGA투어에서 우승한 선수로, 최근 일본골프투어(JGTO) 회장을 맡은 아오키 이사오(73)는 시니어투어 시절 동반자가 퍼트하려는 순간 버릇처럼 골프장갑을 벗어 빈축을 샀다. 장갑을 벗을 때 찍찍이가 떨어지면서 나는 이상한 소리 때문인데 샷이나 퍼팅을 할 때 선수들이 얼마나 완벽한 정적을 요구하는지를 보여준다. 

피닉스오픈은 아무런 제한 없이 감정을 표출하는 다른 스포츠에 비교해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 소란한 대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광란이란 말이 딱 어울린다. 음주가 허용된 관중석에선 맘껏 환성과 야유를 보낼 수 있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일부 갤러리들은 마리화나를 피우며 해방감을 만끽한다.
관중의 상당수가 골프에 대해 문외한이어서 고전적인 골프에티켓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특히 일부 홀은 스타디움 형태의 관중석으로 둘러싸여 그야말로 야외 록 페스티벌 공연장을 방불케 한다. 더욱이 파3 16번 홀에서 18번 홀에 이르는 코스는 바로 검투사들이 목숨을 걸고 결투를 벌이는 로마시대의 콜로세움과 흡사하다.
한 손에 맥주 캔을 든 갤러리들은 경기 중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환호와 야유, 잡담을 털어놓고 심지어 오렌지나 캔을 선수를 향해 집어던지기도 한다. 2001년 대회에서 타이거 우즈는 자신에게 오렌지가 날아오는 봉변을 당한 뒤 상당기간 대회출전을 포기했을 정도다.

공교롭게도 대회 시기가 미국 최대의 스포츠이벤트인 미국프로풋볼(NFL) 결승전인 슈퍼볼 대회와 겹치면서 PGA측이 슈퍼볼의 인기에 묻히지 않기 위해 고심한 끝에 짜낸 전략이 주효한 결과이겠지만 골프 역시 흥행을 요하는 스포츠이기에 ‘정적의 스포츠’라는 전통을 고수하는 데 한계가 온 것 같다.

피닉스오픈이 메이저대회가 아닌데도 슈퍼볼의 흥행에 비견될 정도로 관중동원에 성공하고 있다는 사실은 여타 골프대회가 가야 할 길을 예측할 수 있다.
대회기간 중 매일 15~20만명의 갤러리들이 운집하는 피닉스 오픈은 관중 수만 놓고 보면 슈퍼볼을 능가한다. 이번 제 50회 슈퍼볼 대회가 열린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 리바이스 스타디움(샌프란시스코의 프로풋볼 팀 49ers의 홈구장)의 최대수용인원은 7만5천명. 입장객 수만 놓고 보면 피닉스오픈과는 비교가 안 된다.
스타디움의 특성상 입장객 수는 한정돼있는데도 불구하고 경기 중 광고단가가 30초에 500만달러에 이르고 미 전역 TV시청률이 50%에 육박하는 점을 감안하면 슈퍼볼 대회가 여전히 북미 최고의 스포츠이벤트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나흘 동안 매일 20만에 육박하는 갤러리들이 모여 광란에 가까운 분위기를 연출하며 골프 관전을 즐기는 피닉스 오픈은 결코 슈퍼볼 대회에 뒤지지 않는다.

다른 골프대회도 피닉스 오픈이 열어놓은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흥행을 걱정하는 PGA 측은 물론 대회 개최 당사자들은 어쩔 수 없이 대회의 지속적인 개최를 위해 관중을 동원하고 이목을 집중시키는 전략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고도의 평정심을 유지해야 하는 선수들로서는 온갖 소음의 도가니 속에서 플레이한다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겠지만 자신들이 활동해야 할 무대가 좁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광란의 도가니 한가운데서도 플레이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지 않고선 선수로서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온갖 소음과 야유와 환성에도 흔들리지 않고 플레이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선수가 얼마나 될까.

귀가 멍멍하고 정신을 빼앗아가는 이 대회를 경험한 선수들은 라운드를 제대로 하기 위해선 “귀를 막아야 한다.”“낯가죽이 두꺼워야 한다.”“철심장을 가져야 한다.”는 등 나름의 비방을 내놓지만 시장바닥이나 공연장을 방불케 하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선 철저하게 현장의 분위기를 즐기는 길 외에 무슨 묘방이 있을까 싶다. 일부 선수들이 미리 관중들을 위한 선물을 준비해 콜로세움 코스를 지날 때 관중석을 향해 선물을 던지는 이벤트를 벌이며 광란의 분위기를 즐기듯 관중들과 한 덩어리가 되어 소통하는 길 말이다. 휴대폰 셔터소리에도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선수라면 대회 참가를 포기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프로골퍼들은 관중과 한 덩어리가 되어 교감하면서도 자기최면을 통해 야유나 소음을 환성으로 변환시키는 능력, 온갖 소음을 들판에 고요히 부는 바람소리 정도로 받아들이는 초월의 마음을 소유해야 하는 무거운 짐을 지게 됐다. 골프선수로 대성하려면 골프 기량만 출중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온갖 소음과 광란의 분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고도의 정신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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