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한국] 골프채를 잡은 이상 매년 찾아오는 봄은 늘 예사롭지 않다.
봄은 누구에게나 가슴 설레게 하겠지만 특히 골퍼들에게 봄은 기대와 걱정을 함께 안긴다. 골프의 수준 또는 재미를 높여보려는 사람에겐 겨울이야말로 절호의 기회인데 이 기회를 살렸느냐 놓쳤느냐에 따라 봄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내 경험에 비쳐보면 골프의 수준이 도약한 시기는 혹독한 겨울을 지낸 뒤 잔인한 봄과 열병 같은 씨름을 한 이후였다. 겨울을 동계훈련기간으로 정하고 골프의 기본을 재점검하고 토대를 다지고 취약점을 철저하게 보완한 골퍼들에게 파릇파릇한 잔디가 돋는 봄의 들판은 꿈같다.
그러나 봄은 어김없이 기대를 품고 나온 골퍼에게 시련을 안기고 인내심을 시험한다. 보상을 바라는 지나친 기대와 욕심, 모처럼 맞는 필드의 낯섦, 완전하지 않는 페어웨이와 그린의 상태 등으로 겨우내 쏟은 땀과 정성은 물거품이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잔인한 3~4월을 무사히 넘기면 겨우내 갈고 닦은 기량이 살과 피로 흡수돼 자신도 깜짝 놀랄 결과를 안겨준다.

반대로 긴 겨울 동안 춥고 귀찮다는 이유로 골프채를 놓고 지낸 사람에겐 봄은 맞이하기 싫은 계절이다. 골프를 포기할 순 없고 봄이 되면 이리저리 불려 다녀야 할 텐데 그 결과가 너무도 선명하게 떠오르기에 봄이 두려울 수밖에.
실력은 발전은커녕 퇴보했을 테니 동반자들의 도시락이 될 테고 한 수 아래로 여기던 동반자에게 추월당하는 수모를 어떻게 견뎌낼까 겁이 난다.
무엇보다 좋은 기회를 허송세월하고 아름다운 계절을 맞고도 계절을 완상하거나 골프를 즐기기는 고사하고 자신에 대한 분노와 가련함 등은 잔인의 극치에 이르기 마련이다.

내가 나가는 동네 연습장에는 십 수 년 만에 내습했다는 혹한기에도 하루에 2~3시간씩 연습에 집중하는 사람이 꽤 있다. 손을 호호 불며 난로와 타석을 오가면서 열심히 스윙을 점검하며 기본을 다지고 소홀하기 쉬운 어프로치 연습을 한다. 내가 이분들에게서 발견하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농도가 짙어가는 자족의 미소다.
겨울 초입에는 ‘꼭 이렇게 기를 쓰고 해야 하나?’ 같은 회의적인 기색이 없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연습결과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지면서 얼굴에 다가올 봄의 들판에서 일어날 이변을 상상하는 미소가 번져가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솟구치는 기쁨을 억제할 수 없어 주변을 둘러보며 “이렇게 잘 맞아나가니 힘이 하나도 안 드네요.” “올 봄엔 곡소리 좀 날거야!”하고 즐거운 비명을 토해내기도 한다.
이런 분들에게 봄은 그렇게 기다려질 수가 없다. 그리고 봄의 들판을 누비는 재미의 강도 또한 예전과는 딴판이 될 것이다. 물론 통과의례 같은 실망과 고통의 과도기를 거치겠지만 분명 한 차원 높은 골프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겨울이라는 이유로 연습장과 담을 쌓고 지내다 어쩌다 나와 쿠폰을 끊어 연습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런 분들은 골프 수준을 높이겠다는 열정보다는 심심하고 무료해서 연습장을 찾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연습을 하면서도 다가오는 봄을 두려워하는 말을 자주 뱉곤 한다.
“몸이 완전히 장작개비같이 굳어버렸는데 이걸 어떡한다?”
“이런 상태로 나갔다간 완전 도시락 되기 십상인데·….”
“그렇다고 골프를 포기할 수도 없고 이래저래 잔인한 봄이 되겠지.”
그러면서도 두메산골에 새우젓 장수 찾아오듯 연습장에 출현하니 봄은 맞이하기 두려운 계절이 될 수밖에 없다.

입춘을 넘기면서 과연 나는 어느 부류에 속할까 자문해보자. 그래도 아직 늦지 않았다고 클럽 몇 개 들고 연습장을 찾는 사람이라면 봄은 기대를 걸어볼만 하지 않을까.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뉴스팀 news@golfhankook.com 

저작권자 © 골프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