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한국] 미국에 그린버그라는 사나이가 있었다.
유럽에서 맨손으로 미국으로 건너온 부모를 둔 이민 2세로, 오직 출세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며 성공가도를 다져왔다. 30대 중반에 이르러 그는 원하는 만큼 돈을 벌고 주위로부터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다.

이런 그린버그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골프채를 잡았다. 그는 물론 골프의 문외한이었다. 어렵게 살 때 골프장 옆을 지나치며 한가롭게 골프를 치는 모습을 보긴 했어도 골프라는 운동을 한가한 사람들이 그냥 시간을 보내는 심심풀이로만 여겼었다.

골프에 백지인 그린버그가 골프가 기막힌 신사의 스포츠라는 주위의 권유에 못 이겨 골프장을 찾아 나섰다. 유명하다는 핑아이2 시리즈 중 가장 비싼 클럽을 샀고 블랙 앤 화이트 골프웨어로 몸을 감싸고 악어가죽으로 만든 풋 조이 신발에 세인트앤드루스 마크가 새겨진 캐시미어 모자를 쓴 채 파4인 첫 홀 티잉 그라운드에 섰다. 그가 아는 것이라곤 클럽의 이름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린버그가 캐디에게 드라이버 아닌 퍼터를 달라고 말하자 캐디는 “손님, 티샷은 드라이버로 하시는 게 어떨런지요?”하고 정중히 말했다.
그린버그가 다시 말했다.
“이봐 젊은이! 나는 말이야, 이 나라에서 맨손으로 성공한 사람이야. 무일푼에서 큰 재산을 모았다고. 나는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아. 그러니 퍼터를 주게.”
그린버그는 퍼터로 티샷을 했다. 장작 패듯 휘두른 퍼터에 정통으로 맞은 볼은 놀랍게도 무려 180야드나 날아갔다. 두 번째 샷도 퍼터로 쳐 홀 컵 1m 가까이에 붙였다.
캐디가 진정 감격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손님 같은 분은 처음입니다. 자 이제 퍼터로 한 번에 넣으시면 버디입니다”라며 다시 퍼터를 꺼내려 하자 그린버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까도 말했지 젊은이! 나는 누구의 지시도 안 받아. 드라이버를 주게.”
그린버그의 엄숙한 모습에 캐디는 어쩌지 못하고 드라이버를 꺼내 주었다.
그가 드라이버를 만져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러니 그가 드라이버를 어떻게 쳐야 하는지 알 턱이 없었다. 한참 드라이버를 잡고 이리저리 궁리하더니 아까 퍼터를 휘두를 때처럼 마음껏 드라이버를 휘둘렀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요란했다.
그의 드라이버는 볼을 맞히지 못했다. 에어 샷, 즉 헛스윙을 한 것이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또다시 벌어졌다. 요란하게 휘두른 클럽헤드의 바람에 공이 움직여 경사진 그린을 굴러 홀 컵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버디!”캐디가 펄쩍 뛰며 소리쳤다.
“이봐 젊은이! 내가 말했듯이 나는 누구의 지시도 안 받아. 그러나 때로는 작은 조언이 필요할 때도 있지. 젊은이, 좀 가르쳐 주게. 이 구멍 안에 있는 볼을 꺼내려면 어떤 클럽을 써야 하나?”
마지막 이 부분은 그린버그가 얼마나 골프에 대해 문외한이었나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린버그는 맨 처음 밟은 골프장의 첫 홀에서 버디를 하고 나서는 “골프도 별것 아니군!” 하고 두 번 다시 골프채를 잡지 않았다고 한다. 무궁무진한 골프의 세계를 맛볼 기회를 잃은 것은 큰 불행이요, 결코 만족을 안겨주지 않는 골프와 이길 수 없는 씨름을 하지 않아도 되었으니 행운이라고 할까.

그린버그의 일화를 그럴싸한 에피소드로 넘기기엔 너무 귀중한 교훈이 숨어있다. 그린버그는 골프에 관한 한 일자무식이다. 완전 백지상태나 다름없다. 골프에 대해 아는 것이 없고 평소 생각해본 것도 없으니 골프와 관련된 헛된 욕심이 있을 까닭이 없다. 무엇이 잘 치는 것이고, 무엇이 못 치는 것인지의 구분조차 없는 상태다. 마치 선악(善惡)이나 미추(美醜)의 분별심이 없는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의 마음처럼.

이런 그린버그에게 OB니 벙커니 러프니 생크니 하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심어져 있을 턱이 없다. 힘이 들어간다느니, 너무 긴장되어 있다느니 하는 쓸 데 없는 잡념도 없을 것이다. 아무런 고정관념도 없을 것이다. 골프의 상례를 무시한 플레이에도 불구하고 첫 홀 버디를 얻은 것은 순전히 이 ‘골프의 백지상태’ 때문이다.
불교나 도교의 무(無)사상이나 무아지경(無我之境)이 바로 그린버그의 ‘백지상태’를 일컫는 것이 아닐까.
골프에 관한 지식과 지혜로 가득 찬 골퍼가 무의 경지로 발을 들여놓을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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