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한국] 오랜만에 한수 지도를 받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사회 선배인 P형을 라운드에 초대했다. 우리에게 P형은 30년 가까이 사회의 선후배로 지내면서 때로는 형으로, 때로는 친구로 지내온 막역한 사이다. 다만 골프에 관한 한 P형은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부지런한 데다 골프에 대한 타고난 열정으로 금방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 그는 골프채를 잡은 이후 동년배는 물론 선후배 사이에 가장 두려워하는 골프 상대이자 타도 대상이 되었다.

P형은 사실 신체적인 조건에서 우리의 상대가 되지 않았고 비거리 하나만 놓고 보면 우리가 P에게 진다는 것이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 앞에만 서면 주눅이 들었다. 다른 사람과의 라운드에선 좋은 스코어를 내면서도 그와 함께 라운드하면 어김없이 페이스를 잃고 죽을 쑤기 일쑤였다.
두어 달 만에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P형은 “요즘 라운드를 못해서 제대로 볼이 맞을까 몰라.”라며 그답지 않게 엄살을 부렸다.
“형님이 꼬리 내릴 때도 다 있수?”
“엄살이 아니라니까. 연습도 안 한데다 라운드도 거의 나가지 않으니 옛날 실력이 나올 턱이 없잖아.”
“아무리 그래도 천하의 형님 실력이 어디 가나요. 그만 엄살떨고 옛날에 챙겼던 거 토해낼 생각이나 해요.”
한결 풀이 죽은 P형의 말투뿐만이 아니라 깊이를 알 수 없을 것 같던 골프에 대한 열정, 식을 줄 모르고 타오르던 전의가 전해지지 않는 것도 확실히 옛날과 다른 분위기였다.     

우리는 스크래치 플레이를 하자는 P형의 요구를 묵살하고 예전과 같이 다섯 개의 핸디캡을 받고 라운드를 시작했다.
첫 홀에서 보여준 그의 모습은 확실히 왕년의 그가 아니었다. 정통적인 스윙만 변하지 않았지 비거리도 형편없이 줄고, 정확도도 떨어지고 그린 주변에서의 설거지 실력도 실수 투성이었다. 한두 홀 지나면 본 실력이 나타나겠지 하고 기다렸지만 P형은 도무지 왕년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라운드가 끝날 즈음 몇 번의 굿 샷이 나왔지만 이미 승패는 결판이 난 상태였다. 모처럼 모두 P형이 준 핸디캡을 고스란히 지킬 수 있었음은 물론 덤을 보탤 수 있었다.
“형님이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다니. 이제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겠네요. 이제 우리도 옛날에 빨린 거 찾아갈 때가 되었나 보내요.”
누군가의 이 말에도 P형은 말없이 웃기만 했다. 자신의 시대가 지나갔음을 인정하고 후생에게 자리를 내어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모처럼 호랑이를 잡은 기분에 들뜬 젊은 후배들은 이 빠진 호랑이의 패배를 재확인하려는 듯 일주일 후 라운드 약속을 했다.

그리고 우리는 일주일 후 다시 만났다. 지난주의 라운드 경험을 감안, 우리들은 용기 있게 P형의 스크래치 플레이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비교적 센 내기를 했다.
그날 라운드는 세 명에게 가장 비참한 라운드 중의 하나였다. 모두들 이빨 빠진 호랑이를 완전히 무릎 꿇게 하겠다는 각오로 나왔으나 그는 지난주와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왕년의 플레이를 펼쳐나갔다. 그는 남들이 긴 드라이브를 날려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대로 게임을 풀어나갔다. 온갖 방해공작도 효험이 없었다. 이빨 빠진 호랑이를 산채로 잡겠다고 덤빈 일행은 제풀에 무너져 골프장을 헤매며 숨을 헐떡이는 실패한 사냥꾼의 꼴이 되고 말았다.

18홀을 끝내고 클럽하우스로 걸어오면서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아니 호랑이도 임플란트를 합니까. 일주일 전만 해도 영락없이 이빨 빠진 호랑이더니 오늘은 무슨 일입니까. 사기 골프 하신 거 아니예요?”
그러자 P형은 혼잣말처럼 한 마디를 던졌다.
“이빨 빠진 호랑이도 발톱은 남아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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