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영(22·미래에셋)이 1일 중국 하이난섬 지안 레이크 블루베이 골프코스에서 열린 블루베이 LPGA 우승, 시즌 3승을 차지했다. 사진은 2015년10월15일 LPGA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의 모습이다. ⓒ골프한국
[골프한국] 리디아 고, 박인비, 김효주, 전인지 등이 구도자를 닮은 정적(靜的)인 골퍼라면 김세영, 장하나 같은 선수는 전형적인 파이터다. 만약 태극낭자 골퍼들이 모두 현재 세계 여자골프의 상위 랭킹을 점령하고 있는 구도자형 골퍼 일색이라면 골프팬으로서 어떨까 하고 질문을 던져본다.

평정심을 유지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구도자형 골퍼가 그만큼 우승 확률이 높아 승수는 많을지 몰라도 골프팬의 입장에선 재미가 덜 할 것이다. 순간순간 플레이 결과에 따른 마음의 동요나 희로애락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돌부처 같은 얼굴로 골프에 집중하는 구도자형 골퍼의 모습은 한 순간에 천국과 지옥을 오락가락 하며 절망과 자학에 빠지는 아마추어 골퍼들로서는 본받아야 할 교본이지만 대결구도를 즐기는 관전자의 입장에서는 무미건조할 수 있다.

물론 나름 한 경지에 올랐다고 자부하는 아마추어라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내면의 움직임을 읽어내며 전율이 흐르는 긴장감을 맛보고 고도의 쾌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골프팬들은 클라이맥스가 없는 연극이나 영화를 보듯 극적인 쾌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태극낭자들이 훌륭한 플레이를 펼치면서도 이렇다 할 감정 표현 없이 무생물처럼 골프를 하는 것을 높이 평가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팬들은 그때그때 벌어지는 상황에 따라 분출하는 감정을 표정과 액션으로 드러내는 다혈질 골퍼들에게도 호감을 보내며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 

PGA의 이단아로 취급받는 존 댈리, 다양한 스캔들을 생산하며 굴곡 진 선수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타이거 우즈, 자유분방함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로리 매킬로이, 반항아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리키 파울러나 카미오 비제가스 등은 구도자 같은 자세가 아니라 훌륭한 기량과 함께 상황과 감정에 휘둘리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PGA투어나 LPGA투어의 경기 수준을 높이는 역할은 이른바 구도자형 골퍼들이 맡고 있지만 팬과 스폰서를 모으고 흥행을 보장해주는 역할은 인간미를 물씬 풍기는 이런 골퍼들이 해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셸 위, 스테이시 루이스, 폴라 크리머, 모건 프레슬, 렉시 톰슨, 수전 페테르센 등은 분명 무소의 뿔처럼 고고한 플레이를 펼치는 태극낭자들과 격이 다르지만 LPGA투어의 인기와 흥행을 위해선 꼭 필요한 선수들이다.

태극낭자들이 사실상 세계 여자골프계를 지배하고 있으면서도 그에 걸맞은 인기와 평가를 누리지 못하는 것은 볼거리 재밋거리를 제공할 줄 모르는 플레이 습성 탓이 크다. 훌륭한 기량과 탁월한 평정심으로 승수를 늘려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골프팬들로 하여금 인간의 희로애락을 간접 체험께 할 수 있는 ‘스토리가 있는 라운드’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김세영이나 장하나는 태극낭자 골프의 지평을 넓히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 LPGA투어 새내기로 푸어 실크 바하마 LPGA클래식과 LPGA투어 롯데 챔피언십 우승에 이어 1일 중국 하이난섬의 지안레이크 블루베이GC에서 막을 내린 LPGA투어 ‘아시안 스윙’ 블루베이LPGA 대회에서 엎치락뒤치락 하는 명승부 끝에 우승, LPGA투어 3승으로 ‘LPGA신인왕’을 확정지은 김세영은 태극낭자들이 모두 구도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아직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했지만 우승 문턱에 자주 다가선 장하나와 함께 김세영은 전형적인 싸움꾼이다. 성공과 실패는 바로 얼굴로 나타나고 타오르는 투지가 눈에 보인다. 김세영과 장하나의 팬이 급증하는 것도 인간적인 모습과 체념과 포기를 모르는 파이터로서의 모습 때문이 아닐까.

태극낭자들이 LPGA투어의 대세가 된 이상 승리에만 연연해하지 않고 팬들에게 볼거리 재밋거리를 주는 다양한 개성이 넘치는 골퍼로 거듭 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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