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한국] 만사가 순조로우면 절로 콧노래가 나오고 휘파람을 불고 싶어진다. 그러나 골프에서만은 콧노래나 휘파람은 절대 금물이다. 콧노래나 휘파람 뒤에는 필경 비명이 숨어 있다.

좋은 체격에 구력이 20년이 넘은 L씨는 핸디캡 얘기만 나오면 난처해한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70대 중후반을 쉽게 치는데 한번 무너지면 80대를 훌쩍 넘어버리고 심할 경우 100타에 육박하기까지 한다.
핸디캡을 주고받는 내기 게임을 할 경우 상대방은 좋은 스코어를 기준으로 핸디캡을 적게 주려하고 본인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감 때문에 가능한 한 많은 핸디캡을 받으려고 한다. 골프께나 친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많은 핸디캡을 달라고 떼를 쓰는 자신이 부끄럽기까지 하지만 돈은 돈이다.

체격, 구력, 스윙자세 등을 감안한 L씨의 객관적인 골프실력을 분명 안정된 싱글이어야 마땅하다. 자신은 왜 잘 나가다가도 맥없이 무너지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한번 리듬이 깨져 플레이가 꼬이기 시작하면 “이상하네. 뭐가 문젠지 알 수도 없으니 미치겠네.”라는 푸념만 되풀이한다.

그러나 그와 라운드를 해본 사람들은 그가 어디선가 한번은 무너지고 마는 이유를 알게 된다. 그와 라운드 하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한번은 그의 콧노래나 휘파람을 듣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추락의 전주곡이다.
그는 서너 홀 연속 파 행진을 하거나 버디라도 잡게 되면 가만있지를 못한다. 오너가 된 그는 의기양양하게 먼저 드라이버를 뽑아들고 앞서 다음 홀로 걸어가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거나 조금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면 휘파람을 분다.
그가 콧노래를 부르거나 휘파람을 불고 난 다음에 날린 샷은 신기하게도 미스 샷이 되고 만다.
“잘 나가다가 웬 일이지? 골프란 알 수 없단 말이야.”라며 티잉 그라운드를 내려오는 그의 얼굴에는 벌써 다음 샷으로 미스 샷을 만회하고야 말겠다는 결의가 서려 있다. 그러나 다음 샷은 결코 그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않는다.

동반자들은 그의 콧노래를 들을 때 이미 의미심장한 미소를 교환한 터다. 누구 하나 입을 열진 않지만 속으로는 이구동성으로 “올 것이 왔군!”하고 쾌재를 올린다.
그에게 더욱 불행한 것은 동반자들이 그가 느닷없이 무너지는 원인을 지적해줄 기회를 찾지 못한다는 점이다.
동반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잘 나가던 그가 무너지면 돈 딸 가능성이 높아지거나 적어도 돈 잃을 위험은 없으니 굳이 그가 제 페이스를 찾도록 도와줄 필요성을 못 느낀다. 매번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그가 측은해 보일 때도 있지만 속이 탈대로 타버린 그에게 잘못을 지적하는 것 역시 너무 가혹할 것 같아 입을 다물어버린다.

잘 나가던 L씨가 어디선가 무너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게임이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그만 긴장이 풀리고 대신 자만심이 들어차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곧은 소리 잘 하기로 소문난 선배와 라운드 하면서 귀중한 충고를 들었다.
“자네 그 동안 호구노릇 많이 했겠구먼. 골프장에서 경망스럽게 무슨 콧노래야. 골프장에선 가무음곡은 절대 금물이라는 것 명심해!”
이후 그는 골프코스에서만큼은 콧노래나 휘파람과 결별했다. 그제야 중도추락의 징크스도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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