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것을 얻고 결실을 맺기 위해선 일단 시작이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른 아침시간 경기를 준비하는 선수들. 사진=골프한국
[골프한국] 다른 스포츠도 그렇지만 골프만큼 룰을 중시하는 경기도 많지 않다. 이전에 비해 많이 완화된 골프룰이 적용되긴 하지만, 경기 시간을 맞추지 못한 골퍼들이 중요한 대회에 출전조차 못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방전된 휴대폰으로 인해 2010년 PGA 투어 플레이오프 더 바클레이스 프로암 대회에 5분 지각한 짐 퓨릭은 본 대회 출전권까지 박탈당했고, 2013년 LPGA 기아클래식 프로암에 늦게 나온 전년도 챔피언 청야니 역시 본선 무대를 밟을 수 없었다. 제아무리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라도 지각하면 대회에 출전할 수 없다. 프로 골퍼들에게 ‘늑장 플레이’는 있을지언정 ‘지각 플레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이 골프 경기 시간에 늦어 출전하지 못한 경우는 적지 않다. 퓨릭의 지각 이후 PGA 투어는 '프로암에 지각하더라도 추가로 대회 후원자들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면 본 대회 출전 자격을 준다'고 규정을 바꾸기도 했다. 로리 매킬로이는 2012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라이더컵 대회 마지막 날 싱글 매치플레이 경기 시작 시간을 혼동해 지각 해프닝을 벌였다. 티오프 직전에 겨우 대회장에 도착해 운 좋게 경기에 참여할 수 있었다.

아마추어 골퍼들은 어떨까? 골퍼에게 지각은 에티켓을 따지기 전에 자격이 없다고도 하고, 비즈니스 골프에선 라운드 1시간 전에 도착하는 것이 에티켓이라고도 한다. 간혹 라운드 때마다 습관적인 지각으로 함께하는 동반자들의 마음을 초조하게 만드는 강심장 골퍼도 있지만 대부분의 골퍼들은 제시간을 지킨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얼마 전 미스터리하고 황당한 경험을 했다. 필자는 아무리 이른 새벽 골프라도 언제나 설정해 놓은 시간보다 먼저 깨어나는 습관이 있다. 그러나 그날은(아직도 알 수 없는 것이) 알람 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푹 자고 있는데 정적을 깨우는 전화벨이 울렸다.
“어디쯤 오고 계세요? 아침밥은 뭘로 주문할까요?”

함께 골프를 하기로 한 동료의 전화였다. 미안하고 당황스러운 마음에 부리나케 서둘러 달려갔다. 편한 직장 동료들이었지만 미안한 마음에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를 하고서야 네 번째 홀인 것을 알아차렸다. 동반자들에게 폐가 될까 다음 홀부터 치겠다고 했지만, 동료들은 천천히 준비하고 그 홀부터 같이하자며 필자를 배려했다.

때마침 네 번째 홀이 파3홀이었기에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클럽을 준비해 가볍게 휘둘렀다. 운도 따라 온 그린이 되었고, 4m 정도의 짧지 않은 거리의 퍼트가 홀인되어 버디를 기록했다. 첫 홀에서 기분 좋게 출발해서인지 그날 15홀 최저타 기록을 작성했다. 지각으로 건너뛰었던 3개의 홀에서 심각하게 망가지지 않았다면 아마도 생애 최고의 스코어를 기록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필자는 얼마 전 버리지 못하고 책상 위에 두었던 그 스코어 카드를 치웠다. 아쉬운 마음에 책상에 놓아두고 그날의 플레이를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아닌 건 아닌 것'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미련으로 붙잡고 있어도 그날 라운드는 15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늦잠을 잤던지 시간을 혼동했던지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떠한 이유에서든 게임 시작 전에 도착하지 못한 것은 잘못이다. 그로 인해 시작이 없었던 경기는 끝도 있을 수 없었고, 그 스코어 카드는 홀을 다 채우지 못한 미완성 경기의 무의미한 종이쪽지였을 뿐이다.

갑오년(甲午年) 새해가 시작됐다. ‘시작이 있어야 끝이 있다’는 진리가 한 해를 시작하는 다른 골퍼들에게도 유용한 가르침이 될 것 같다. 원하는 것을 얻고 결실을 맺기 위해선 일단 시작이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골퍼로서의 계획이나 바람을 생각에만 머물지 말고 실천해 보길 바란다. 그렇게 하다 보면 골프에서도 인생에서도 최고의 해가 되지 않을까.  골프한국(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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