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과 을의 관계 속에서 왜곡되는 골프의 매너.

사진=골프한국
[골프한국] 한 중소기업 사장이 외국 출장을 다녀오면서 꽤 좋은 양주 한 병을 사 왔다. 자신이 운영하는 업체에 하청을 주고 있는 대기업 본부장을 위한 선물이었다. 대기업 본부장은 그 양주를 정부의 아는 고위 관리에게 주었고, 그 술은 다시 언론사 간부에게 건네졌다. 그 간부는 딸의 담임 선생님에게 양주를 선물했고, 담임 선생님은 자신의 아들에게 과외를 해주고 있는 대학생에게 주었다.
결국 그 비싼 양주는 대학생과 그의 친구들이 자취방에 둘러앉아 하룻밤에 마셔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씁쓸한 웃음을 진 경험이 있다.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갑과 을, 상하 관계를 희화적으로 그린 모습의 하나일 것이다.

누가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철없이 골프를 쳤다느니, 누가 누구를 접대했다느니… 이런 끊이지 않는 뉴스 속에는 항상 애꿎은 골프가 언급된다. 그래서일까? 공직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수시로 ‘골프 금지령’이 떨어지고 있고, 때문에 예약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바꿔 가면서까지 골프장으로 향하는 현상도 생겨난다고 한다.
세계 최고의 골퍼들만 참가하는 PGA와 LPGA투어에서도 최고의 기량으로 활약하고 있는 우리나라 골프 선수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좋은 스포츠인 골프가 이상하게 왜곡되는 안타까운 현장이다.

현실적으로 한 라운드를 위한 비용이 만만치 않다 보니 흔히 말하는 을은 갑의 골프 비용을 대신 지불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접대하는 입장에서 보면 비싼 술값에 몸도 상하는 술 접대에 비해 함께 운동을 하며 장시간 대화를 할 수 있는 골프가 매력적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목적으로 라운드를 하다 보면 플레이 자체가 왜곡되기 쉽다. 접대를 받는 사람에게는 수시로 멀리건과 넉넉한 컨시드가 주어지고 라이 개선도 큰 흉이 될 수 없다. 때로는 벌타 없이 볼을 옮겨 놓고 칠 기회가 제공되기도 한다.

뭐, 이 정도는 주말을 즐기기 위한 골퍼들의 여유로운 장면으로 넘기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하듯이, 접대를 자주 받은 골퍼들 중에는 골프룰은 언급하지 않더라도 매너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들도 상당수인 것 같다.

너그러운 동반자에 의해 모든 것이 허용되는 상황이니 제대로 룰도 모르고 설령 알더라도 그 룰을 지키며 플레이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멀쩡하게 놓여 있는 볼도 반드시 한 번 건드리고 나서야 플레이하는 골퍼도 있다. 습관이다 보니 그렇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것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우리나라 상당수의 골프장에서 OB가 나면 OB티로 이동해 티를 꽂고 플레이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원래 골프룰에는 ‘OB티’라는 말이 없다. OB가 나면 1벌타를 받고 원구를 플레이했던 지점으로 가서 다시 샷을 해야 한다.
하지만 평균 7~8분 간격으로 팀을 운영하는 우리나라 골프장의 특성상 이런 룰을 적용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골프장은 대응책으로 로컬룰을 만들어 OB티에서 다음 샷을 하도록 한다. 신속히 진행해야 하는 캐디들 입장에서도 OB티에서 티를 꽂아도 허용했거나 혹은 종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필자가 아는 선배가 벙커 플레이를 할 때의 일화다. 그 선배는 벙커에 들어가 한참을 볼과 씨름하고 있었다. 벙커 모래 위에 티를 꽂는데 모래가 부드러워서 볼을 티 위에 세우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는 OB티는 물론이고 당연히 벙커에서도 티 플레이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더 어처구니 없는 것은 그런 장면을 봐왔던 어느 누구도 그 잘못을 지적하지 않은 것이다. 그 선배는 요즘 말하는 ‘슈퍼 갑’이었던 모양이다.      골프한국(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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