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의미의 승리는?

유명 골퍼들이 골프를 인생에 비유했듯이, 실제로 골프의 한 라운드에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담겨있다. 경기가 잘 풀릴 때는 환희와 기쁨에 들뜨고, 경기가 안 풀릴 때는 분노와 좌절에 빠진다. 때론 욕심을 부리며 스코어에 집착하기도 하고, 때론 끝없는 자기 책망과 후회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늘 희망과 기대를 품고 필드로 향한다. 그런데 이처럼 다채로운 골퍼의 감정 속에는 이 ‘경쟁심’이란 게 존재한다.

5년 전쯤, 필자는 국내 한 기업이 주관하는 골프행사에 초청을 받았다. 해외에서 열린 이 행사에는 100여명 정도가 참석을 했는데, 당시 주최측은 나이, 직급, 골프실력 등을 고려하여 팀을 구성했다.
그때 주최측 담당자가 필자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다.
“K모회사 여성 임원 한 분이 골프 실력이 아주 뛰어난데요, 그 분과 함께 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경기 전에 그 여성 임원과 인사를 나누었는데, 필자보다 서너 살 위인 듯 했다.

드디어, 라운드가 시작되었다.

동반자와 필자는 경기의 재미를 더할 생각으로 홀 매치 내기를 했다. 각 홀 별로 승부를 내어 지는 사람이 캐디피를 내는 것이었다. 10~15달러 수준의 캐디 피를 내는 것이 고작이니, 사실 이기고 지는 것에는 큰 의미가 없었다.

얘기는 이미 들었지만, 그 여성 임원은 웬만한 남자 골퍼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겨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골프실력이 상당히 뛰어났다. 처음 필자가 한 두 홀을 앞서 나갔을 때만 해도 게임은 화기애애했고 약간의 긴장감은 있었지만 마음의 여유도 있었다. 동반자에게 잘 친다고 칭찬도 하고, 넉넉하게 컨시드도 주었다.
하지만 경기 중반을 넘어설 때쯤 필자는 한 홀을 역전 당했다. 그 때부터 필자의 얼굴은 굳어졌고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다. 컨시드도 주지 않았다.
필자의 머리 속엔 ‘반드시 이겨서 뭔가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 찼다. 경쟁심이 발동한 것이다.
남은 경기 역시 막상막하였다. 결국은 씩씩거리며 최선을 다한 필자가 한 홀 차이로 그 여성 임원을 이겼다. 그리고 잠시 동안 이겼다는 만족감에 빠졌다.

처음부터 필자는 멋있게 이기고, 폼 나게 캐디 피를 지불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라운드가 끝나고 캐디 피를 계산하러 갔더니 캐디가 이렇게 말했다.
“동반 라운드 한 여성 파트너 분이 경기 전에 이미 캐디 피를 지불하셨습니다.”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헛짓했구나! 아득바득 기를 쓰고 이기려고 했는데 쓸 데 없는 짓이었구나...'
필자는 경기에선 이겼을지 모르지만, 속 좁음을 드러냈고 비즈니스 골프 매너에서도 무릎을 꿇은 것이었다.

그 날 저녁에 열린 행사 연회에서 각 분야별 시상이 있었다. 그런데, 매너상에 필자의 동반 파트너였던 여성 임원이 수상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눈치를 챌 수 없었겠지만 필자는 부끄러움에 어쩔 줄 몰랐다.
‘이런 망신이 있나!’

부끄러움과 망신을 안겨 준 그 사건 이후 필자는 골퍼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조금 성숙해졌다. 어느 정도의 경쟁심은 자신을 채찍질 하는 동기가 되지만, 이것이 과하면 욕심에 눈이 멀어서 더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는 것을. 결국 골프에서 골퍼가 경쟁할 상대는 동반자도 자연환경도 아닌, 바로 골퍼 자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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