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뀌듯 클럽을 바꾸며

요즘 같은 연말이 되면 으레 한 해를 되돌아보게 되는데 필자 역시 마찬가지다. 개인사나 비즈니스 부분에서도 그러하지만, 특히 골퍼로서 어떠했는지도 되짚어보게 된다.

필자는 올 시즌 중반에 드라이버와 퍼터를 바꾸면서 몇 번의 변화를 겪었다. 계절이 변하면 옷을 바꿔 입듯이 골프장비를 교체하는 것이 그렇게 쉬워졌지만, 실상 클럽을 바꾼다는 것은 골퍼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올 봄까지 5년 정도 사용했던 야마하 드라이버는 필자와 함께 한 세월만큼이나 특별한 느낌보다는 익숙하고 무난한 편이었다. 그런데 여름에 접어들 때쯤 테일러메이드 시리즈 신제품인 R11을 접하게 되었다. 이 드라이버는 이미 아마추어 골퍼들 사이에서는 신지애의 드라이버로 유명했고 남자용 드라이버임에도 불구하고 올해 KLPGA 경기에서 종종 볼 수 있었다.

새로운 드라이버를 필드에 가지고 갈 때마다 우유빛깔의 미려한 디자인과 자태는 동료 파트너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래서인지 “이거, 한 번 쳐봐도 될까?”라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그런데 이 드라이버는 샤프트 강도가 필자의 스윙에 맞지 않았다. 잘 달래서 치지 않으면, 원했던 방향으로 날아가지 않고 심한 훅이 나기 일쑤였다. 기존에 사용했던 드라이버들과는 전혀 달랐다. 하지만 오히려 무지막지하게 힘을 드리지 않고도 정확한 스윙 궤도와 템포를 생각하며 스윙을 하니 오히려 일관성 있는 드라이버 샷 결과를 가져오기는 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골프의 황금시즌인 가을이 찾아왔다.

그 날도 가을 기운을 물씬 느끼며 라운드를 나갔는데, 친구의 골프백에 꽂혀있는 구형의 드라이버가 눈에 들어왔다. 벌써 주인이 네댓 번 바뀐 오래된 골프채였다.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고 한 번 쳐 보았다.
‘아, 골프채를 치는 손맛이 느껴진다.’
샤프트는 강했고 로프트가 낮은 드라이버였다.
필자는 주저하지 않고 가지고 있던 신형 드라이버와 그 오래된 드라이버를 맞바꾸었다.

필자에게 가장 인상적인 클럽은, 국내 한 중소기업이 1990년대 후반에 일 년 동안만 생산했던 골프채다. 골프공만 생산했던 기업이었는데 야심차게 드라이버와 우드를 개발하게 되었다. 골프채에 대한 평가 및 시타를 위해 골프채를 선물 받았는데, 추천 받은 드라이버 중 하나는 슬라이스가 자주 났다. 문제는 강도가 강한 샤프트가 당시 필자의 스윙 실력으로는 다루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덕분에 필자는 샤프트의 강도, 라이각, 로프트각, 무게 등 골프채에 대한 많은 공부와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서 그 드라이버가 깨져버렸다. 결국 그 업체는 일 년 만에 골프클럽 생산을 중단했고 그 사업체의 소유주도 바뀌었다. 하지만 필자는 여전히 그때의 우드를 사용하고 있다. 필자의 비밀병기 우드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필자는 김미현 프로처럼 우드를 잘 사용한다는 얘길 종종 듣는다. 그렇게 결과가 만족스러우니 굳이 이 병기를 바꿀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사실 15년 정도 된 우드다 보니, 어디서 문제가 발생했는지 우드에서 나사가 빠져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나기도 하지만, 이 우드에는 필자의 믿음이 담겨있다. 우드가 잘 맞지 않을 때는 필자 스윙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클럽의 문제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필자의 골프백에 요즘 많이 유행한다는 하이브리드 한번 꽂아 본 적이 없다.

늦가을에서 겨울로 들어설 쯤, 퍼터도 바꿀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5년 정도 사용중인 이 퍼터는 장인이 수작업으로 만든 제품이라 필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필드에 나가면 항상 캐디들이 그런 것은 처음 본다며 감탄을 한다.
그런데 감각에 의존하는 필자의 퍼팅은 어떤 날은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감이 좋다가, 어떤 날은 18홀이 끝날 때까지 그 감이 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 때가 딱 그랬다. 퍼팅이 잘 되지 않자,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옛날 퍼터를 다시 꺼냈다. 연습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5년 동안 사용하지 않은 퍼터를 들고 그린에 올랐으니, 잘 될 턱이 없었다.

대부분의 아마추어 골퍼들이 볼이 잘 맞지 않거나 혹은 거리를 늘릴 욕심에 신제품이 나오면 망설임 없이 골프장비를 바꾼다. 그리고 짧은 시간에 예상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는다. 그러면 그 원인이 새 드라이버나 새 퍼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새로운 클럽을 교체했다면, 익숙해지기 위해서 더 연습을 할 것이고, 더 집중할 것이며, 새 것이라 더 관심을 가질 것이다. 또한 새 클럽에 대한 기대도 높기 때문에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처럼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제 골퍼가 선택할 수 있는 클럽의 종류는 대단히 많다. 그리고 클럽은 스코어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기도 하다. 그러므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올바른 클럽을 골라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클럽에 대한 약간의 상식도 필요하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특정 브랜드보다는 자신에게 맞는 클럽을 고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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