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후 갤러리(gallery)에 대한 관전 태도가 언급될 때가 있다.

이 사진은 칼럼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제공=코오롱 한국오픈 대회조직위원회


지난 9일 PGA 투어 프라이스닷컴 오픈 대회에서 타이거 우즈는 한 갤러리가 던진 핫도그에 맞을 뻔 한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지난 11일 최경주는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골프 대회에서는 경기장 안에 갤러리들이 휴대전화를 소지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며 新골프문화에 대한 언급을 했다. 그 다음날인 12일 통산 72승의 위업을 달성했던 소렌스탐이 국내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갤러리들의 휴대폰 소지를 금지한다는 것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며, 이는 갤러리 소음도 결국은 경기의 일부이며 선수들이 정신력으로 이겨내야 함을 지적하며, 최경주와는 다른 의견을 밝혔다.

왜 골프에서는 선수들의 경기를 관람하는 사람에게 ‘갤러리’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었을까?
갤러리(gallery). 흔히 사용되는 갤러리라는 단어는 일반인들에게 참 친숙한 단어이다. 언젠가부터 인사동을 가득 메웠던 ‘OO화랑’이란 간판들이 ‘OO갤러리’라고 바뀐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용어는 화랑이나 미술관 외에도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서양사에서 암흑기였던 중세시대가 지나고 르네상스시대가 되자 많은 미술품과 진기한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시기에 돈과 권력이 있는 부호들은 이런 것들을 사다 모아 자신의 집에 특별한 공간을 꾸미기 시작했고, 이를 이태리어로 ‘스투디올로(studiolo)’라 불렀다. 당시 명문가였던 메디치가(家) 역시 이런 공간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것이 르네상스 최고의 미술관이라 알려진 ‘우파치'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이 우파치의 복도를 ‘갈레리아’라고 불렀는데, 이 말이 바로 ‘갤러리’를 의미한다.

골프에서 관람객을 ‘갤러리’라고 부르는 것은 이 미술관의 복도에서 기인한 것은 아닐까? 홀을 따라 페어웨이 주변에 복도처럼 만들어진 긴 길(갤러리)을 따라 가며, 골프 경기를 펼치는 선수들을 마치 미술품처럼 감상하라는 의미가 아닐까?
필자의 상상이지만, 이런 의미에서 갤러리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면, 높은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골프 경기를 관람하는 갤러리들에겐 일반 운동경기와는 다른 매너나 에티켓이 분명히 존재할 것 같다. 국내외 유명 미술관이나 갤러리들 대부분은 잡담이나 전화통화를 금지하며, 때에 따라서 사진촬영도 금지하지 않는가. 최소한 샷에 집중하는 순간만이라도 선수의 플레이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선수들과 관람객 모두에게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다. 또 선수들의 멋진 샷을 감상한 후 터져 나오는 탄성이나 환호는 즐거움을 배가 시켜주지 않을까?

얼마 전 청야니가 우승한 LPGA 하나은행 챔피언십의 갤러리 입장권 뒷면에도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 ‘갤러리들의 사진 촬영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습니다. 가져오신 카메라는 차량이나 가방 안에 보관하여 주세요. 휴대폰으로 사진 촬영하는 것 역시 금지되어 있습니다.’

한국 남자 골프 선수를 대표하는 최경주가 왜 휴대폰을 언급한 것일까? 얼마 전 신한동해오픈에 참가했던 최경주 주위엔 항상 수많은 갤러리들이 운집해 있었다. 국내에서의 최경주 인기를 실감케 했으며, 그로 인해 동반라운딩을 하는 선수들에겐 부러우면서도 위압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많은 인원이 몰려다니다 보니 여기저기 실랑이가 벌어졌고 선수 본인이 경기에 집중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생겨났다.

그러면 소렌스탐은 왜 최경주와는 달리 휴대폰 소지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언급했을까? 그것은 그녀의 선수생활 시기와 국가적인 차이가 있을 것이다. 스마트폰이나 고성능 카메라폰이 보급된 것은 불과 최근 2~3년 사이다. 소렘스탐이 한참 경기를 했던 시기는 지금과는 분명 다른 상황이었다. 또한 국내에선 카메라폰으로 사진 촬영시 소리가 나도록 되어 있지만, 다른 나라는 그렇지 않은 곳도 많다. 거기다가 우리의 골프 열정과 선수들에 대한 관심 표현은 다른 나라와는 확연히 차별화된다. 그러므로 어쩌면 소렌스탐은 국내에서 열리는 대규모의 대회에서 골프 선수들의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골프 역사에서 수많은 갤러리들이 한 선수 주변에 몰려다니기 시작했던 것은 아놀드 파머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아놀드 파머가 투어를 시작하고 몇 년이 지나자 그를 따라다니는 대중이 생겼는데, ‘오거스타 신문’의 부편집장은 파머의 이런 지지자들을 ‘아니의 군대’라고 지칭했다(아니는 아놀드의 애칭). 바로 갤러리다. 40년이후 타이거 우즈가 출연할 때까지 그런 갤러리들의 대규모 운집은 보기 힘들었다.

갤러리들은 골프산업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입장권을 사고 방문하는 고객들은 골프장과 골프대회 주최측에 수익을 가져다 주며, 많은 갤러리들이 모이는 대회는 광고 단가도 올라간다. 결과적으로는 프로 선수들에게도 이 혜택으로 돌아갈 것이며, 따라서 선수들은 갤러리들과 공생하는 방법을 나름대로 가지고 있어야만 할 것이다.

논란의 중심에 선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선수 자신의 뛰어난 집중력으로 좋은 성적을 낸다면 그만큼 이상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이번 국내에서 열렸던 대회에서 각 우승자였던 리키 파울러와 청야니는 우리에게 그것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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