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연합뉴스
유리 천장(glass ceiling)이라는 경제학 용어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 때문에 더 이상 위로 올라갈 수 없는 것처럼, 특정 조직이나 분야에서 충분히 능력을 갖춘 사람이 인종이나 성별 등의 이유로 더 이상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없음을 의미한다.

스포츠 분야에서도 이 유리 천장은 존재하며, 지금도 많은 선수들이 그것을 깨기 위해서 고군분투(孤軍奮鬪) 중이다. 이들 중 박세리가 있다.

그녀는 1998년 아무도 엄두를 못 낸 LPGA 투어에 데뷔하여, 아시아인이라는 편견과 여성이라는 제약의 유리 천장을 통쾌하게 깨부수고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흑인은 참여조차 불가능했던 PGA에서 타이거 우즈가 완전히 판도를 바꾸었듯이.

그런데 지난주에 박세리가 새로운 스폰서를 만나게 되었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어, 박세리가 3년7개월이나 백의종군(白衣從軍) 했었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프로 선수에게 메인 스폰서가 없다는 것은 벼슬이 없다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프로라면 심하게 자존심이 구겨지는 상황이다. 이유야 어떻든, 그녀는 그 긴 시간을 감내했었구나.

얼마 전 한국선수들의 LPGA 100승을 앞두고, 국내 언론들이 세리 키즈에 초점을 맞추었을 때, 현지 언론들은 박세리에 주목했다. 당연한 것이 지금까지 LPGA투어에서 한국선수들이 거둔 99승 가운데 25승을 박세리가 해냈다. 그녀는 2007년에 세계 24번째로, 그리고 역대 최연소 기록으로 ‘명예의 전당’에 입회도 했다. 하지만 그녀도 30대 중반을 앞둔 한물간 전설에 불과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박세리는 우리에게 골프 선수 그 이상이다. 골프라는 스포츠의 경계를 넘어, 칠흑 같은 외환위기의 상황에서 온 국민에게 용기를 준 희망의 상징이었다. 20대의 박세리 못지 않게 지금의 박세리도 멋있다. 슬럼프에 하염없이 떨어졌다가 빠져 나온 현재의 그녀에겐 20대와는 또 다른 성숙함이 있다.

그녀는 최근 인터뷰마다 앞으로 후배들에게 더 좋은 여건을 만들어 주고, 후배들을 양성할 계획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LPGA 투어에서 한국 선수들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노력 중이다. 한국 선수들의 성적이 너무 좋아서 현지에서의 견제도 만만치 않고 괜한 오해도 받는데, 그럴 때마다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금처럼 많은 후배들이 미국 무대에 진출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도 개척자인 박세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제, 박세리가 깨야 할 마지막 유리 천장은 인종도, 성별도 아닌, 바로 ‘나이’라는 제약조건이다. 그녀는 4대 메이저대회 가운데 단 한 개의 우승컵만을 남겨놓고 있다. ‘커리어 그랜드 슬램’ 달성은 선수로서 그녀의 가장 큰 목표가 되었다. 그녀가 마지막 유리 천장을 깨고 나와 훨훨 나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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