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칼럼 내용과 무관합니다. 사진=골프한국


[골프한국] 한 골프광이 있었다. 골프 입문 초기에는 너무 골프에 매달려 사업을 소홀히 하는 바람에 회사가 위기를 맞기도 했다. 어느 정도 골프를 알고는 사업도 골프에 몰두하듯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혀 사업도 일으키고 골프 실력도 높이는 데 성공했다.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사업을 골프처럼, 골프를 사업처럼 하라!”고 말할 정도가 되었다.

그가 이런 골프 철학을 갖게 된 것은 물론 스코어를 줄여 가는 과정을 통해서였다. 그도 여느 아마추어 골퍼와 마찬가지로 온갖 징크스에 시달렸다.

6번 아이언까지는 쉽게 사용하는데 5번부터는 잡는 것조차 겁이 났다. 30~80야드 거리를 남겨두면 어김없이 미스 샷을 연발하고, 벙커에서 두세 타를 까먹는 것은 다반사였다. 드라이버는 그런대로 치지만 페어웨이 우드를 잡으면 겁부터 났다. 

어느 날 내기 골퍼에서 호되게 당한 그는 롱 아이언에 대한 징크스에 도전하기로 작정했다. 롱 아이언에 친숙해지기 위해 한동안 연습량의 3분의 2를 롱 아이언에 할애했다.

한 달쯤 지나 롱 아이언에 대한 공포가 사라지면서 7~8번 아이언 다루듯 부담이 없어졌다. 다음엔 피칭웨지와 샌드웨지 연습에 전념, 어중간한 거리의 어프로치 샷에 친숙해질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약점을 찾아내 극복해 나가다 보니 스코어가 좋아지고 골프의 묘미가 더해졌다.

사업도 이런 식으로 하면 못할 게 없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골프의 징크스를 없애나가듯, 사업의 취약점을 하나하나 찾아내 공략하기 시작했다. 곧 하나둘 성과가 나타나면서 전망 없어 보이던 사업이 새로운 활력을 얻으며 살아났다.

이런 그가 어느 날 연습장에서 친구에게 레슨을 하다, 연습장 소속 프로로부터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하면서 남의 밥줄 끊어놓을 일 있느냐?”는 항의를 받았다.
불쾌해진 그는 “내가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실력으로 판가름내자”고 제안, 레슨 프로와 결전을 벌이기로 했다. 각자 비용을 부담키로 하고 레슨 프로와 대결을 벌인 결과는 그의 완승으로 끝났다.

그는 “나도 다음부터는 레슨을 하지 않겠다. 자격도 없지만 남을 가르친다는 것이 정말 겁난다”고 말한 뒤 그 약속을 지켰다.
레슨 프로가 물었다. “선수도 아니면서 완벽한 플레이를 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비결? 있지요. 징크스를 인정하지 않고 극복하는 것이지요.”

▲사진=골프한국


물만 보면 어김없이 볼을 집어넣고 마는 골퍼. 러프 속에 숨은 OB 말뚝을 용케 발견해내곤 드라이버 샷을 망치는 골퍼. 벙커에 들어갔다 하면 2~3타를 치고 마는 골퍼. 긴 퍼팅은 잘도 넣으면서 1m 정도의 짧은 퍼팅을 놓치는 골퍼. 그늘집에서 음식을 먹고 나면 무너지는 골퍼. 특정 번호가 찍힌 볼로 플레이하면 꼭 OB를 내고 마는 골퍼.

골퍼들의 징크스를 꼽으라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골프와 전혀 상관없는 것에서도 징크스를 만들어내 거기에 구속되기까지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신이 예언할 때나 마법을 부릴 때 사용되었다는 새의 이름에서 유래된 징크스(Jinx)는 불길한 조짐이나 불운을 상징한다.
징크스라는 새는 특히 골퍼들을 좋아해서 골프장에서 많이 서식하는 것 같다. 악령처럼 골퍼들에게 달라붙어 괴롭히고 골탕 먹인다.

그러나 징크스를 갖게 된 계기나 이유를 곰곰이 따져 보면 징크스가 얼마나 근거 없고 터무니없는지 깨닫게 된다. 징크스는 간사한 인간의 마음이 순간의 실수를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도피처일 뿐이다. 

인간의 상상력은 불가능한 일을 이뤄내는 위대한 힘과 함께 존재하지도 않는 불행과 불운을 만들어내는 괴력을 지니고 있다.

인도의 성자로 불리는 오쇼 라즈니쉬의 『지혜로운 자의 농담』에 실린 다음의 우화는 상상력이 만들어낸 징크스의 속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14년 동안 전신마비로 걷지 못하고 자리에 누워 있었던 한 중풍환자가 있었다. 어느 날 집에 불이 났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빠져나왔는데 그는 불난 집에 갇혔다. 불길이 점점 드세어지자 다급해진 그는 자신이 중풍환자라는 사실을 잊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 집 밖으로 뛰어나왔다.
불타는 집에서 달려 나오는 그를 보고 사람들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잠깐! 당신은 중풍환자가 아니냐?”
이 소리를 들은 그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이 우화는 인간이 갖고 있는 대부분의 병이 육체적인 것 못지않게 마음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의 마음이 병을 잊어버리면 어떤 약보다도 더 빨리 그 병을 사라지게 할 수 있고 마음속에 병을 담고 계속 씨름하면 병의 증세는 더욱 심해질 따름이라는 가르침이다.

▲사진=골프한국


1950년대에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영국의 컨테이너 운반선 한 척이 스코틀랜드의 한 항구에 닻을 내렸다. 포르투갈 산 포도주를 운반하는 배였다. 한 선원이 짐을 다 부렸는지 확인하려고 냉동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그가 안에 있는 것을 모르고 다른 선원이 밖에서 냉동실 문을 닫아버렸다. 안에 갇힌 선원은 있는 힘을 다해 벽을 두드렸지만 다른 선원은 이미 자리를 떠났고 배는 포르투갈을 향해 출항했다.

냉동실 안에 식량은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선원은 쌓인 식량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자기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컨테이너 안에 있던 쇳조각 하나를 들고 냉동실 벽에 자기가 겪은 고난의 이야기를 날짜별로 적어나갔다. 그는 죽음에 이르는 과정과 고통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냉기가 코와 손가락과 발가락을 꽁꽁 얼리고 몸을 마비시키는 과정, 언 피부가 고통을 주는 과정을 묘사했다. 자기의 온몸이 조금씩 굳어지면서 하나의 얼음 덩어리로 변해 가는 과정을 기록했다.

배가 리스본에 도착하고 냉동 컨테이너의 문을 연 선장은 죽어있는 선원을 발견했다. 선장은 벽에 꼼꼼하게 새겨놓은 고통의 일기를 읽었다. 그러나 정작 그가 놀란 것은 일기의 내용이 아니었다. 컨테이너 안의 온도계가 섭씨 19도를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정도의 온도라면 쾌적한 온도였다. 컨테이너 안에는 곡물 외에는 다른 화물이 없어 스코틀랜드를 출항할 때부터 냉동장치는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선원은 스스로 컨테이너의 냉동장치가 작동하고 있다고 착각, 컨테이너 안이 영하라고 생각해 추위를 느꼈고 끝내 죽음에 이른 것이었다. 그는 자기 혼자만의 상상 때문에 죽음을 자초한 것이다. (『개미』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중에서)

인간의 상상력이란 불가사의한 초능력과 함께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한다.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때 징크스가 된다. 그러나 깨질 것 같지 않은 지독한 징크스도 거부하는 사람에겐 무릎을 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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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방민준의 골프세상' 바로가기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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