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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준의 골프세상] 탁월한 기량이나 에티켓이 전부가 아니다: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아름다운 골퍼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사진은 칼럼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30대 초반 인연을 맺어 40여 년 이어진 골프 여정은 인생보다 더 인생다운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이솝 경영학>이란 책으로 알려진 미국의 경영컨설턴트 데이비드 누난(David Noonan)의 명언이 절절하게 다가왔다. 
"골프는 결코 끝나지 않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그것은 다듬어진 자연에서 외롭게 헤매는 것이다. 골프는 혼자서 하는 것이다. 골프는 생각할 시간이 너무 많고 또 생각해야 할 것도 너무 많다. 골프는 인생 자체보다 더 인생 같은 것이다."

프랑스의 극작가이자 외교관인 장 지라두(Jean Giradoux)가 내뱉은 골프에 대한 단상도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골프코스는 머물지 않고 가능한 한 빨리 지나가야 할 덧없는 세상살이 모든 것의 축약이다."

골프 관련 글을 쓰며 '에이지 슛'까지 경험했지만 골프는 끊임없이 희로애락을 안기며 새로운 깨달음을 준다. 골프의 진수를 좇아 밀림을 헤매는 '골프탐험가'를 자처하면서도 골프 애호가로서 참담한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던 일은 선승(禪僧)의 대오(大悟)와 같은 최상의 깨달음이었다.

필자를 포함해 골프깨나 친다는 세 싱글은 K와 라운드한 뒤 처음으로 골퍼로서 참담한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다. 라운드 중에 그가 보여준 행동은 20년 가까이 규칙과 에티켓을 지키며 골프를 즐겨왔다는 자존심을 너무도 하찮게 만들었다. 물론 그로부터 얻은 감동이 더 컸지만 그만큼 스스로를 돌아보고 부끄러움을 절감케 했다. 

구력 10년이 갓 넘었다는 40대 후반의 K는 기량 면에서는 내세울 게 없어 보였다. 사람 좋아 뵈는 외모와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 미소가 친근감을 주었으나 게임의 적수는 아니었다. 그에게 10개의 핸디캡을 주고 가벼운 내기로 라운드는 시작되었다.

그의 골프는 평범했다. 장타도 아니었고, 정교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때때로 미스샷을 날리긴 해도 그는 한 샷 한 샷에 정성을 다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한마디 불평하지 않았다. 더블보기를 하고 나서도 웃는 얼굴로 셈을 했다. 어쩌다 돈을 받게 되면 귀한 것이라도 되는 양 대견해하며 지갑에 잘 챙겨 넣었다.

네 번째 홀을 맞기 전까지 일행은 그를 '싱글들이 데리고 놀기 좋은 상대'로 여겼다.

그가 보통의 골퍼가 아니란 징후를 네 번째 홀에서 목격했다.

이야기는 첫 홀로 돌아간다. 티오프 하기 전 몸을 풀면서 일행 중 한 사람이 갑자기 가슴에 통증을 느끼며 불편을 호소했다. K를 제외한 3명은 수없이 결투를 벌여온 터라 아무도 가슴 통증을 호소하는 동반자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스윙 연습을 하다 말고 가슴을 두드리며 평소 하지 않던 동작을 하는 것으로 보아 뭔가 불편한 모양이라고는 생각했으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엄살떨지 말라"가 전부였다.

그러나 K는 그 친구에게 뭔가 말을 건네더니 캐디에게 무언가 부탁하는 듯했다. 통증을 호소하던 동반자는 라운드가 시작되자 조심하면서 플레이를 풀어나가 아무도 그 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는데 K는 계속 캐디와 말을 주고받고 어디에 연락하는 듯했다.

4번째 홀 옆 그늘집에서 그가 갖고 나온 작은 알약은 그 결과물이었다. 그는 아스피린 두 알을 물병과 함께 건네며 "저는 혈압약으로 복용합니다만 이게 만병통치약입니다"라고 말했다.

가슴 통증을 호소하던 친구는 예상치 않은 K의 호의에 감복하며 약을 먹었다. 나머지 둘은 이런 K를 '대단한 분이구나' 생각하며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러나 이 정도는 이후에 닥친 감동에 비하면 전주에 지나지 않았다.

8번째 홀에서 동반자 중 한 사람이 뒷땅을 치는 바람에 오른 손목에 이상이 생겼다. 캐디가 갖고 있는 물파스를 발랐으나 효험이 없는 듯했다. 손목 부상 때문에 평소 기량을 발휘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명색이 싱글이라 그럭저럭 버텨나갈 요량이었다.

전반 9홀이 끝나자 K는 캐디에게 후반 시작 때까지 시간 여유가 있냐고 물었다. 캐디가 "한 20분 기다려야 한다"고 대답하자 K는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사라졌다.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던 K는 거의 20분이 지나서야 나타났다. 그리곤 손목 부상을 입은 친구에게 다가가더니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손목을 강하게 조여주는 압박붕대 역할을 할 수 있는 의료제품이었다.
"이걸 한번 써보세요. 효과가 좋더라고요. 저도 평소 백에 갖고 다니는데 오늘은 안 가져왔네요. 골프장 입구 약국에서 사 왔어요."

일행은 모두 말문을 잃었다. 캐디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사이 차를 몰고 골프장 입구의 약국에 다녀온 것이었다.

어쩌면 저럴 수 있을까. K를 제외하곤 모두 충격을 받은 듯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조용히 지켜볼 뿐 말을 잃었다. 

후반 라운드가 시작되자 가슴 통증을 호소하던 친구도, 손목 부상을 입은 친구도 플레이의 내용이 달라졌다. 저렇게 동반자를 배려하고 생각하는 골퍼가 끼어 있는데 함부로 골프를 칠 수 있겠는가. K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신의 플레이에 집중했다. 

일행은 모두 골프장에서 주고받을 수 있는 감동이 탁월한 기량이나 에티켓이 전부가 아니란 사실을 깨달은 것 같았다. 골프를 이렇게 즐기는 사람도 있구나. 스코어나 내기에 연연해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에게 배려를 베푸는 그 자체에서 즐거움을 맛보는 그는 정말이지 골프천사였다.

누가 말했던가. "골프코스는 머물지 않고 가능한 한 빨리 지나가야 할 덧없는 세상살이 모든 것의 축약이다"이라고. 
아쉽게도 하늘은 이런 천사를 먼저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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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입력날짜 : 2020-09-10 14:36: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