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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준의 골프세상] 가혹한 시험 통과한 세계304위 포포프…LPGA AIG여자오픈 우승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조피아 포포프가 스코틀랜드의 로열 트룬 골프클럽에서 열린 2020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 골프대회 AIG 여자오픈(전 브리티시 여자오픈) 우승을 차지했다. 사진제공=R&A via Getty Images/AIG 위민스 오픈


[골프한국] 골프의 고향 스코틀랜드의 링크스 코스는 가혹하다. 잘 가꾼 공원 같은 세계 여느 골프코스와는 확연히 다르다. 황무지 같은 들판이나 다름없다. 

2020년 시즌 첫 메이저대회 AIG 여자오픈(전 브리티시 여자오픈)이 열린 스코틀랜드의 로열 트룬 골프클럽은 링크스 코스의 전형이다. 1878년에 문을 열었으니 142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골프코스가 어떻게 생겼나 궁금해서 구글 지도를 열어봤으나 녹색 표시 외에 홀별 구획조차 보이지 않는다. 해안가 거친 벌판에 넓지 않은 페어웨이와 그린, 벙커 등을 조성한 것으로 끝이다. 나머지는 러프다. 

골프코스의 원형(Archetype)을 보는 듯하다. 페어웨이라고 해도 평평하지만 않다. 언듈레이션이 심해 울퉁불퉁하다. 낙타봉 같은 둔덕도 흔하다. 악명 높은 벙커는 목동들이 바람을 피하기 위해 만든 것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항아리 모양 일색이다. 러프도 천차만별이어서 심한 경우 정상적인 샷은 어렵고 볼을 찾기만 해도 다행일 정도다.

여기에 천변만화의 악천후까지 가세한다. 북대서양과 연결된 클라이드만을 안고 있는 골프코스는 어떤 형태로든 늘 바람과 비를 품는다.

스코틀랜드에서 대회가 열릴 때 갤러리들이 한결같이 우산을 들고(비가 안 오는데도) 배낭을 메는 것은 하루에 4계절을 경험하는 변덕스런 날씨 때문이란 것을 이제야 알겠다. 배낭 속엔 음료나 간식거리 외에 비옷이나 스웨터 등이 들어있을 터이다.

정원 같은 골프코스에서는 볼이 공중에 떴을 때가 걱정이지만 링크스 코스에서는 볼이 착지한 뒤가 걱정이라고 한다. 완전히 멈출 때까지 어디로 구를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굿샷을 날려도 낙하지점에 따라 화를 부르고 미스샷이라 해도 어떻게 바운스 하느냐에 따라 완벽한 위치에 놓일 수도 있다.

▲2020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 골프대회 AIG 여자오픈(전 브리티시 여자오픈)이 개최된 영국 스코틀랜드의 로열 트룬 골프클럽. 사진제공=R&A via Getty Images/AIG 위민스 오픈

8월 20~23일(현지시간) 로얄 트룬 골프클럽에서 열린 AIG 여자오픈은 골퍼들의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완벽한 무대였다. 지형적인 조건에다 날씨까지 맞아 떨어져 그 옛날 스코틀랜드 사내들이 링크스에서 경험한 혹독함을 그대로 재현해냈다.

첫날은 초속 60m의 남남동 강풍에 비를 뿌렸고 기온은 섭씨 15~20도로 싸늘했다. 둘째 날엔 남남서풍이 초속 23m로 불었고 강수확률 66%, 기온은 14~20도였다. 셋째 날엔 남서풍이 불고 강수확률 68%, 기온 12~18도로 떨어졌다. 넷째 날 역시 북동풍이 불고 강수확률 65%에 기온은 11~17도까지 내려갔다.

로얄 트룬 링크스코스는 선수들의 샷 메이킹 능력은 물론 인내심과 코스상황에 적응하는 능력 등 골프의 모든 것을 테스트하는 최적의 공간인 셈이었다. 

첫 라운드를 공동 14위로 끝낸 넬리 코다(미국·22)는 “바람이 미쳤다. 이런 바람 속에서 경기한 것은 처음이다. 첫 홀에서 드라이브샷을 날렸는데 187야드밖에 나가지 않았다.”며 “로얄 트룬에서 안전한 곳은 호텔의 목욕탕뿐”이라고 말했다.

에이미 올슨(미국·28)은 1라운드에서 8번 아이언으로 겨우 91야드를 보낸 뒤 “고향 노스 다코다도 바람이 세지만 그래도 볼을 높이 띄울 수 있는데 여기선 불가능하다”며 “로열 트룬에서의 경기는 마라톤과 같았다”고 털어놨다.

여자골프 세계 랭킹 304위의 조피아 포포프(28·독일)가 이런 가혹한 골프코스의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통과했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3언더파 68타, 최종합계 7언더파 277타를 쳐 2위 재스민 수완나뿌라(태국)를 2타 차로 제치고 우승, LPGA투어 첫승을 메이저로 장식했다. 독일 선수로는 처음 여자골프 메이저 대회 제패라는 영광도 안았다. 

포포프는 그야말로 무명선수다. 세계 랭킹 304위에 불과하고, LPGA투어 출전권도 없다. 

2015년 LPGA투어 신인으로 데뷔했으나 한 시즌 만에 투어 카드를 잃었고, 2018년 조건부 출전권으로 LPGA투어에 복귀했으나 역시 시드 유지에 실패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LPGA투어 퀄리파잉 스쿨에 도전했으나 1타 차로 통과에 실패, 2부 투어인 시메트라투어에서 뛰었다. 7월 말 LPGA투어 드라이브온 챔피언십에는 네덜란드 선수의 캐디로 나서기도 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남자친구 막시밀리안 멜리스가 캐디를 맡았다.

▲조피아 포포프가 스코틀랜드의 로열 트룬 골프클럽에서 열린 2020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 골프대회 AIG 여자오픈(전 브리티시 여자오픈) 우승을 차지했다. 사진은 18번홀 그린에서 우승을 확정한 후 캐디를 맡은 남자친구 막시밀리안 멜리스에게 눈물을 보이는 모습이다. 사진제공=R&A via Getty Images/AIG 위민스 오픈

코로나19로 LPGA투어가 중단된 올 상반기에는 미니 투어인 캑터스투어에 출전, 세 차례 우승했으나 2부 투어인 시메트라 투어에서는 준우승만 네 번 했다.

코로나19 덕분에 AIG 여자오픈 출전 기회를 잡았다. 이달 초 LPGA투어 마라톤 클래식에 코로나19를 이유로 결원이 생겨 출전 기회를 얻었고 이 대회에서 9위에 올라 이번 대회 출전 자격까지 확보했다. 

한국 선수 중에서는 박인비(32)가 1언더파 283타를 쳐 단독 4위로 가장 높은 순위에 올랐다. 남편이 캐디를 맡은 박인비는 첫날 6오버파로 부진했지만 이후 2∼4라운드에서 7타를 줄여 이번 대회 4명만 기록한 언더파 점수를 따냈다.

호주교포 이민지가 최종합계 3언더파로 공동 3위, 전인지가 2오버파로 공동 7위, 리디아 고가 4오버파로 공동 14위, 다니엘 강과 이미향이 8오버파로 공동 32위에 올랐다.

톱랭크 선수 대부분이 로얄 트룬 링크스 앞에 무릎을 꿇었다. 김인경, 브룩 핸더슨, 저리나 필러, 손유정, 렉시 톰슨, 스테이시 루이스, 로라 데이비스, 브리타니 랭, 크리스티 커, 찰리 헐, 애니 박, 티파니 조, 크리스티나 김 등 귀에 익은 선수들이 컷 통과에 실패했으니 로열 트룬의 테스트가 얼마나 혹독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영국 스코틀랜드의 로열 트룬 골프클럽에서 열린 2020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 골프대회 AIG 여자오픈(전 브리티시 여자오픈)에 출전한 린지 위버. 사진제공=R&A via Getty Images/AIG 위민스 오픈

이런 가혹한 조건 속에서도 무명의 린지 위버(미국)가 캐디 없이 카트를 스스로 끌며 합계 5오버파로 공동 19위에 올라 잔잔한 감동을 전했다. 

LPGA투어가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로컬 캐디 혹은 하우스 캐디를 허가하지 않아 전담 캐디를 사용하든가 캐디 없이 경기해야 한다. 평소에도 전담 캐디 없이 로컬 캐디와 경기해온 그는 LPGA 대회 재개 후 4주 내내 주니어 시절 쓰던 카트를 끌며 캐디 없이 경기했다.

“캐디 없이 혼자 경기하던 시절을 기억하면서 골프의 기본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캐디가 있든 없든, 마지막 결정을 내가 하는 것은 같다”는 그의 말은 먼 옛날 스코틀랜드의 골프광들을 연상케 한다. 

AIG 여자오픈은 골프 팬들에게 모처럼 골프의 원형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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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입력날짜 : 2020-08-24 11:2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