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칼럼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아주 우연히 골프의 밀림에 발을 들여놓아 자칭 골프광이 되었지만 그동안 나를 능가하는 수많은 골프광을 만났다. 

장인의 부음 소식을 접하고도 골프 약속을 지킨 친구도 있었고 아내의 출산 예정일에 회사 일을 핑계 대고 라운드를 마친 친구도 있었다.

새벽에 불가피한 일이 생겨 한 자리가 비어 연락했더니 군말 없이 총알처럼 골프장으로 달려나온 후배도 있었다. 그 후배는 밤새 야근을 하고 새벽에 막 집으로 들어서던 참이었다.

치명적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불명 상태였다가 며칠 후 깨어난 한 선배가 의사에게 던진 첫 마디는 “골프 못 칠 정도는 아니지요?”였다.

고 고우영 화백도 보기 드문 골프광이었다. 사냥, 스킨스쿠버, 낚시 등에 빠졌다가 골프를 배운 뒤 다른 취미는 모두 잊었다는 그는 라운드 전날 밤잠을 못 자 충혈된 눈으로 나오곤 했다. 이유를 묻자 그는 천진난만하게 “라운드 약속이 있으면 소풍 가는 아이처럼 잠이 안 와요.”라고 말했다.

이밖에 의수나 의족을 하고도 골프를 사랑하는 사람도 만났다. 
발목 골절로 기브스를 한 채 목발을 짚으면서도 골프장에 나와 골프채를 휘두르는 건 필자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침대칸에서 이웃한 사람과의 화제가 골프로 옮겨가자 밤새 보드카를 마시며 골프 얘기를 하다 지평선 위로 솟는 붉은 해를 맞은 경험도 했다. 

자가용 트렁크에 골프채를 실어놓고 밤늦게 회식을 끝내고는 심야 연습장으로 향하는 회사 중역도 봤고 라운드 약속이 잡힌 골프코스를 인터넷에서 프린트해 도상훈련을 하는 열성파도 목격했다. 

서양에선 결혼하는 날 라운드 약속 때문에 신부가 골프장으로 달려오게 하는가 하면, 아내 장례식날 골프채를 장례 마차에 싣고 장례가 끝나자마자 골프장으로 향하는 경우 등은 흔하다. 자신의 유골을 자주 다니던 골프코스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기는가 하면 실제로 경비행기로 골프장 상공에서 유골을 뿌린 예도 있다. 
필자도 가족에게 유골을 수도권의 한 골프장 안에 몰래 뿌려달라고 얘기한 바 있다. 

골프광의 압권은 <골퍼의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에서 만났다.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닭고기 수프’ 시리즈를 엮어낸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제프 오버리, 마크 도넬리, 크리스 도넬리 등이 공동으로 펴낸 이 책에는 골프와 얽힌 다양한 감동적인 에피소드가 풍성하다. 그중에서도 ‘내가 만난 골프광’이란 글에서 골프광의 진면목을 접할 수 있었다.

뉴욕의 교외선을 타고 출퇴근하는 길에 종종 만나는 사람끼리의 대화 내용은 이렇다. 
 
“기가 막힌 날씨네요.”
“잔디가 마르고 있으니 곧 라운드하기 딱 좋게 될 거요.”
“그래요, 태양이 높아지고 날이 길어지겠지요.”
“그게 정말 중요하지요, 오전 6시에도 라운드를 돌 수 있거든요. 난 아침 먹기 전에 라운드를 시작하는 사람이 왜 그렇게 적은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해요. 엊저녁에도 친구들 몇이 모여 골프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오전 5시부터 7시30분이라는 황금시간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해 정말 안타깝다는 말이 나왔어요.”

창밖의 풍경을 보며 대화가 이어진다.
“여기만 해도 제법 전원 분위기가 나지요?”
“그래요. 하지만 이 땅을 쓸모없이 놀리다니 아깝군요. 정원이니 농장 따위밖에 없지 않소? 집도 몇 채 없는 너른 들판에 상추나 심어놓았으니 쯧쯧. 18홀 코스쯤은 너끈히 앉힐 만한 곳인데.”
“그런가요?”
“그럼요. 여기 흙은 아주 가벼워서 벙커를 만들기도 쉽다오. 거기서 힘껏 공을 치면 커다란 구멍이 패이겠지요. 지금보다야 백 배 나아지는 셈 아닌가요?”

조간신문을 펼치며 니카라과 파병기사가 나오자 대화가 계속된다.
“해군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애나폴리스 사관학교에서 골프를 필수과목으로 만든다고 하는데 정말 커다란 발전이 아니오? 그럼 해상 훈련시간은 좀 줄어들지 몰라도 해군의 자질은 틀림없이 향상될 거요. 대단한 결단을 내렸네요.”

롱아일랜드에서 발생한 기이한 살인사건으로 화제가 옮겨갔다.
“살인사건 기사 따위는 읽지 않아요. 흥미가 없어서요.”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 희생자는 골프채에 맞아 사망했거든요.”
“아니 골프채를 휘둘러 살인을 했단 말인가요?”
“그렇다는군요. 어떤 클럽을 사용했는지…”
“몇 번 아이언이었을까요? 신문 좀 봅시다. 나무로 만든 드라이버 같은데. 아니 그저 골프채에 맞았다고만 되어 있구먼. 도대체 신문들이 정확한 보도를 하지 않으니 말이오.”

“골프를 자주 치시나 봐요?”
“아니오. 그렇지 못해 유감이요. 너무 늦게 시작했거든요. 겨우 20년이 되었을 뿐이오. 5월이면 21년이 되지요. 도대체 뭘 하느라 그렇게 꾸물댔는지 모르겠소. 인생의 절반을 낭비한 셈이니까. 본격적으로 빠져든 것은 서른을 훨씬 넘기고 나서였소. 하긴 우리 인간은 늘 그렇게 인생을 되돌아보며 잃어버린 것을 깨닫는 존재지요. 더 안타까운 것은 골프를 칠 기회가 별로 없다는 거요. 잘해봐야 일주일에 네 번 정도지요. 물론 토요일과 일요일은 거의 놓치지 않아요. 여름휴가 때도 주로 골프를 치지만 그래 봐야 한 달 정도지요. 겨울이면 일주일에 겨우 한두 번 남쪽으로 내려가 골프를 치고 오는 정도고요. 난 너무 바쁘게 사는 것 같아요.”

그중 한 사람이 동네 골프클럽에서 우연히 열차에서 만난 사람을 아는 동네 지인을 만났다. 
“그 스미스씨 하고 같이 출근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대단한 골프광이더군요.”
“그 사람이 골프광이라고?” 

동네 지인은 코웃음을 쳤다.
“스미스가 허허? 이제 겨우 공을 맞추는 정도라오. 더군다나 골프를 시작한 지 고작 20년밖에 되지 않았단 말이요.”
20년 경력의 골프광을 ‘이제 겨우 공을 맞추는 정도’라고 단언하는 사람이 얼마나 지독한 골프광인지는 소개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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