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샷' 갈망의 끝에서 만난 사립문

▲사진은 칼럼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골프채는 볼을 쳐내기 위해 필요하다. 볼은 골프채와 접촉함으로써 비상(飛上)의 생명을 얻는다. 골프채와 볼을 따로 떼어놓아서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골프채와 볼은 지나치게 가까워도 골프를 망친다. 골프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골프채와 볼이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꼭 새겨두어야 할 골프 진리다.

미스 샷은 골프채를 강하게 움켜쥐고 과도한 힘으로 볼을 때리려고 할 때 필연코 발생한다. 볼을 힘껏 쳐내려니 자기도 모르게 골프채가 순간이나마 볼에 머물려 한다. 찰나에 지나가는 샷을 볼에 머물게 하려니 이상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근육은 경직되고 몸의 균형이 무너진다. 자연히 샷은 의도한 것과는 전혀 딴판으로 이뤄져 미스샷을 유발하고 만다.
귀가 닳도록 듣게 되는 “힘을 빼라” “때리지 말고 지나가라” “스윙궤도로 쳐라”는 말들은 모두 골프채를 볼에 집착시키지 말라는 뜻의 여러 가지 표현일 뿐이다.

뒤틀림 없는 온전한 타원형을 그릴 수 있는 스윙이라면 골프채가 볼에 머물 틈이 없다. 바람결과 함께 스쳐 지나갈 뿐이다.
마치 인파 속을 헤치고 지나갈 때 소매를 스치고 어깨가 부딪히지만 머물지 않고 지나가듯, 산골짜기를 흐르는 바람이 숲속을 스쳐 지나가지만 숲에 머물지 않듯.

특히 퍼팅에서 퍼터와 볼의 집착은 금물이다. 시계추처럼 절제된 동작으로 움직이는 퍼터의 스윙궤도 어딘가에 볼이 순간적으로 살짝 닿는다는 이미지로 쳐야만 볼은 원하는 방향으로, 원하는 거리만큼 굴러간다. 그렇지 않고 의도적으로 볼을 때린다거나 밀 때 골프채가 볼에 머무는 결과가 생겨 볼은 당초 의도했던 방향에서 벗어나고 홀컵을 지나치거나 못 미치게 된다.

좋은 샷은 골프채가 볼의 소매를 스치고 지나가는 듯한 스윙에서 탄생한다. 

골프채가 볼에 머물지 않고 지나가는 샷을 최근 내 나름대로 ‘고요한 샷’으로 명명했다.

강하게 치려고 몸을 요동치지 않고 꼭 필요한 동작만 하는 샷이다.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또 제거해 형해(形骸)만 남은 샷, 샷의 미니멀리즘(Minimalism)이라고나 할까.

지인의 간곡한 권유로 골프채를 잡은 이후 30여 년을 골프에 매달려 추구해온 것은 결국 ‘고요한 샷’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고요한 샷’에 이르는 길이 이렇게 험난할 줄 알았다면 골프채를 잡지 않았을 것을.

다행히 지난겨울과 올봄을 지나면서 ‘고요한 샷’의 사립문에 들어선 환희를 맛보고 있다. 
‘고요한 샷’의 사립문에 이르기까지 ‘일필휘지 같은 샷’ ‘옹이 없는 샷’ ‘걸림 없는 샷’ 등 숱한 화두에 매달렸다. 지나고 보니 ‘고요한 샷’의 다른 표현일 뿐이었다.

그동안 드물게 가볍고 부드러운 스윙에서 나온 멋진 샷은 경험했었다. 그런데 최근 거의 모든 샷을 고요하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프로선수들 특히 여자선수들의 더없이 부드럽고 우아한 스윙을 나도 따라할 수 있다는 믿음도 생겼다.
이는 아무래도 고(故) 고우영 화백의 거침없고 부드러운 스윙과 20여 년 전 조우했던 81세 할머니의 스윙에 대한 반추가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연습할 때마다 고우영 화백의 스윙을 떠올리고 81세의 나이에 요즘 여자선수들처럼 풀스윙을 거침없고 구사하는 할머니의 기억을 되살려낸 것이 ‘고요한 샷’의 사립문으로 인도한 것이다.

파워 히트를 반대하진 않는다. 타이거 우즈, 브룩스 켑카, 더스틴 존슨, 헨릭 스텐슨처럼 강인한 체력을 바탕으로 볼을 멀리 그리고 정확하게 날려 보낼 수 있다면 ‘고요한 샷’의 사립문을 찾을 필요가 없다. 

문제는 힘으로 볼을 날려 보내려 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위험요소다. 파워 히터들이 간혹 위험에 빠지는 것도 강한 힘을 동원하는 과정에 경직이 일어나거나 몸의 축이 무너지고, 스윙아크에 옹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프로선수들이야 많은 연습으로 이런 위험요소를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러나 주말 골퍼들의 입장에선 얘기가 다르다. 

최고 수준의 검객은 결코 칼춤을 추지 않는다. 필요할 때 잠깐 바람을 가를 뿐이다. 요란한 칼춤은 망나니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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