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A 투어에서 퍼팅을 잘하는 선수로 알려진 조던 스피스. 2014년과 2015년, 그리고 경기력이 다시 살아난 2019년에 선수들 중 1퍼트 퍼센트가 가장 높았다. 지난 시즌에는 45.43%. ⓒ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창조의 샘은 상상력에서 솟는다. 근면과 성실은 현상유지나 점진적 개선은 보장해 주지만 차원이 다른 도약은 기대할 수 없다. 비행기가 대지를 박차고 하늘로 솟구치는 비상은 빠른 속도로 내달려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양력이 작용해야 가능하다. 인류 발전사에서 양력의 역할을 해온 것이 바로 상상력이다. 

골프애호가들은 종종 골프를 인생에 비유한다. 그린을 인생의 축도로 본다. 이런 비유는 바로 홀에 이르는 길을 찾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티잉 그라운드에서부터 홀에 이르는 길을 찾는 과정은 인생과 흡사하다. 

티잉 그라운드에 서서 무리한 욕심을 부리거나 자만에 빠지면 홀이 숨기고 있는 덫에 걸려 참혹한 고통을 맛봐야 한다. 치밀한 계획 없이 대충 달려들어도 만족한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지레 겁먹고 수동적인 자세로 임하는 것 역시 실력 발휘를 방해한다. 
코스의 전체 모습을 제대로 읽고 코스에 순응하면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현명한 전략을 세우고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가는 골퍼만이 홀을 떠날 때 미소를 지을 수 있다.

▲그림제공=방민준


골프를 하다 보면 ‘골프는 추상화와 다름없다’는 느낌을 갖는다. 

골프코스 설계가들은 전체적인 레이아웃에서 자연의 호쾌함과 상쾌함 등을 즐기도록 배려하지만 코스 곳곳에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미로와 함정을 숨겨두고 골퍼의 절제력, 인내심과 상상력을 테스트한다.
이런 골프코스의 특징을 한눈에 읽어내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겉으로는 편안하고 쉬워 보여도 모든 코스는 자만과 만용을 부리는 사람에게 줄 벌을 숨기고 있다. 

특히 그린은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과감한 결단력, 부지런함을 갖추지 않고선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정확한 거리, 경사도와 좌우의 기울기 정도, 잔디 결의 상태와 잔디 길이, 수분함량 정도, 중간의 둔덕이나 장애물 여부, 그린 주변의 지형, 심지어 바람의 세기까지 감안해 길을 찾아야 하는데 구력이 늘어갈수록 그린 읽기가 추상화 감상보다 더 어렵다는 생각이 더해간다.

피카소나 달리, 미로 등의 추상화를 대하는 순간 도대체 장난으로 그린 것인가 싶을 정도로 무엇을 표현하려고 했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지만 여러 번 그림을 대하고 그림 속에 숨은 비밀들을 하나하나 캐 나가다 보면 그림이 생명을 얻고 무엇을 표현하려고 했는가 깨닫게 되는 것과 흡사하다.

골프코스, 특히 그린은 처음에는 그 속에 숨겨놓은 함정이나 비밀통로 등을 간파하지 못한 채 대충 대하지만 숨은 길을 찾아내는 훈련을 하다 보면 반도체 칩의 회로처럼 길이 드러난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풍부한 상상력이다. 골프장에서 상상력은 무궁무진할수록 좋다. 티잉 그라운드에서 미리 자신의 볼이 날아가는 모습을 그려본 뒤 스윙을 하고 두 번째 샷, 어프로치 샷도 상황에 맞는 샷을 상상해본 뒤 게임을 풀어 가면 골프의 묘미가 달라진다.
아무 생각 없이 샷을 날리는 것과 충분한 상상력을 거친 뒤 날리는 샷은 질이 다르다. 허공에 대고 막연하게 활을 쏘는 것과 표적을 정해 활을 쏘는 것이 다르듯이.

자신의 기량과 골프코스를 냉정히 파악하고 상상력을 총동원해 실현 가능한 전략을 세우고 시나리오대로 헤쳐 나가는 재미는 여간 쏠쏠하지 않다. 계획대로 되면 그 짜릿함은 어디에도 비할 바가 없다. 계획이 어긋나더라도 새로운 계획을 세워 위기를 헤쳐 나가는 재미도 예사롭지 않다.

애버리지 골퍼들은 총 타수의 50% 이상을 그린에서의 퍼트로 소비한다. 그만큼 퍼트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짧은 샷을 잘 처리해야 스트로크를 줄일 수 있는데 드라이버 샷보다는 어프로치 샷, 어프로치 샷보다는 퍼트가 좋을수록 좋은 스코어를 낼 수 있다. 특히 프로선수들에겐 퍼팅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골퍼들은 최후의 관문인 그린에서 대강대강 끝내는 경향이 있다. 가장 중요한 곳에서 가장 건성으로 처리해버리는 것이다. 

골프의 축도가 그린인 이상 골프의 묘미 또한 그린에 축약돼 있다. 겉으로 봐선 잘 손질한 비단결 같은 잔디밭이지만 그곳에는 협곡이 있고 산마루가 있다. 숨 가쁜 오르막길도 있고 멈추기 힘든 내리막길도 있다. 험난해 보이지만 잘 살펴보면 홀로 인도하는 오솔길도 숨어 있다. 

그러나 보통 골퍼들로서는 보기 좋은 그린에 숨은 이런 지형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겉으로 본 것과 실제로 볼이 굴러가는 길은 전혀 다르다. 독단과 오판, 혼란, 착각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남들이 찾아내지 못한 숨은 길을 찾아내 볼을 홀 안으로 떨어뜨리는 묘미는 골프의 극치다. ‘땡그랑’하는 소리는 한순간에 분노와 갈등으로 어지러웠던 머리를 명징하게 해준다. 

이런 묘미를 맛보려면 우선 부지런하고 세심해야 한다. 멀리서부터 그린의 모습을 주의 깊게 살피고 남보다 먼저 그린에 도착해서 정밀한 현장 답사작업을 펴야 한다. 볼과 홀을 중심으로 360도를 돌며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남이 퍼트하는 것을 유심히 살펴 도움을 얻고 그래도 미심쩍으면 캐디에게 조언을 구한다. 

단,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경기를 지연시켜서는 안 된다. 세심하게 결정하되 한번 결정하고 나면 과감하게 스트로크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고른 호흡을 유지하고 산만한 주변의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고 몰입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이런 모든 과정은 물론 풍부한 상상력 위에 이뤄져야 한다. 

보통 골퍼들이 까다롭게 여기는 그린 주변에서 홀에 붙이는 어프로치 샷 역시 퍼팅 이상의 상상력을 요한다. 높이 띄울 것인가, 굴릴 것인가, 잠깐 띄웠다 굴러가게 할 것인가, 세게 칠 것인가, 약하게 칠 것인가 등 복잡다단한 스트로크는 상상력의 도움 없인 선택할 수 없다. 손에 볼을 잡고 여러 가지 스트로크 동작을 머릿속으로 해보면 볼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간파할 수 있다. 그중에서 가장 적당하다고 판단되는 스트로크 동작을 선택, 확신을 갖고 구현하면 된다. 
  
골프코스는 반도체 칩과 같이 그 속에 비밀의 회로를 숨겨두고 있다. 이 비밀 회로를 찾아내기만 하면 골프코스는 참 재미있고 행복한 곳이다. 상상력이 가미된 골프는 숨은 길을 찾아내 목적지에 도달하는 익스트림 스포츠의 쾌감을 안겨준다. 상상력만 있다면 ‘숲으로 가는 오솔길은 얼마든지 있다.’(영국 속담) 그리고 불가능하게만 보이는 ‘멀리 그리고 정확하게(Far and Sure)’라는 골퍼의 꿈도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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