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호세 마리아 올라자발. ⓒ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사람마다 그만의 독특한 골프 버릇이 있다. 셋업을 취하기 전, 셋업을 할 때, 스윙을 할 때, 샷을 날리고 나서, 미스 샷을 낸 뒤, 기막힌 결과를 얻었을 때 등등 플레이를 하면서 남이 흉내 내기 어려운 독특한 동작을 한다. 영어로 ‘루틴(routine)’이라고 한다. 

루틴은 언뜻 불필요한 듯 보이지만 안정된 샷을 위해선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소림사에서 일정한 단계의 무술을 마스터한 것을 증명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수많은 관문처럼 이 과정을 거쳐야만 자신이 마음먹은 샷을 날릴 수 있다. 이 동작을 생략하면 어딘가 어색하고 자신감이 없어져 결국 엉뚱한 일이 벌어지게 된다.

세베 바예스테로스(Seve Ballestelos)와 함께 스페인을 대표하는 골퍼인 호세 마리아 올라자발(Jose Maria Olazabal)은 많은 시간을 들여 셋업을 한 뒤 샷을 날리기 전까지 수없이 목표물과 볼을 번갈아 보는 버릇이 있었다. 보통 한두 번 쳐다보곤 샷을 날리기 마련인데 그는 고개를 돌리는 동작을 7~8번을 반복하고 나서야 샷을 날렸다. 

한 친구가 그의 이 같은 습관을 꼬집었다.
“자네가 나보다 먼저 볼을 칠 땐 잠깐 눈을 붙여도 되겠더라구.”
올라자발이 대답했다.
“미안하네. 하지만 그 동작을 하지 말라는 건 골프를 그만두라는 것이나 같은 주문일세.”

올라자발의 깔끔한 샷은 군더더기처럼 보이는 이 동작을 거친 뒤에 나오는 것이다. 
유럽투어에서 21승, 미국 PGA투어에서 6승(마스터스 2승 포함)을 올려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까지 이름을 올린 올라자발은 나중엔 셋업 후 목표지점을 바라보는 횟수를 상당히 줄이고도 멋진 샷을 날렸다.

같은 스페인의 세르히오 가르시아(40)도 20~30대에는 셋업을 한 뒤 목표지점을 번갈아 바라보며 클럽을 흔드는 동작을 대여섯 번씩 하는 루틴 때문에 동반자의 눈총을 받았으나 지금은 많은 개선된 느낌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세계 골프를 휩쓸었던 어니 엘스(50·남아공)는 큰 체격(키 1m90cm)에 '힘 하나 안 들이고 치는 듯한' 스윙으로 '빅 이지(The Big Easy)'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프레드 커플스(60·미국)와 함께 아마추어 골퍼들이 가장 배우고 싶어하는 우아한 스윙의 주인공으로 60이 넘은 나이에도 챔피언스투어(시니어투어)는 물론 PGA투어에도 출전하며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프로 아마 가리지 않고 골퍼라면 모두가 탐을 내는 그의 스윙은 여덟 살 때 골프클럽을 잡은 이후 연습할 때마다 주문 외우듯 ‘천천히, 천천히(slow, slow)’를 자신에게 주문하면서 굳어진 루틴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한국도 자주 방문했던 어니 엘스는 한 인터뷰에서 "역설적이지만 볼은 천천히 칠수록 더 멀리 날아간다. 골프 스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이밍과 리듬인데, 볼을 멀리 정확하게 치기 위해서는 클럽의 무게를 최대한 이용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부드러운 리듬으로 정확한 타이밍에 임팩트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짧은 순간이지만 스냅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드라이버 샷의 경우 20~30야드 차이가 날 수 있다”며 왜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고 보니 그의 루틴은 샷을 하기 전 클럽을 잡은 채 손목을 좌우로 흔드는 것이었다.

남아공에서 와이너리를 운영하며 와인까지 생산하는 엘스는 “와인과 골프는 굉장히 천천히 이뤄지는 과정(slow moving process)을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어니 엘스에게 ‘천천히’는 골프에서나 인생에서나 성공을 보장하는 루틴이었던 셈이다.

아리야 주타누간(24·태국)의 경우 입가의 엷은 미소와 합장이 루틴이다. 뭔가 잘 안 풀릴 땐 입가에 엷은 미소를 한번 짓고는 다음 동작을 하는 데 거의 성공적이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선 합장으로 동료나 갤러리들에게 감사 표시를 한다.
천하무적일 것 같은 그도 최근 극도의 슬럼프에 빠져 그의 루틴을 볼 기회가 줄어들었으나 그는 결코 이대로 잊힐 선수는 아니다. 

자기 나름의 습벽은 자신감과 안정감을 심어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남 보기에 흉하다고 이미 굳어진 골프 버릇을 억지로 고치려다 도리어 엉뚱한 화를 당할 수도 있다.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면 굳은 습벽을 버리려 애쓸 필요는 없다. 

골프채를 잡는 한 루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연습장에서, 라운드 전날 저녁, 라운드 당일 일어나 집을 나서서 골프장에 도착해 라운드를 하는 모든 과정에서 자신만의 골프 관련 습벽이 생긴다. 
나만의 루틴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내 마음이 만족하고 편안하다면 묘약이다. 그러나 루틴의 시간이 길다면 독약이 된다.

TV의 드라마나 쇼의 진행이 더디면 방송 채널이 돌아가듯 그만의 루틴이라도 시간이 길어지면 동반자들도 등을 돌린다.
지나치게 긴 루틴은 동반자로부터 비난의 대상이지만 스스로에게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불안감과 부정적 지레짐작, 잡념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라 자신을 에워쌀 뿐이다.

내게 약이 되는 루틴은 잘 지키고 남에게도 나에게도 해가 되는 루틴은 과감히 버릴 줄 알아야 도약하는 골퍼가 될 수 있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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