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밥 존스 상' 수상자로 선정된 LPGA 투어 통산 25승의 박세리 프로. 사진=골프한국


[골프한국] 미국골프협회(USGA, United States Golf Association)가 16일 박세리(43)를 올해 ‘밥 존스 상(Bob Jones Award)’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USGA는 1955년 ‘구성(球聖)’으로 칭송받는 보비 존스(Bobby Jones; Robert Tyre Jones Jr. 1902~1971)의 이름을 딴 이 상을 제정, 매년 골프에 대한 열정과 업적이 뛰어난 골프인을 선정해 시상해왔다.
 
USGA는 박세리가 1998년 LPGA투어에 등단, 그해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는 등 메이저 5승을 포함해 프로통산 39승(LPGA투어 통산 25승)을 올리는 등 탁월한 업적을 이루고 한국 여자골프가 세계 최강으로 발돋움하는 기틀을 쌓았으며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골프 선수의 꿈을 키워줬다고 선정 배경을 밝혔다.

박세리 외에 자원봉사자로 헌신적인 노력을 해온 론 해스큐, 잔디와 관련된 연구에 탁월한 업적을 세운 윌리엄 메이어,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난 유명 골퍼 페인 스튜어트의 삶을 다룬 책 ‘The Last Stand Of Payne Stewart’를 쓴 케빈 로빈스가 각각 상 이름이 다른 올해 수상자에 포함됐다.

이미 박세리는 지난 1998년 LPGA의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려 지구촌 여자골프 전설의 반열에 올랐지만 모든 골프인들로부터 ‘골프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바비 존스의 이름이 붙은 상까지 수상, 세계 여자골프를 초월해 명실공히 지구촌 골프 전설로 등극하게 됐다.

바비 존스의 이름을 딴 이 상의 권위는 그동안 수상자들의 면면을 보면 알 수 있다. 

전설 중의 전설인 진 사라센, 바이런 넬슨, 게리 플레이어, 아놀드 파머, 잭 니클라우스, 벤 호건, 톰 왓슨, 벤 크렌쇼 등 불세출의 프로골퍼는 물론 열렬한 골프광으로 미국 골프 발전에 큰 역할을 한 조지 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20세기를 풍미한 가수 빙 크로스비, 영화배우이자 코미디언인 밥 호프 등 골프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한 인사들이 이 상을 받았다.

작년에는 흑인으로는 사상 최초로 1975년 마스터스에 출전했던 리 엘더(Robert Lee Elder)가 상을 받았다. 

여자로는 육상 투창 높이뛰기 만능스포츠선수로 세계신기록을 경신하며 올림픽을 누빈 뒤 골프에 입문해 통산 41승이라는 기적 같은 족적을 남긴 ‘20세기 스포츠 여제’ 베이브 자하리아스를 비롯해 LPGA투어 창립자 루이스 서그스와 미키 라이트, 낸시 로페스, 로레나 오초아 등 LPGA투어에서 불멸의 발자취를 남긴 선수들이 상을 받았다.

LPGA투어 통산 72승 등 이름있는 골프대회에서 97승을 올린 스웨덴의 골프여제 안니카 소렌스탐이 지난 2012년 이 상을 받았으니 박세리는 여자 골프선수로는 안니카 소렌스탐 이후 8년 만의 수상자다. 

물론 한국인으로는 박세리가 첫 수상자다. 오는 6월 미국 뉴욕주 윙드풋 골프클럽에서 열리는 US오픈 때 시상식이 열린다.


PGA투어와 LPGA투어에 ‘명예의 전당’ 헌액이라는 최고 영예의 제도가 있음에도 USGA가 구성(球聖)의 이름으로 ‘밥 존스 상’을 제정한 것은 선수로서뿐만 아니라 골프 발전에 쏟은 열정과 공로 등을 종합적으로 닮아 낼 상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USGA의 뜻을 상징하는 골프영웅이 바로 바비 존스다.

과연 바비 존스는 어떤 골퍼였는가. 
골프 사가들은 바비 존스(1902~1971)를 20세기 최고의 골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당시 4대 메이저, 즉 미국과 영국의 오픈 및 아마선수권을 13회나 우승한 그를 골프 사가들은 ‘골프의 황제’ ‘구성(球聖)’이라고 칭송했다.

그의 기록이 얼마나 위대한 것이었던가는 4대 메이저대회에 출전했던 기간은 겨우 13년, 그것도 9년은 고교와 대학 재학시절로 평생 출전게임 52회 중 23회를 우승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지성파 골퍼였다. 1922년 미국 아마선수권 우승 후 하버드대에서 영문학, 조지아공대에서 기계공학, 에모리대에서 법률을 전공해 변호사자격까지 취득했다. 프랑스어, 독일어, 영국사, 독일문학, 고대문화사, 비교문학도 공부했다. 
그의 골프전성기는 학업에 열중하던 시기와 일치, 운동과 학문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탁월한 골프 기량에 풍부한 학식, 뛰어난 유머 감각과 겸손함을 겸비한 그에게 온갖 최상급의 찬사가 따라다닌 것은 당연했다.

그의 골프 철학은 11세 때 발아했다. 계기는 1913년 US오픈. 
이 대회에는 ‘스윙의 시인’이란 명성을 듣고 있던 영국의 해리 바든(Harry Vardon, 지금 대부분 골퍼가 채택하고 있는 오버래핑그립 창시자. 그를 기려 PGA투어는 한해 18홀 평균 최저타수를 친 선수에게 바든 트로피를 수여한다), 그리고 같은 영국의 테드 레이(Ted Ray)가 출전했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당시 19세의 미국 아마추어 프란시스 위멧(Francis Ouimet)이 두 영국 프로와 연장전을 벌여 우승했다. 

어린 존스는 우승은 못했지만 아름답고 부드러운 스윙에 견실한 플레이, 모든 홀을 파를 목표로 주변과 초연한 자세로 플레이하는 해리 바든의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 어린 존스의 눈에 바든은 경쟁자나 갤러리들을 잊은 채 다른 그 무엇과 플레이하는 것처럼 비쳤다.

존스는 혼자 중얼거렸다.
“골프란 어느 사람에 대해서가 아니고 어느 것에 대해서 플레이하는 것이다.”
‘그 무엇’이란 바로 파(PAR)였다. 홀마다의 파와 경쟁한다는 것인데 그는 그 무엇을 ‘올드 맨 파(Old man Par)’라는 친근한 이름으로 의인화하고 외부의 경쟁자가 아닌 내부의 ‘올드 맨 파’와 게임을 하는 철학과 지혜를 터득하게 된다. 

1916년 14세의 나이에 처음 미국 아마투어 선수권대회에 출전해 준우승한 뒤 이듬해 15세로 챔피언에 올랐다. 이후 7년간 슬럼프를 겪다 1923년 US오픈에서 우승하고 1925년 US 아마추어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전성기를 맞는다.

1925년 US오픈에서 그는 골프사에 회자 되는 유명한 일화를 남긴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1타차 선두를 유지, 우승을 목전에 둔 존스는 러프에서 어드레스 순간 볼이 움직이자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지만 경기위원회에 자진 신고했다. 

이를 두고 친구이자 기자인 O.B 킬러는 “나는 그가 우승하는 것보다 그가 스스로 벌타를 부가한 것을 더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 1타가 없었더라면 연장전은 없이 그의 우승으로 끝났을 것이다. 우승하는 것보다 더 멋있는 것이 바로 존스의 이 자진 신고였다”고 기록했다. 
이 사건을 두고 매스컴이 칭송하자 존스는 “당연한 것을 했을 뿐이다. 당신은 내가 은행강도를 하지 않았다고 나를 칭찬하려는가.”라는 반응을 보였다. 

1930년 영국 오픈과 영국 아마선수권, 미국 오픈과 미국 아마선수권을 독차지하는 사상 초유의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는데 US아마 선수권대회에서 경기 중 한 레스토랑주인으로부터 격려전보를 받았다. 
거기에는 ‘E TONE E PISTAS’라는 그리스어가 쓰여 있었다. 영어로 ‘With it, or on it’(함께 아니면 그 위에)라는 뜻이다. 옛날 스파르타의 노모(老母)가 전쟁터에 나가기 위해 방패를 닦고 있는 아들에게 한 말로, 이겨서 방패와 함께 무사히 귀환하든지 전사해 방패 위에 실려서 돌아오라는 뜻이다. 

존스는 이 경기에서 이겨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운 뒤 1930년 11월 28세의 나이에 은퇴를 선언했다.
미국 골프계는 그가 은퇴 선언을 하자 ‘존스 없는 골프는 파리가 없는 프랑스와 같다’는 말로 슬픔을 표했다. 

그는 은퇴 후 금융계 친구와 함께 1934년 조지아주 오거스타에 오거스타 내셔널코스를 만들어 마스터스 토너먼트를 개최해 지구촌 최고의 골프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매년 4월 열리는 이 대회는 4대 메이저대회 중에서도 가장 권위 있는 대회로, 존스는 이 대회와 함께 불멸의 전설로 살아있다.

박세리의 ‘밥 존스 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우리나라에서도 한국 여자골프 발전을 위해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박세리를 기리는 상이 제정되어 그의 길을 뒤따르는 후예들을 격려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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