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골프한국


[골프한국] 가끔 동네 공설운동장의 트랙을 걷다 보면 조기 축구 동아리들의 경기를 구경하게 된다. 학창시절 학교 대표 선수로 뛴 적도 있고 축구 때문에 팔 다리를 부러뜨리기도 해 아마추어 동아리들의 경기라 해도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특히 경기를 볼 때마다 선수들의 집중도가 높은 데 놀란다. 다양한 연령층이 참여하고 있는데도 참 열심히 뛰고 기량도 고르게 좋다.

더욱 내 눈을 놀라게 하는 것은 선수들이 철저하게 룰을 지킨다는 점이다. 대결하는 팀의 선수 중 경기에 참가하지 않는 선수가 주심과 부심을 맡는데 소속 팀에 관계없이 경기규칙을 엄격히 적용한다.
옵 사이드는 예외 없이 잡아내고 지나친 파울이나 드로잉 실수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어떤 경우라도 휘슬이 울리고 깃발이 올라가면 경기를 중단하고 심판의 결정에 승복한다. 

축구경기를 구경하면서 자연스럽게 골프를 떠올리게 된다.

왜 골프는 축구경기처럼 명쾌하게 룰이 지켜지지 않을까. 축구에선 아무리 멋진 슛이라도 골대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절대 골로 인정되지 않는데 왜 골프에선 볼을 홀에 넣지도 않았는데도 넣은 것으로 간주하고 OK를 남발할까. 첫 홀에서 한 사람이라도 파를 하면 스코어 카드에 모두 파(일파만파)로 기록하는가 하면 파를 못해도 모두 파(무파만파)로 기록하는가.

축구에선 패널티 지역에서의 파울은 바로 패널틱 킥이 주어지고 옵사이드 상태에서의 골은 골로 인정되지 않는데 왜 골프에선 볼을 치기 좋은 곳으로 옮기거나 그린에서 슬쩍 볼의 위치를 홀에 가깝게 옮겨도 벌타 없이 묵인되는가. 왜 미스샷을 낸 뒤 아무도 동의하지 않는데도 스스로 멀리건을 외치고 스코어를 정확히 적는 캐디를 윽박질러 스코어카드를 엉터리로 적게 하는가. 

골프의 발상지인 스코틀랜드에서는 ‘법은 악인이 존재한다는 전제 아래 만들어지지만 골프의 룰은 고의로 부정을 범하는 사람이 없다는 전제 아래 만들어졌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골프에 심판이 없는 것도 골프를 하는 사람이라면 남을 배려함은 물론 스스로 부정을 저지르지 않는 신사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20세기 초 『완전한 골퍼(Perfect Golfer)』라는 명 레슨서를 남긴 영국의 헨리 뉴턴 웨더렛은 “자기에게 유리하게 행동하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볼이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서 플레이하는 것이 골프의 기본 룰”이라며 부정의 유혹을 받는 골퍼들에게 “볼이 결정된 대로 하라. 그러면 심판이 필요 없다. 심판 없이 양심에 따라 플레이하기 때문에 골프는 위대한 경기다.”라고 설파했다.

그러나 골프를 ‘신사의 운동’으로 즐기는 그들에게 이 말이 설득력이 있을지 모르지만 현대의 골퍼들에겐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프로골퍼 데이브 힐은 “골프는 이 세상에서 플레이하기에 가장 어렵고 속이기에 가장 쉬운 게임이다.”고 말했다. 
골프사가 밀튼 그로스는 “골프는 사람을 변하게 한다. 정직한 사람을 거짓말쟁이로, 박애주의자를 사기꾼으로, 용감한 사람을 겁쟁이로, 모든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고 골프의 특성을 표현했다.

‘진화론’으로 유명한 찰스 다윈의 손자로 캠브리지대를 나와 변호사생활을 하면서 골프를 더 즐기고 급기야 변호사 생활을 청산하고 수준 높은 골프칼럼을 써온 버나드 다윈은 “골프만큼 플레이어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것이 없다. 그것도 골프에서는 최선과 최악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정곡을 찔렀다. 


골프의 속성이 그렇다 해도 특히 이 땅의 골퍼들이 부정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것은 왜일까. 

지나치게 승부에 매달리고 스코어에 집착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래서 기회만 생기면 남의 눈을 속이고 스스로를 속인다. 적당주의 혹은 무지, 남에게 너무 가혹하게 하지 못하는 문화도 한몫한다. 때로는 라운드하는 4명 모두 공범이 되어 룰을 어기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적당히 룰을 어기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묵인하는 풍토가 만연돼 있다. 

여기엔 골프의 진정한 묘미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가를 깨닫지 못한 골퍼들의 오해 탓도 있다. 

스포츠의 묘미는 룰에서 생긴다. 룰이 복잡하고 까다로울수록 경기의 재미가 더해지고 싫증도 덜 느끼게 된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골프의 룰은 완벽하게 숙지한 사람을 찾기 어려울 만큼 까다롭고 복잡하다. 제 3자가 볼 때 잘못이 없는 것 같은데도 벌타가 주어질 정도로 융통성이 없는 면이 있지만 골퍼라면 불합리한 룰이라도 룰로서 지키고 이를 어겼을 때 가해지는 벌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복잡하고 까다롭기 이를 데 없는 골프의 룰이 결국 골프의 묘미를 더해주기 때문이다. 

골프 룰을 철저히 지킨다는 것은 골프의 참된 묘미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느슨한 룰 적용이 골프의 진정한 묘미를 앗아간다는 사실 깨달을 필요가 있다.


※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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