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회장 잭 웰치. ⓒ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경영의 신(神)’으로 불리는 잭 웰치는 평생 골프와 함께 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골프가 인간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완벽을 추구하게 부추기는 스포츠라는 믿음을 가진 그의 삶 자체가 완벽을 추구하는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골프를 생활의 한 요소로 받아들였던 웰치는 골프를 통해 제너럴 일렉트릭(GE)의 CEO로 발탁되었고 그의 후계자 역시 골프를 통해 선정되었다.

GE에는 지구촌 최고의 골프대회 중 하나인 마스터스가 열리는 오거스타CC에서 현직 임원들과 역대 임원들이 모여 토너먼트 대회를 벌이는 이벤트가 전통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웰치의 전임 레그 존스 회장 시절부터 시작된 이 골프 모임은 친목 도모와 팀워크 구축이라는 취지 외에 리더급 임원들이 젊은 임원들의 자질을 관찰한다는 특별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

1977년 현장책임자에서 막 코네티컷주 페어필드의 본사로 자리를 옮긴 웰치는 오거스타CC에서 열린 임원 골프토너먼트에서 우승하면서 급부상, 3년 후 세 명의 CEO 후보 중 한 명으로 선정된 뒤 그 유명한 ‘비행기면접’을 통해 새로운 CEO로 탄생했다.

전임 레그 존스 회장은 CEO 후보 세 명을 대상으로 비행기 사고를 가상한 면접을 실시했다. 이 면접의 마지막 질문은 이랬다. 
“잭, 자네와 내가 비행기를 타고 가다 추락했네. 나는 죽었지만 자네는 살았어. 이제 누가 제너럴 일렉트릭의 회장이 되어야겠나?”
잭의 대답은 “바로 접니다”였다. 

1981년 GE의 CEO에 오른 웰치는 20여 년간 놀라운 경영수완을 발휘했다. 그의 후임 CEO 제프리 이멜트 회장도 후보들과 어울려 골프를 친 뒤 만찬 테이블에서 자질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결정됐다.

GE의 리더급 임원들은 도대체 골프를 통해 무엇을 확인하는 것일까.

빌리 베일리가 쓴 ‘이그제큐티브 골프(Executive Golf)’는 이런 궁금증을 풀어준다. 그에 의하면 골프는 인격의 종합평가이자 리더십의 다면평가로 최적이라는 것이다.

첫째, 전략적 사고를 본다. 자신의 장단점, 기회와 위기를 얼마나 파악하고 리듬을 잃지 않고 침착하게 플레이하는지를 관찰한다.
두 번째 포인트는 도덕성. 스코어를 정확하게 기록하는지, 룰을 잘 지키는지,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지는 않는지를 파악한다. 
셋째 포인트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즉 동반자와 어울려 즐겁게 라운드하는지를 관찰한다.
넷째 균형감각. 미스샷을 했을 때 화를 내고 변명으로 일관하는지, 실수 후 당황하는지, 위험에 직면했을 때 돌아가는 지혜가 있는지 등을 살핀다.
다섯 째 포인트는 리더십으로, 도전정신 책임감 그리고 캐디나 아랫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관찰한다. 
마지막으로 언사와 복장, 테이블 매너 등 품위를 본다. 
사람을 평가하는데 이만한 척도를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지난 24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향년 80세로 별세한 박운서 전 통상산업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은 잭 웰치 회장과의 만남으로 인생이 바뀐 대표적인 사람이다. 

행시 6회로 공직에 입문해 대통령 경제비서관, 상공자원부 차관을 역임했다. 특히 그는 일본 미국과의 무역협상 과정에서 탁월한 수완을 발휘해 상대방 협상파트너가 그에게 ‘타이거 박’이란 닉네임을 붙일 정도였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 한국중공업 사장, LG상사 부회장, 데이콤 부회장을 지내고 돌연 필리핀 민도르 섬의 오지로 사라져 원주민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벌여왔다. 

그는 공직에 있을 때 골프와는 담을 쌓았다. 골프가 어떤 운동인지 모르기도 했지만 그의 눈에는 골프라는 게 운동도 안 되고 뭔가 부정적인 거래가 오갈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것으로 비쳤다.

발전설비를 생산하는 한국중공업 사장으로 있을 때 거래를 위해 GE의 잭 웰치 회장을 만났다. 웰치 회장이 박 사장을 만나 던진 첫 질문은 “골프를 할 줄 아느냐”였다.
박 사장은 그깟 골프를 왜 하느냐는 투로 “골프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웰치 회장은 심각한 얼굴로 “그렇다면 박 사장 회사와 거래하는 것을 재고해야겠는데요”하고 말했다. 

박 사장이 무슨 뜻인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웰치 회장은 왜 골프가 중요한지를 설명했다. 자신은 골프를 통해 거래선을 결정하고 골프를 통해 임원을 선발하며 골프를 통해 친구를 만든다며 그만의 골프 철학을 털어놓았다.

이를 계기로 박 사장은 골프채를 잡았고 골프에 빠졌다. 
이런 사실은 골프를 백안시하던 그가 어느 날 필자를 포함한 예전 통상산업부 출입기자들을 불러 라운드를 한 뒤 전해 들은 내용이다. 그때 박 사장은 골프와는 인연을 끊을 수 없는 골프 예찬론자를 벗어나 골프 전도사가 되어있었다. 

이후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박 사장은 현직에서 물러나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필리핀 오지로 들어가 원주민 망얀족을 위한 봉사활동에 전념하다 수년 전 교통사고를 당한 후유증으로 투병생활을 해왔다. 반군이 출몰하는 지역이지만 그는 정부군과 반군 모두에게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다. 

필자와도 각별한 인연을 이어온 고인에게 골프가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무엇이 그로 하여금 성자와 같은 봉사활동에 전념토록 했는지 궁금할 뿐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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