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2012년 포트러쉬의 로열 포트러쉬 골프코스 중 던루스 링크스에서 개최됐던 유럽투어 아이리시 오픈에서 경기하는 로리 매킬로이의 모습이다. 2019년 디오픈의 개최지이기도 하다. ⓒ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지구촌 골프 팬들은 매년 7월 셋째 주 목요일을 손꼽아 기다린다. 바로 디 오픈(The Open)이 개막하는 날이다. 

마스터스, US오픈, PGA챔피언십과 함께 세계 4대 메이저 대회의 하나로 꼽히는 디 오픈은 명실공히 세계 최고(最古)의 역사와 최고(最高)의 권위를 인정받는 대회다. 
마스터스 토너먼트와 함께 골프선수라면 누구나 평생 한 번이라도 참가하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 

우선 지구촌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대회다. 오늘날의 골프 관련 모든 규칙과 규정의 토대를 만든 영국의 골프경기단체인 R&A(Royal & Ancient Golf Club of St. Andrews) 주관으로 1860년 10월 17일 스코틀랜드 프레스트위크 코스에서 첫 대회가 열렸으니 올해로 159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올해 대회는 오는 18~21일(한국시간) 북아일랜드의 해안도시 포트러쉬의 로열 포트러쉬 골프코스 중 던루스 링크스에서 열린다. 매년 열리지만 세계 1, 2차 대전 기간 중 대회를 열 수 없어 역사는 이번이 148회째다.

로열 포트러쉬에서 디 오픈이 열리는 것은 68년 만이다. 1951년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있는 그레이트 브리튼 섬이 아닌 이곳에서 처음 디 오픈이 열렸다. 이번 대회는 그레이트 브리튼 섬 밖에서 열리는 두 번째 디 오픈이다. 

R&A가 68년 전에 로열 포트러쉬를 택한 것이나 이번에 다시 개최지로 정한 것은 이 코스가 최고의 골퍼를 시험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갖추었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로열 포트러쉬는 모래와 거친 풀로 덮여있고 수시로 센 바람과 비가 몰아친다. 주변은 날카로운 절벽과 웅장한 사구가 형성돼 천혜의 골프코스로 명성을 얻고 있다. 

로열 포트러쉬는 많은 챔피언들을 배출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대런 클락이 이곳에 살고 있고 그레이엄 맥도웰도 여기서 태어났다.

골프장에서 30분 거리에 살며 어릴 적 자신의 영웅 대런 클락을 만나러 자주 포트러시를 찾았던 로리 매킬로이가 “어려서는 잘 몰랐다.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해 보고 나서야 로열 포트러시가 세상에서 가장 멋지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털어놓을 정도다. 

부근에 고색창연한 던루스 성이 있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위스키 성지여행에서 극찬한 아일레이 섬과 킨타이이어 반도가 인접해있다. 

디 오픈의 특징은 탁월한 기량을 갖춘 골퍼라면 프로 아마추어 제한 없이 문호가 개방돼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영국인들은 세계의 모든 골프선수에게 개방된 유일한 대회라는 자부심으로 '디 오픈(The Open)'을 고집하는데 묘하게도 미국은 ‘디 오픈’ 대신 ‘The British Open Championship(브리티시 오픈 챔피언십)’으로 부른다. 

디 오픈에 대한 골퍼들의 선망은 이 대회가 골프의 원형(archetype)이 간직된 곳에서 열린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8개 코스(스코틀랜드 5곳, 잉글랜드 3곳)를 순회하지만 모두 바다를 낀 링크스 코스로 골프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양떼가 훑고 지나 간 듯한 페어웨이와 그린, 바닷가의 갈대와 잡풀들이 뒤엉킨 러프, 목동들이 바람을 피하기 위한 구덩이었던 벙커, 그리고 변화무쌍한 북해의 기후가 어우러진 링크스 코스는 처음 골프가 발원했던 10세기경 스코틀랜드의 풍경을 그대로 재현해주기 때문이다. 

문호는 개방돼 있지만 R&A는 우수한 골퍼의 참석을 위해 매우 촘촘한 선발 과정을 두고 있다. 영국, 유럽, 미국, 아시아 등 세계 각종 대회 우승자와 상위에 랭크된 선수를 비롯해 국제 아마추어대회에서의 우승자 등 30여개가 넘는 카테고리를 두어 참가자격을 부여한다. 

이런 카테고리에 포함되지 않는 골퍼를 위하여 세계를 몇 개 지역으로 나눈 지역 예선과 영국 내 지역 예선 대회를 거쳐 상위 1~2명에 대해 참가자격을 부여하는데 물론 프로 아마추어의 구분은 없다. 출전자 수는 156명에서 160명 사이에서 결정된다. 

이런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야만 디 오픈에 참가할 수 있으니 아마추어는 물론 프로선수 역시 참가하는 것 자체를 대단한 영광으로 여기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디 오픈도 출발은 초라했다. 

1860년 10월 17일에 12홀의 프레스트위크 코스에서 열린 1회 대회에는 겨우 8명의 선수가 참가해 윌리 파크(Willie Park)라는 선수가 초대 챔피언이 되었다.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상금은 처음에는 은화 5파운드와 은제 벨트에 불과했다. 그러다 1872년부터 상금과 은제컵으로 바뀌었고 상금 규모도 해마다 늘어났다. 

참가자 수도 1890년에 40명으로 늘어났고, 1892년부터는 출전비를 내야 했다. 상금이 적은 탓에 한때 참가자가 줄기도 했으나 1960년대부터 잭 니클라우스와 아놀드 파머 등이 참가하면서 다시 권위를 되찾았고 존 댈리가 우승한 1995년 대회부터 미국 PGA투어의 공식 대회로 인정되면서 세계 최고·최대의 대회로 자리를 굳혔다. 

현재 디 오픈 출전이 확정된 한국선수는 PGA투어의 안병훈(27), 강성훈(32), 김시우(24), 임성재(21)와 KPGA투어의 박상현(35), 황인춘(45), 장동규(31), 문도엽(28) 등 모두 8명이다. 

한국선수의 디 오픈과의 인연은 195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골프의 개척자 연덕춘, 박명출 등 2명이 출전했으나 컷 탈락한 뒤 꾸준한 도전이 이어졌다. 2004년 최경주가 공동 16위에 올랐고 2006년 허석호가 한국 선수로는 역대 최고인 공동 11위에 올랐다. 

허석호는 2003년 JPGA 상금 3위 자격으로 출전해 1라운드 공동 4위, 2라운드 2위, 3라운드 에서는 데이비스 러브3세와 함께 챔피언조로 출발해 공동 8위에 올라 사상 첫 톱10 가능성이 보였다. 
그러나 3라운드를 마친 뒤 사단이 벌어졌다. 한 골프채널이 스승을 자처하는 프로골퍼 선배를 내세워 허 선수와 통화하게 했다. 

그 선배는 허 선수에게 “개인이 아닌 국가를 대표하는 자세로 임하라.”고 당부했다. 부모들까지 등장시켜 그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주었다. 무심하게 골프에 몰입해 최선을 다하고 있던 허 선수에게 ‘무언가 대한민국을 위해 이정표를 세워야 한다.’는 중압감을 안긴 꼴이었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허선수는 힘이 들어가고 샷이 부자연스러웠다. 최종 스코어 8오버파로 28위를 차지했다. 이만한 결과도 대단한 것이지만 끝까지 허 선수를 무심하게 라운드할 수 있게 내버려 두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아쉽기만 하다.

같은 대회에서 미국 PGA 데뷔 1년 차인 벤 커티스(당시 26세)가 우승했다. 모든 면에서 경쟁이 안 되는 대선수들을 제치고 ‘클라레 저그’의 주인이 된 벤 커티스는 그야말로 골프의 애송이었다. 본인 스스로 컷 통과만 하면 대성공이라고 생각하며 대회에 임했다. 그러나 그는 최종 합계 1언더파 283타로 전날까지 선두였던 덴마크의 토마스 비욘, 피지의 비제이 싱, 타이거 우즈를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던루스 링크에서 열리는 올해 대회에서 한국 선수들이 어떤 자취를 남길지 궁금하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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