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골프를 수련해온 타이거 우즈. ⓒ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법어(法語)로 유명한 성철스님(1912~1993)은 생전에 많은 일화를 남겼다. 

가야산 해인사에 딸린 암자 중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백련암에서 수행하며 해인총림(海印叢林)의 초대 방장과 조계종 종정으로 추대되고도 그곳을 떠나지 않는 성철스님을 만나겠다고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그러나 스님을 직접 만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자신을 만나고 싶은 사람은 3000배를 하고 오면 만나주겠다는 조건 때문이다. 

이 조건에는 예외가 없었다. 내로라는 정치인, 권력자, 재벌총수, 언론인 구별 없이 3000배를 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만나 주지 않았다. 이름 없는 사람이라도 3000배를 한 사람은 반갑게 맞이했다.

이 조건은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성철스님이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3,000배를 해야 만나주는가?”라는 비난도 있었다.

중앙일간지의 문화부장이나 종교담당 기자가 성철스님과 인터뷰를 하고 싶어도 이 ‘3000배의 관문’을 넘지 못해 뜻을 이루지 못한 예를 직접 보고 들었다. 

‘3000배가 그렇게 어렵나?’ 반문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절을 해본 사람은 안다. 절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108배 정도는 할 수 있지만 3,000배는 다른 얘기다.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꼬박 10시간 가까이 해야 하는데 평소 절을 안 해본 사람은 두어 시간 넘기기도 어렵다. 의욕은 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왜 굳이 3000배를 하라고 했을까. 

성철스님은 한 인터뷰에서 이 질문에 직접 답한 적이 있다. 
“흔히 ‘3000배를 하면 만나 준다’라는 말을 듣고 나를 보기 위해 무조건 3000배를 하라는 줄로 아는 모양인데 그렇지 않습니다. 승려라면 부처를 대행할 수 있어야 하는데 어느 점으로 보든지 내가 무엇으로 부처님을 대행할 수 있겠나 하는 생각입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남을 이익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늘 말합니다. 나를 찾아오지 말고 부처님을 찾아오시오. 나를 찾아와서는 아무 이익이 없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그러면 그 기회를 이용하여 부처님께 절하라, 하는 것이지요. 그냥 절만 하는 것이 아니고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절해라고 합니다. 그렇게 3000배를 하고 나면 사람의 심중에 무엇인가 변화가 옵니다. 그 변화가 오고 나면 그 뒤부터는 자연히 스스로 절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억지로 남을 위해서 절을 하는 것이 잘 안 돼도, 나중에는 남을 위해 절하는 사람이 되고,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 되며 그렇게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철스님이 요구한 3000배는 그냥 3000배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아집과 자만을 내려놓고 모든 이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지도록 하기 위한 은유적 방편(方便)이었던 것이다. 

구력이 꽤 되다 보니 가끔 한 수 지도해달라는 사람이 나타난다. 

당사자는 노력해도 진전이 없어 답답한 심정에 어렵게 입을 연 것이겠지만 지도 요청을 받는 쪽의 입장은 난감하다. 
늘 연습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본 경우라면 장단점을 파악하고 있기에 고쳐야 할 부분을 지적해줄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막막하기 짝이 없다.

구력이 얼마나 되는지, 어떤 식으로 배웠는지, 스윙이 어떻게 굳어졌는지, 실제 라운드에서 스코어는 어떻게 나오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이 다가와 ‘한 수 지도’를 요청하면 할 말이 없다. 

일정한 수준에 이른 경우라면 몇 마디 하면 금방 알아듣고 자신의 문제점을 깨닫지만 골프를 배운지 6개월도 안 된 사람이 ‘거리가 나지 않는다’ ‘볼이 똑바로 날아가지 않는다’ ‘클럽별 거리가 일정하지 않다’며 팁을 요청하면 황당하기 짝이 없다. 

팁 한둘로 해결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만 골프에서 그런 일은 절대 없다.
각고의 노력을 하며 수많은 깨달음 시행착오와 실패를 반복한 뒤에라야 고수의 한 마디가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고수에게 한 수 지도를 요청하려면 그 지도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바위에 아무리 물을 부어도 스며들지 않듯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사람에게 아무리 좋은 묘방을 얘기해도 그 뜻이 전해지지 못한다. 
마른 모래에 물이 스며들듯 배움의 목마름이 간절한 경우에야 ‘한 수 지도’가 오고 간다. 

한 사람의 고수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쏟은 땀과 노력을 생각하면 불쑥 던지는 ‘한 수 지도’ 요청은 무례에 가깝다. 

스윙 축을 지키기 위한 노력과 훈련. 자연스런 코킹을 위해 버스나 지하철 탈 때 손잡이를 골프채를 잡듯 하는 습관, 올바른 스윙궤도를 터득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 팔 굽혀펴기와 스쿼트, 아령 등을 통한 부단한 근력 강화 운동, 골프채를 휘두르기 전에 할애하는 30여 분간의 준비운동 등등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에게 고수의 가르침은 바위 위에 물 붓기와 무엇이 다를까. 

‘한 수 지도’를 구하기 전에 고수의 지도를 받아들일 준비가 갖춰져 있는지 먼저 돌아볼 일이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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