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 있는 벤 호건 동상. ⓒ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깊은 강물은 조용히 흐른다’ 영어식 표현으로는 ‘Still waters run deep(조용한 강물은 깊이 흐른다’이다.

무엇을 강조할 것이냐에 따라 표현은 이렇게 달라지지만 그 뜻은 같다.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그의 입속에는 도끼도 함께 태어난다. 
 어리석은 자는 악한 말을 함부로 지껄여서
 그 도끼로 자신을 찍는다.” (슛타니파타 중에서)

슛타니파타는 가장 오랜 불교 경전으로 부처의 가르침이 경전으로 체계화되기 이전의 거의 원형에 가까운 부처의 육성이 담겨있다. 슛타는 말의 묶음, 니파타는 모음이란 뜻으로 슛타니파타는 담마파다(법구경)와 쌍벽을 이루는 부처의 시 모음집이다.

골프는 지구상의 어느 스포츠와도 비교할 수 없는 묘미 만점의 운동이지만 말과는 상극이다. 재미가 있으면 유쾌하게 떠들어야 마땅한데 골프에서만은 유쾌함을 마음속에 고즈넉이 묻어두어야 한다. 동반자를 위해서는 물론 자신을 위해서.

P씨는 천성이 유쾌한 사람이다. 낯선 사람을 잘 사귀고 주변과도 잘 어울린다. 입은 잠시도 쉬지 않는다. 유머와 농담으로 분위기를 밝게 이끌어가는 재능도 타고났다. 어떤 모임이든 그가 빠지면 서먹서먹하거나 싱거워지고 재미가 반감됐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어디서든 환영받던 P씨가 골프를 배우고 나서 골프장에서만은 한동안 기피인물로 낙인찍혔다. 그의 유쾌한 천성 때문이었다. 골프를 배워 처음 머리를 얹은 날부터 그는 동반자들을 위해 타고난 재능을 발휘했다. 최신 유머로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고 무언가 분위기가 가라앉거나 긴장감이 감돈다 싶으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물론 분위기를 부드럽고 유쾌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는 선의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이런 선의에도 불구하고 P씨는 골프장에서 인기 없는 골퍼로 취급받기 시작했다. 그를 기피하는 이유는 별난 게 아니었다. 그와 함께 라운드 하면 너무 유쾌하게 웃다가 골프 리듬을 잃고 스코어도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가 하도 쉬지 않고 떠드는 바람에 집중력이 떨어져 미스 샷이 많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그에 대한 인상도 ‘사람 좋다’는 것에서 ‘너무 경박스럽다’ ‘너무 시끄럽다’는 것으로 슬그머니 변질되어 있었다.

골프채를 잡은 지 1년여가 지나서야 P씨는 자신의 타고난 천성이 동반자들에게 피해를 줌은 물론 자신의 골프를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이 쏟아내는 유머와 농담과 다변이 동반자들로 하여금 골프 리듬과 페이스를 잃게 만들고 자신도 집중력을 잃은 채 입심으로 라운드하는 천박한 골퍼로 전락해 있었던 것이다. 

“바닥이 얕은 개울물은 소리를 내지만 
 깊은 강물은 조용히 흐른다. 
 부족한 것은 소리를 내지만 
 가득 차면 조용해진다. 
 어리석은 자는 물이 반쯤 담긴 물병과 같고 
 지혜로운 이는 물이 가득 담긴 연못과 같다.”(슛타니파타 중에서)

C씨는 남의 결점을 지적하기를 좋아했다. 바른 소리도 잘했다. 물론 그의 의도는 남의 허물을 무조건 들춰내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모르고 있을지도 모를 결점을 지적해주어 좋은 방향으로 개선되도록 도와주려는 것이었다.

골프 이론이나 실기 모두 수준급인 C씨는 골프장에서 자상한 골프교사를 자임했다. 잘못된 자세나 습관을 보면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고 꼭 지적해야 직성이 풀렸다. 이미 교정할 수 없을 정도의 자신만의 스윙 자세를 굳힌 사람에게도 비거리와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스윙을 고쳐야 한다고 서슴없이 직언했다.

라운드를 끝낸 뒤 그날 게임에서 맛본 성취감과 좌절감, 만족감과 아쉬움, 환희와 분노 등의 온갖 감정을 훌훌 털어버리고 맥주잔을 기울이는 클럽하우스에서조차 C씨는 지난 18홀을 반추하며 열심히 동반자들을 복습시키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아무리 선의에서 나온 옳은 소리라도 자주 들으면 기분이 상하는 법이다. 그와 라운드한 사람들은 그의 지적을 고마워하기보다는 귀찮게 여기거나 불쾌하게 받아들였다. C씨의 이런 습성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를 ‘잔소리꾼’이나 ‘난 척하는 사람’으로 오해하기도 했다.

C씨는 불행하게도 자신의 이런 습관이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의도하지 않은 불쾌감과 피해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해주는 친구를 찾지 못했다. C씨의 친구들은 그를 통해서 남의 결점을 직설적으로 지적해주는 것이 얼마나 불쾌하고 거북한 것인가를 깨달았지만 차마 C씨에게는 말할 수 없었다.
            
자유(子游)가 말했다. “금을 섬기는 데 있어 자주 간하면 도리어 욕이 되고, 벗을 사귀는 데 자주 충고하면 도리어 사이가 벌어진다고.”(논어 중에서)

US오픈 4승, 브리티시 오픈 1승, 마스터즈 2승, PGA 2승 등 생애 통산 62승을 기록, 1950년대 미국 골프계의 거성(巨星)으로 존경받는 벤 호건은 입이 무겁기로 유명했다. 

당대의 명 프로들은 그를 두고 최상급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는데 샘 스니드는 벤 호건의 성격을 적절히 말해주고 있다.
“호건은 입이 무겁다 못해 침묵형이다. 18홀 플레이 중 호건이 입을 여는 경우는 그린에서 한 번뿐이다. ‘자네 공이 더 멀어.’ 이 한마디였다.”

벤 호건만이 입이 무거운 것은 아니다. 우리가 자주 TV에서 얼굴을 대하는 유명 프로골퍼들 대부분이 플레이 중에는 입을 함부로 열지 않는다. 골퍼가 말이 많다는 것은 바로 그만큼 자신의 플레이에 몰입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도의 영적 스승으로 추앙받고 있는 오쇼 라즈니쉬의 「지혜로운 자의 농담」에 말이 얼마나 제정신을 빼앗아 가는지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12살 난 수학의 천재가 있었다. 이 어린 천재는 아인슈타인이 40세에도 계산을 못해 골머리 앓던 것들을 척척 계산해냈다. 불행하게도 이 천재는 너무나 많은 질문 공세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고 점점 정신분열증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를 안 식구들은 그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로 하고 그를 쇼 공연장으로 데리고 갔다. 쇼가 시작되자마자 그는 배우들에게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다. 휴식시간에 그의 아버지가 물었다.

“어떠냐? 쇼가 아주 재미있지?”
어린 천재가 대답했다.
“아버지. 저 배우들이 공연 도중에 지껄인 대사는 모두 7만1,832개의 단어였습니다.”

오쇼 라즈니쉬는 이 일화를 소개하면서 “언어에 신경을 쓰지 말라. 차라리 언어를 에워싸고 있는 그 침묵에 귀를 기울여라. 언어 대신 그 언어를 에워싸고 있는 시에 귀를 기울여라. 그 리듬에 노래에 귀를 기울여라.”고 가르친다. 

슛타니파타는 말의 절제를 이렇게 강조하고 있다.
“수행자가 진리에 맞는 말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은 
 스스로 알고 있는 많은 것을 남에게 가르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알면서도 자기 자신을 절제한다면, 
 진리를 이미 알고 있으면서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면, 
 그는 아주 지혜로운 현자다. 
 이러한 현자는 지혜의 절정을 체험한 사람이다.”

그러나 골프를 하면서 아끼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
‘굿 샷!’ ‘나이스 온!’ ‘OK!’ ‘멀리건!’ ‘탱큐!’같은 말은 많이 자주 할수록 골프를 윤택하게 만든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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