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제공=방민준


[골프한국] 골프는 그림에 비유하면 동양화다. 그중에서도 수묵화 또는 서예다.

서양화는 여백 없이 화폭 전체가 색으로 채워진다.

반면 동양화는 여백이 많다. 산수화는 그런대로 여백이 적은 편이지만 사군자 그림은 여백이 절반을 넘는다. 동양화의 묘미와 깊이는 바로 이 여백에 있다.

동양화, 특히 수묵화와 서예는 덧칠이 허용되지 않는다. 서양화는 구도나 색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덧칠을 통해 같은 화폭 위에 다시 그릴 수 있지만 수묵화와 서예에선 한 획이라도 잘못 그어지면 파지를 내고 새 화선지를 펼쳐야 한다.

여백이 많으면서 덧칠이 허용되지 않는 동양화는 골프의 속성과 너무나 닮았다.

골프에는 틈이 너무 많다. 한번 라운드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대략 4시간 정도로 잡으면 실제로 샷 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개인의 스윙 템포나 성격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보통 샷을 한번 날리는데 3초 정도 걸린다고 보면 된다. 80타를 치는 골퍼라면 240초, 즉 4시간 걸리는 라운드에서 스윙에 소모하는 시간은 기껏 4분 정도가 고작이다.

나머지 3시간 56분이 틈인 셈이다. 어드레스를 하기 위한 예비 동작, 샷을 한 뒤 담소하며 이동하고 다음 샷을 준비하는 데 걸리는 이 시간이 바로 골프의 틈이다.

빈틈이 너무 많다는 점은 골프가 다른 스포츠와 구별되는 특징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상대를 두고 벌이는 스포츠는 거의 틈이 없다. 복싱이나 레슬링, 태권도, 유도 같은 상대와 가깝게 밀착해 대결하는 스포츠는 경기 중 딴생각을 할 겨를 없이 거의 본능적으로 방어와 공격을 되풀이해야 한다.

농구나 배구 축구 등 구기 종목 역시 상대방과의 거리가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지만 역시 딴생각을 할 틈이 없다. 쉴 새 없이 상대의 공격을 방어하며 상대의 허점을 찾아 공격하는 일이 이어진다.

구기 종목 중에 공수교대를 하며 벤치에서 기다리거나 투수가 공을 던지는 준비를 하는 사이 등 비교적 많은 틈이 있는 야구는 골프와 속성이 비슷한 면이 있다.

직접 상대와 대치하지 않으면서도 기록으로 경쟁을 벌이는 양궁이나 사격은 골프와 거의 비슷하다. 실제로 활시위를 당기고 방아쇠를 당기는데 걸리는 시간은 순간적이라 할 만큼 짧다. 경기에 소요되는 시간의 90%이상을 호흡을 조절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쓴다.

골프는 공간적 시간적으로 너무 틈이 많다. 골프는 바로 이 틈과 싸우는 스포츠다.

함께 플레이하는 동반자와의 거리도 티샷이나 퍼팅을 하는 것 외에는 항상 멀리 떨어져 있게 마련이며 플레이를 펼쳐나가야 할 공간 역시 길고도 넓다. 여기에 골프의 핵심이라고 할 샷과 샷 사이에 시간적 공간이 너무 많다.

바로 이 공간적 시간적 틈에 온갖 생각이 끼어들어 골퍼를 괴롭힌다. 매 순간 변하는 동반자와의 틈과 샷과 샷 사이의 틈이 골프를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홀의 아쉬움과 실망감, 멋진 샷을 날린 뒤 똑같은 샷을 날리고 싶은 욕심, 라운드 중인 동반자 개개인에 대한 호·불호의 감정, 동반자의 플레이에 따른 마음의 흔들림,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나쁜 징크스 등 여름 하늘에 뭉게구름 피어오르듯 온갖 상념이 바로 이 틈에서 피어난다.

아무리 골프기술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이 빈틈을 다스릴 줄 모르면 골프를 제대로 즐길 수 없다. 빈틈에 비바람 눈보라가 몰아치고 천둥 번개가 치면 샷도 망가진다. 반대로 바람 한 점 없는 수면처럼 평온하면 평소 익힌 기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

프로의 세계에서도 완벽한 기량으로 게임을 이끌어가던 골퍼가 어느 한순간 마음의 격랑에 휘말려 추락하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주말골퍼들이 얼마나 이 틈 때문에 고통을 겪겠는가.

골프가 영원히 정복할 수 없는 스포츠로 인식되는 것도 바로 이 빈틈을 다스리는 일이 그만큼 지난함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수묵화에서 덧칠을 할 수 없듯 골프에서도 ‘지금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샷은 단 한 번뿐이다. 엄격하게 골프 룰이 적용되는 라운드라면 이미 날린 샷은 지울 수도 다시 할 수도 없다.

골퍼가 날리는 모든 샷은 두 번 다시 날릴 수 없는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골프의 매혹에 빠진 많은 사람들이 골프장을 찾아 땀을 흘리는 것도 처음이자 마지막인 샷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열정 때문이다.

마치 마음에 흡족한 수묵화나 서예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해 열심히 벼루를 갈며 필력을 기르는 화가나 서예가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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