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브룩스 켑카가 워너메이커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있다. ⓒ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진기한 화제를 낳으며 제101회 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브룩스 켑카(29)는 여러모로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를 연상케 한다. 신이 빚은 듯한 강철 같은 육체와 눈빛에서 읽히는 강인한 정신력은 고대 이집트 왕국을 지배한 파라오의 카리스마를 느끼게 한다. 

지난 16~20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주 파밍데일의 베스페이지 스테이트파크 블랙코스에서 열린 PGA투어 두 번째 메이저 대회 PGA챔피언십 경기는 브룩스 켑카를 PGA투어의 새로운 파라오로 공인하는 대관식을 방불케 했다.

주최 측은 지난달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극적으로 골프황제로 부활한 타이거 우즈에 포커스를 맞춰 대회 열기를 달아오르게 하고 마스터스에 이은 흥행 돌풍을 일으킬 심산인 듯했으나 켑카와 팽팽한 대결 구도를 만들만한 대선수들이 초반부터 나가떨어지는 근래 보기 드문 사태가 벌어졌다.

특별그룹(Featured Group)으로 함께 묶인 타이거 우즈와 프란체스코 몰리나리는 브룩스 켑카의 독주에 속수무책이었다. 
우즈는 황제다운 힘 한번 제대로 못쓰고 컷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고 몰리나리는 간신히 컷 통과에 만족해야 했다. 

그와 경쟁 구도를 만들만한 다른 대선수들도 무슨 주술에라도 걸린 듯 그의 독주에 제동을 걸지 못하고 PGA챔피언십 역대 5번째, 36년 만의 와이어투와이어 우승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진짜 골프 영웅을 가리기 위해 골프코스를 길게 조정하고 러프도 깊게 하는 등 난이도를 높였음에도 첫 라운드부터 2위와 5타 차이의 간격을 벌리며 치고 나간 켑카는 3라운드를 마쳤을 때 2위와 간격을 7타로 늘렸다. 

3라운드가 끝난 뒤 미국의 골프채널은 “켑카는 1900년 이후 메이저 대회 3라운드까지 7타 차 이상 리드를 지킨 10번째 선수로, 앞선 9번의 사례에선 3라운드까지 7타 이상 리드한 선수가 패하지 않고 모두 우승했다”며 사실상 그의 우승을 예고했다.

5언더파 205타로 공동 2위에 오른 선수 4명 중 세계 랭킹 1위 더스틴 존슨이 가장 위협적인 상대였지만 마지막 라운드에서 그의 역할은 위협으로 끝났다. 

마지막 라운드 후반 들어 켑카가 난조에 빠지면서 승부가 불투명한 상황이 벌어지는 듯했다. 11번 홀부터 14번 홀까지 연속 보기를 하며 4타를 잃는 사이 앞조의 더스틴 존슨이 15번 홀에서 버디를 챙기며 간격이 1타 차로 좁혀지기까지 했다.
이번 대회 1라운드에서 마지막 라운드까지 한 번도 선두를 내준 적이 없는 켑카는 15번 홀(파4) 파세이브로 한숨을 돌렸다.

이번엔 존슨이 무너졌다. 16번 홀(파4)에 이어 17번 홀(파3)에서도 보기를 적어내며 3타 차이로 벌어지자 켑카는 여유를 되찾았다.
켑카는 17번 홀에서 한 타를 잃었지만 18번 홀을 파로 막아 합계 8언더파 272타로 존슨을 2타 차이로 따돌리고 우승했다. 

PGA 투어 통산 6번째 우승이자 메이저 대회 4번째 우승이다. 동시에 US오픈(2017, 2018년)과 PGA 챔피언십(2018, 2019년)에서 모두 2연패를 달성한 최초의 선수로 역사에 남게 됐다.

이런 격랑 몰아친 대회에서 우리의 강성훈(31)이 한국 선수 중 유일하게 컷을 통과, 최종합계 이븐파 280타로 단독 7위를 지켜 1주일 전 AT&T 바이런 넬슨 대회에서 8년 만에 PGA 첫 승을 거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강성훈이 켑카를 닮은 강인한 선수로 성장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솟구쳤다.
 
2012년 프로로 전향한 켑카는 4년만인 2015년에야 웨이스트매니지먼트 피닉스오픈에서 PGA투어 첫 승을 맛볼 정도로 프로선수로서의 초반 행로는 두드러지지 않았다. 

플로리다주립대의 골프선수로 활약하며 전미 대표선수로 선발되기도 했으나 2012년 아마추어 자격으로 US오픈 참가하기 위해 퀄리파잉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뒤 그길로 프로로 전향, 유러피언투어의 2부인 챌린지 투어를 전전하다 2014년 PGA투어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에게 ‘메이저 사냥꾼’이란 별명이 따라붙는 것은 PGA투어 통산 6승 중 4승이 메이저에서 거둔 것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메이저 대회에서의 그의 존재감이 두드러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PGA투어에는 언제라도 우승 가능한 선수들이 즐비하지만 이번에 켑카가 세계 랭킹 1위에 오르면서 2위로 내려앉은 더스틴 존슨, 3위 저스틴 로즈, 4위 로리 매킬로이, 5위 저스틴 토마스, 6위 타이거 우즈 등 톱10을 오르내리는 선수들에게도 높은 벽이 될 것 같다.

켑카는 지난해 10월 제주도에서 열린 CJ컵에서 우승하면서 처음 세계 랭킹 1위에 올라 9주 동안 왕좌를 지키다 올 1월 저스틴 로즈에게 1위를 내줬고 이어 더스틴 존슨이 1위에 올랐었다.

이들 톱 랭커들이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지금의 켑카가 아니라 2~3년 후의 켑카가 될 가능성이 짙다. 이에 대비하지 않으면 그의 파라오 재위 기간이 의외로 길어질 수 있다. 

이번 대회 4라운드에서 의외의 난조를 경험한 켑카는 자신의 취약점을 보완해 더욱 강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긴 비거리를 자랑하면서도 아이언샷 특히 어프로치의 정교함 부족이 불만인 그는 장도(長刀)와 단도(短刀)를 지혜롭게 사용하는 법 터득에 정성을 기울일 것이다. 이런 담금질 과정까지 거치면 켑카는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철옹성이다. 

타이거 우즈의 대기록(샘 스니드의 PGA 통산 82승, 잭 니클라우스의 메이저 18승) 도전이 좌절된다면 브룩스 켑카가 장애물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파라오’ 브룩스 켑카를 극복하기 위한 별들의 거센 도전이 골프의 새로운 볼거리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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