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LPGA 투어 혼다 LPGA 타일랜드에서 우승을 차지한 양희영 프로. 사진제공=LPGA


[골프한국] 2월 24일 태국 촌부리 시암 컨트리클럽 파타야 올드코스에서 막을 내린 혼다 LPGA 타일랜드에서 우승한 양희영(29)은 골프선수로서의 사이클이 상당히 긴 편이다.

부모로부터 천부적 스포츠 DNA를 물려받은 그는 중학생 때 일찌감치 호주로 골프 유학길에 올라 호주 아마추어 골프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유학 1년 만에 주니어선수권대회를 석권하기 시작하면서 미래의 골프 스타로 주목받았다. 

중학생이던 2005년 퀸즈랜드 아마추어 챔피언십, 뉴질랜드 레이디스 아마추어 챔피언십, 그렉 노먼 주니어마스터스 등 3개 대회를 석권한 데 이어 고교에 재학중이던 2006년 LET(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 ANZ 레이디스 마스터스에 아마추어로 참가해 최연소 우승(16세 6개월 8일)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LET에서 이 기록은 아직 깨어지지 않고 있다. 

LET 우승을 계기로 양희영은 프로로 전향했으나 만 18세가 될 때까지 부모와 함께 여행한다는 조건으로 LET 회원자격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이후 2008년 하이포베라인스뱅크 독일여자오픈, 스칸디나비안 TPC 우승 등 LET에서 3승을 거둔 뒤 2007년 LPGA투어 Q스쿨을 단번에 통과했다. 하이포베라인스뱅크 독일여자오픈에서 우승한 뒤 상금 전액을 중국 스촨성의 지진 난민들을 위해 쾌척해 실력과 인품을 겸비한 선수로 대서특필되기도 했었다. 

골프전문가들 사이에는 양희영을 당시 세계 골프계를 지배하던 아니카 소렌스탐(스웨덴)에 비유해 ‘북반구에 소렌스탐이 있다면 남반구에는 에이미 양(양희영의 영어 이름)이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키 174cm의 좋은 체격조건에 부드러운 스윙의 대명사 어니 엘스를 연상케 하는 스윙을 구사하는 그녀에 대한 이런 기대와 촉망은 당연했다. 

그러나 화려한 출발과 달리 LPGA투어에서의 첫 승의 길은 험난했다. 2013년 한국에서 열린 LPGA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우승할 때까지 6년이 걸렸다. 

우승만 없었을 뿐 전적이 실망스런 것은 아니었으나 후배들이 LPGA투어에서 승수를 쌓아가는 상황에서 초연할 수 없었다. LPGA투어 진출 이후 6년 가까이 118번이나 도전해 승리를 거두지 못했으니 골프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중도 포기하고 싶은 마라토너의 갈등이 그를 괴롭혔다. 

양희영이 위대한 것은 그렇게 긴 무승의 기간을 보내면서도 장거리선수로서의 인내와 끈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에게 LPGA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우승은 인고에 대한 값진 선물이자 보상이었다.

이후에도 그는 우승의 갈증을 겨우겨우 해소해나갔다. LPGA투어 첫 승 이후 2년만인 2015 혼다 LPGA 타일랜드에서 우승한 뒤 다시 2년을 무승으로 보내고서야 2017년 같은 대회에서 우승했다. 

이번 우승도 꼭 2년 만이다. 그의 징검다리 우승을 두고 이 대회가 그와 궁합이 맞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으나 어떻게 보면 그의 우승 사이클이 그만큼 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골프선수에게 우승 사이클이 길다는 건 칭찬이 아니다. 장거리선수를 닮았다는 것도 덕담이 아니다. 그의 모자에 그 흔한 로고 하나 붙지 않은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잘 다져진 기본기, 탄탄한 체격과 체력, 물 흐르는 듯한 부드러운 스윙으로 대회마다 상위권에 오르면서도 기회를 움켜쥐는 근성 부족으로 자주 우승 기회를 놓치는 바람에 ‘숨은 실력자’로만 평가받았는데 이번에 달갑잖은 꼬리표를 떼게 됐다.

그의 이번 우승이 값진 것은 그동안 약점을 말끔히 털어내고 세계랭킹 1위 태국의 아리야 주타누간(23)에 맞설 수 있는 강력한 대항마로 부상했다는 점이다. 그의 약점은 잘 나가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맥없이 무너진다는 것이었다. 그립이 미끄러지듯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허다했다. 독한 맛, 깡, 전투력 부족 등이 지적되었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챔피언조에서 호주교포 이민지(22), 신지은(26) 등과의 숨 막히는 선두경쟁, 하루에 이글 2개, 버디 5개나 몰아친 카를로타 시간다(28·스페인)와 지은희(32)의 추격에도 불구하고 그의 악력은 풀리지 않았다. 원만한 성격 소유자들의 결점인 승부욕 결핍도 드러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본인 스스로 평정심을 유지하는 모습이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저만하면 아리야 주타누간의 독주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다. 

지난 시즌 전관왕을 차지했던 아리야 주타누간이 올 시즌 들어서는 아직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지 않고 있지만 LPGA투어 최강자임엔 틀림없다. 한창 익히고 있는 드라이브 샷이 안정되면 폭발적인 상승세를 탈 수 있는 선수다. 

양희영과 함께 이미림(28)과 허미정(29)도 아리야 주타누간에 대적할 수 있는 좋은 재목들이다. 좋은 체격에 부드럽고도 힘찬 스윙은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다. 예전에 양희영이 그랬듯 이 두 선수도 기회 포착력이나 근성의 결여가 아쉬움으로 남았었다. 

양희영의 재기가 자극이 되어 막강한 태극낭자 전선을 구축한다면 지난 2015년, 2017년에 세운 한 시즌 최다승(15승) 기록도 깰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인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저작권자 © 골프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