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팀 전인지, 유소연, 김인경, 박성현 프로. 사진제공=UL 인터내셔널 크라운 조직위원회



[골프한국] 한국 여자골프가 4년 만에 8개국 국가대항전 UL 인터내셔널 크라운 대회에서 우승, 여자 골프 최강국의 자존심을 지켰다.

지난해 시즌만 해도 LPGA투어 33개 대회 중 절반에 가까운 15개를 휩쓸며 LPGA의 대세를 형성해온 한국 여자골프는 올해는 지금까지 치러진 26개 대회 중 우승이 8개 대회에 그쳐 기세가 다소 주춤한 듯하지만 여전히 최다 우승국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선수 개개인의 기량은 세계 톱클래스로 인정받으면서도 골프강국 8개국의 국가대항전인 UL 인터내셔널 크라운 대회에서만은 명성에 합당한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2014년 창설대회에서 한국은 3위에 그쳤고 2016년 대회에서 2위로 올랐다. 세계 최강이면서 스페인과 미국에 우승을 내주었다.
올해 대회도 전망이 밝지 않았다. 박인비(30)의 대회 출전 포기에 따른 출전선수의 변화, LPGA투어에서의 치열한 경쟁관계 등으로 미뤄 미국과 유럽대륙간의 남녀골프 대항전인 라이더 컵이나 솔하임 컵처럼 끈끈한 팀워크를 발휘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김인경(30), 유소연(28), 박성현(25), 전인지(24)로 구성된 한국팀은 이런 부정적 시선을 말끔히 걷어내고 우승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7일 인천 송도 잭 니클라우스 골프클럽 코리아에서 막을 내린 UL 인터내셔널 크라운 대회에서 한국팀은 승점 15점으로 3수 끝에 정상에 올랐다. 한국팀과 우승경쟁을 벌인 미국과 영국이 승점 11점으로 뒤를 이었다. 

많은 화제와 볼거리를 제공한 UL 인터내셔널 크라운 대회를 지켜보면서 기량이나 신체조건 등 객관적 요소가 골프를 지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팀 경기에서는 이런 객관적 요소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마지막 날 싱글 매치에서 이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졌다.

미셸 위가 태국의 모리아 주타누간에게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쉽게 상상하기 힘들다. 신체조건이나 골프 기량, 경력 등으로 미뤄 미셸 위의 손쉬운 승리가 예견되었으나 모리아 주타누간의 당찬 플레이에 미셸 위는 제대로 힘을 써보지 못하고 2&1으로 패했다.

김인경이 영국의 브론테 로를 이긴 것도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다. 김인경은 신체조건에서 밀렸고 비거리에서도 불리했다. 이런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김인경은 철저하게 자신의 경기를 펼쳤다. 작은 키에 축을 지키며 풀 스윙을 하는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했으나 살얼음판 같은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서 김인경은 2UP으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박성현과 아리야 주타누간의 대결은 현재와 과거의 세계랭킹 1위로 언제라도 랭킹이 뒤바뀔 수 있는 사이라는 점에서 최대의 빅 매치로 꼽혔다. 기량의 우열을 가리기 어려워 보는 이에 따라 예측이나 전망이 달랐겠지만 미소로 무장한 아리야 주타누간이 입을 굳게 다문 박성현을 2&1으로 무너뜨렸다.

유소연과 렉시 톰슨의 대결 역시 서로의 장단점이 달라 예측이 쉽지 않았는데 힘을 앞세운 톰슨에 유소연이 평정심을 갖고 대응해 비기는데 성공했다.

4전 전승의 전인지의 맹활약은 예상 밖이었다.
지난 2016년 메이저대회 에비앙 챔피언십 이후 우승을 보태지 못하고 주춤하고 있던 그는 출전기회도 우여곡절 끝에 얻었다. 박인비가 출전을 포기하면서 세계랭킹 상 차순위자인 최혜진(19), 고진영(23) 차례였으나 이들 역시 같은 기간 열리는 KLPGA투어 메이저대회 하이트진로 챔피언십 출전을 고집하면서 그에게 출전기회가 온 것이다.

유소연과 짝을 이뤄 포볼 매치 3경기에서 모두 승리한 전인지는 마지막 싱글매치에서 바이킹의 후예 안나 노르드크비스트(스웨덴)를 만났다.
안나 노르드크비스트로 말하면 장신에 장타에 기질도 도전적이다. 얌전한 새색시 같은 분위기의 전인지가 여자바이킹과의 대결에서 얼마나 버텨낼지 솔직히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전인지는 박빙의 경쟁 끝에 1홀 차의 귀중한 승리를 거뒀다.
전인지와 노르드크비스트의 경기는 택견과 격투기 싸움을 연상케 할 정도로 대조적이었다. 전인지는 유난히 부드러운 스윙으로 코스를 받아들이는 듯했고 노르드크비스트는 정복 길에 나선 바이킹 후예답게 검을 휘두르듯 클럽을 휘둘렀다.

결국 전인지가 마지막 홀까지 가는 접전 끝에 1UP으로 승리를 거뒀다. 4전 전승의 대위업이다.  
긴장 감도는 경기 중에도 홀을 이동하면서 그를 응원하는 팬들과 스킨십을 하는데 인색하지 않는 그를 보며 저런 행동이 경기를 풀어가는 데 긍정적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UL 인터내셔널 크라운 대회를 본 소감은 골프 역시 복잡계(複雜系)의 지배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신체조건이나 연습량, 소질, 배움의 과정, 마음 다스리는 능력 등이 골프경기의 결과를 만들어내겠지만 끊임없이 경기 환경이 변화하는 골프에서는 이런 객관적 조건 외에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요소들이 서로 화학작용을 일으켜 예상 밖의 결과를 만들어낸다.

최고수의 추락, 무명의 반란, 예상을 벗어난 결과, 의외의 선전 등이 복잡계 작용의 결과물들이다. 객관적 요소나 통계, 상식과 통념은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미묘한 복잡계에선 힘을 잃는 경우를 종종 본다.
골프에도 복잡계 이론이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은 객관적 조건이 불리한 주말골퍼에겐 복음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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