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디오픈 챔피언십 최종라운드 18번홀 러프에서 샷을 하는 장 반데 벨데의 모습이다. ⓒ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제147회 디 오픈이 열리는 커누스티(Carnoustie) 골프 링크스 하면 자연스럽게 19년 전의 사건이 떠오른다.

1999년 7월 셋째 주 일요일 마지막 라운드 마지막 18번 홀에서 ‘골프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가’라는 묵직한 화두를 던진 사건이 벌어졌다.

490야드 파4짜리 18번 홀 티잉 그라운드에 선 프랑스의 장 반데 벨데는 2위와 3타 차 선두를 지키고 있었다. 아무도 그의 우승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골프팬들의 예상을 깨는 플레이를 펼쳤다.

이 홀은 왼쪽이 OB지역이고 큰 개울이 페어웨이를 두 번이나 휘돌아가는 어려운 코스였다. 페어웨이마저 좁아 굳이 드라이버를 잡을 필요가 없는데도 장 반데 벨데는 드라이버로 티샷을 했다. 볼은 개울을 지나 러프로 날아갔다. 그러나 우승하는데 장애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개울을 건너 핀까지의 거리는 235야드. 개울을 피해 아이언을 잡으면 안전하게 3온을 할 수 있었다. 3온에 실패하더라도 더블보기로만 막으면 우승은 그의 차지였다.

그러나 장 반데 벨데는 러프에서 2온을 시도했다. 그의 두 번째 친 볼은 개울을 건넜지만 그린 옆 관람대를 맞고 튀어 깊은 러프로 들어갔다. 러프에서 친 세 번째 볼은 물로 들어가고, 1벌타 후 날린 볼은 벙커로 들어갔다.
결과는 트리플 보기. 그는 결국 연장전에서 스코틀랜드의 무명선수였던 폴 로리에게 우승을 헌납하고 말았다. 

모든 언론이 기다렸다는 듯 한 번의 잘못된 판단과 선택으로 일약 대스타로 발 돋음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며 그의 만용에 가까운 무모함을 꾸짖었다.
대회가 끝난 후 그는 “18번 홀에서의 소극적 플레이는 골프정신에도 맞지 않고 프랑스 정신에도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언론들은 ‘그가 소극적 플레이로 우승했다 한들 누가 골프정신 운운할 것인가’라며 명분과 만용을 구분 못하는 그를 비웃었다.

장 반데 벨데를 주인공으로 한 것 같은 ‘틴컵(TIN CUP)’이라는 영화가 있다. 물론 이 사건이 있기 전에 만들어져 그와 관련은 없지만 골프정신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한 이 영화는 미국 텍사스 주 어느 시골 드라이빙 레인지의 레슨프로가 우여곡절 끝에 US오픈에 출전, 목전에 둔 우승을 놓치면서도 자신만의 플레이를 펼치는 모습을 감동스럽게 보여준다.
골프에서는 기능도 중요하지만 마인드 컨트롤이 더 중요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게임을 망치면서도 자신이 즐기는 스타일의 골프를 고집하는 괴짜 골퍼로 등장한다.

US오픈 마지막 라운드 18홀에서 보여주는 주인공의 플레이는 골프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어떤 태도가 진정 골프를 즐기는 것인가 하는 문제를 화두로 던져준다.

골프 레슨을 받으러 왔다가 주인공과 가까워진 여성 심리치료사의 영향으로 지역 선발전을 거쳐 US오픈에 참가한 주인공은 첫날 83이라는 참담한 스코어를 낸다. 아무리 시골구석의 레슨프로지만 대학시절 촉망되는 골프선수로 명성을 날렸던 그로서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두 번째 라운드부터 분발한 주인공은 62라는 깜짝 놀랄 스코어를 기록하며 선두대열에 합류한다.

마지막 4라운드 마지막 홀을 남기고 주인공은 다른 한 선수와 함께 공동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18홀에서 그의 드라이브 샷은 잘 날아가 그린까지 237야드를 남겨두고 있었다. 보통 프로선수라면 어렵지 않게 우드로 2온을 노릴 기회였으나 그린 바로 앞에 폭이 꽤 넓은 연못이 입을 벌리고 있어 대부분의 선수들은 3온의 안전한 길을 택했다. 주인공은 지난 3라운드 내내 이곳에서 2온을 시도했다가 모두 공을 물에 빠뜨린 전력이 있었다. 동반자는 안전하게 아이언으로 호수에 못 미치게 볼을 보냈다.

그의 캐디는 안전하게 보낼 것을 권하며 7번 아이언을 뽑았다. 그러나 주인공은 3번 우드를 뽑아들었다. 중계 방송하는 아나운서와 해설위원은 그의 무모한 시도를 비웃었다. 주인공이 3번 우드로 날린 볼은 멋지게 날아 그린에 떨어졌다. 그러나 오르막 그린에 떨어진 볼은 백스핀이 걸려 뒤로 구르더니 그만 연못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기회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연못 앞에서 4온으로 볼을 핀에 붙이면 플레이오프에 나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그 자리에서 다시 볼을 드롭해 4타째를 쳤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볼은 또다시 연못에 빠졌다. 6타 째 친 볼 역시 연못에 빠졌다. 아나운서와 해설위원은 무모한 모험을 포기하지 않는 주인공의 행동에 조롱과 경멸 섞인 코멘트를 하며 현장상황을 중계하고 있었으나 갤러리들로부터는 환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런 무모함을 즐기는 주인공의 성격을 잘 아는 여자친구는 한술 더 떠 “당신 하던 스타일대로 하라!”고 용기를 준다. 이 말에 더욱 자극을 받은 주인공은 계속 그 자리에서 3번 우드를 휘둘러 모두 5개의 볼을 연못에 수장시켰다. 한 자리에서 많은 볼을 치는 바람에 게임 지연 금지조항에 걸려 실격 직전에 처한 주인공은 마지막으로 여섯 번째 볼을 날렸다. 12타째였다. 갤러리들의 시선에 쫓긴 듯 허공을 뚫고 날아간 볼은 그린 위 핀 바로 앞에 떨어져 2m 정도를 굴러 홀인 되었다. 갤러리들은 환호성을 멈출 줄 몰랐고 중계방송 아나운서는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희한한 장면을 설명하느라 법석을 떨었다.

홀에서 볼을 꺼낸 주인공은 다섯 개의 볼을 삼킨 연못으로 그 볼마저 던져버리곤 갤러리들의 환호에 손을 흔들며 그린을 벗어났다.
이때 여자친구가 주인공에게 다가가 안기며 말한다.
“잘 해냈어요. US오픈 우승자는 5년만 지나면 다 잊혀 지지만 당신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거예요.”

돌이켜보면 과연 누가 장 반데 벨데에게 손가락질 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그의 플레이를 한 것뿐이다. 우승을 하기 위해 비겁하기 싫었고 정면승부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순수함이 일생일대의 도전을 마다하지 않게 한 것이다. 장 반데 벨데에겐 도전 자체가 더 골프정신에 가까운 것이 아니었을까. 영화 틴컵의 주인공처럼.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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