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한국] “골퍼의 스타일은 좋건 나쁘건 골프를 시작한 최초의 1주일 안에 만들어진다.”

‘스윙의 시인’으로 칭송받는 영국의 프로골퍼 해리 바든(Harry Vardon, 1870~1937)의 명언이다.

디 오픈에서 여섯 차례나 우승하며 '근대 골프의 시조'라고 불리는 바든은 스윙 폼이 유려하고 우아한 것으로 유명했다. 현대 골퍼의 대부분이 채택하고 있는 ‘오버래핑 그립’(오른 손 새끼손가락을 왼손 인지와 중지 사이에 얹어놓는 그립)을 고안했다. 미국 PGA투어에서 매년 시즌 최소 평균타수를 기록한 선수에게 주는 ‘바든 트로피'도 그를 기리기 위함이다.

골프채를 잡은 지 1주일 안에 만들어지는 것은 스타일에 국한 되지 않는다. 한 사람의 평생 골프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연습에 열중하는데도 도대체 실력이 향상되지 않는 골퍼가 의외로 많다. 구력이 10년, 20년이 넘었는데도 만년 보기플레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골퍼들도 흔하다.

열심히 연습하는데도 어떤 사람은 일취월장의 실력을 보이며 ‘골프신동’으로 불리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같은 땀을 흘리고도 실력향상이 안되어 ‘골프지진아’란 수모를 당한다.

최초에 그리는 골프의 밑그림 때문이다. 처음 골프를 배울 때의 밑그림이 어떻게 그려졌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골프행로가 좌우된다.

완전 백지상태에서 교과서적인 스윙과 올바른 골프철학으로 밑그림이 그려졌다면 자신이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 한 빠르게 실력이 향상돼 골프의 묘미를 맛보게 된다.

반대로 어설픈 골프지식을 갖고 레슨프로나 선배의 가르침을 수용하지 않고 남의 돈 따먹는데 재미를 붙여 제멋대로 엉터리 밑그림을 그려버리면 평생 땀을 흘리고도 골프의 참맛을 맛볼 수 없다.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릴 때는 연필로 윤곽을 대충 그리는데 마음에 안 들면 지우고 다시 그릴 수 있다.

그러나 골프의 밑그림은 연필로 그려지지 않는다. 골프의 밑그림은 조각칼로 새겨진다. 골프채를 잡은 뒤 최초의 1주일, 혹은 한 달간 휘두르는 한 샷 한 샷은 바로 조각칼로 근육과 두뇌에 골프의 밑그림을 새겨 넣는 기간이다.

이때 밑그림이 제대로 각인되면 나중에 즐거운 골프행로로 들어설 수 있지만 잘못된 밑그림이 각인되면 그것을 메우고 다시 각인해야 하는데 이게 여간 어렵지 않다.

밑그림을 그리는 것도 30대 이전에나 가능하지 몸과 마음이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40대 이후에는 웬만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선 불가능에 가깝다.
 

최근 이런 불가능한 일을 해낸 지인을 만났다.

그를 안 지는 한 3년 되는데 내 눈에 비친 그는 정말 안타까운 골퍼였다. 골프를 배운지 1년이 채 안되어 모임에 참가하기 시작했는데 한 마디로 ‘만인의 도시락’이었다.

신체조건은 좋았으나 대충 배우고 라운드에 나선 터라 대부분 구력이 15~20년 되는 멤버들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아무리 후하게 핸디캡을 받아도 그는 늘 도시락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고 라운드를 즐길 줄 알았다. 학창시절 축구 농구 등 구기운동에 재미를 붙이고 스킨스쿠버를 할 정도로 다양한 스포츠를 섭렵한 그는 50대 중반을 넘어서야 주위의 권유로 골프채를 잡았다. 그리고 이내 골프의 마력에 빠졌다. 그는 기본이 다져지기도 전에 라운드 재미부터 알았다. 내기에서 번번이 터지면서도 ‘맞으면서 크겠다’는 자세였다.

주위에서 “언제 도시락 신세 면할 거냐” “맨날 그런 골프만 할 거냐” “자네 돈 따먹는 게 죄 짓는 기분이다” 등등의 갖은 수모와 면박을 당하면서도 그는 달라지지 않았다. 적어도 그와 마지막 라운드를 했던 지난해 말까지는 그랬다. 
 

이후 7개월 만에 그와 라운드 할 기회가 생겼다. 첫 홀부터 그는 옛날의 그가 아니었다. 티샷은 페어웨이 가운데에 떨어졌고 두 번째 샷으로 파온에 성공했다. 전에는 힘이 잔뜩 들어간 스윙으로 볼을 부챗살로 날렸으나 스윙은 간결하면서도 부드러웠고 방향성도 일정했다. 비거리도 만만치 않았다.

처음엔 ‘한두 홀은 우연히 잘 맞을 수도 있겠지’ 생각했으나 그게 아니었다. 파5 홀에서는 2온을 노릴 정도였고 가까운 어프로치의 정확성도 뛰어났다. 전반 중반을 지나면서 나는 그가 완전히 다른 골퍼로 변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60을 눈앞에 둔 그의 변신은 내 눈엔 불가사의했다. 기초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데다 이미 잘못된 골프 버릇이 굳어있는 상태였는데 어떻게 저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궁금했다. 그래서 라운드를 하면서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끌어냈다.

“김형, 자신이 완전히 달라진 사실 알고 있습니까?”

“느끼곤 있습니다만 아직 부족하지요.”

“몇 개월 전만 해도 만인의 도시락이었잖아요. 보는 사람이 임자였는데….”

“그랬었죠.”

“무슨 도시락 안 되겠다는 결심을 한 계기가 있습니까?”

“도시락 되는 건 상관없었어요. 그래도 골프는 재미 있으니까요.”

“그럼 어떻게 이렇게 달라질 수 있습니까?”

“친구 00이 하는 말이 듣기 싫었습니다.”

그가 말하는 친구는 구력 25년에 언더파도 자주 치는 자타가 공인하는 왕 싱글이다.

“뭐라 했는데요?”

“너 언제까지 그런 골프할래? 한번이라도 제대로 해봐라. 그 친구가 만날 때마다 그런 말을 하더라구요. 구력도 짧고 제대로 못 배웠으니 그러려니 했으나 자꾸 같은 소리 듣다 보니 가슴에 못이 박이더라구요. 어느 날 친구를 놀라게 해주자고 결심했지요.”

“그럼 정식 레슨을 받고 연습을 했겠네요?”

“그러진 않았어요. 골프채널 레슨프로를 열심히 보고 연습장에서 동작 하나하나를 생각하며 연습했죠. 무엇보다 그 친구가 그런 소리 두 번 다시 못하게 하고 싶었어요.”

“친구의 말이 좋은 자극이 된 셈이네요.”

“그렇지요. 내 돈 따먹으면서 미안했던가 보죠. 그런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해주었으니.”

“내가 보기엔 천지개벽입니다. 짧은 구력에, 그 나이에 그런 변신은 불가능합니다.”

“이젠 친구 꺾는 게 목표입니다.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면서 그는 덧붙였다.

“구력도 노력 앞엔 무릎을 꿇겠지요.”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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