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A 투어 볼빅 챔피언십 우승을 확정한 이민지와 4라운드에서 경기하는 김인경의 모습이다. ⓒ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생존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은 그만큼 생존환경이 좋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초원이나 정글은 생존에 따른 위험부담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동물들이 서식하는 것은 먹이사슬 구조를 파괴하지 않는 한 생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상위 포식자에서부터 최하위 먹이까지 공존하지만 각각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무리한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하위 포식자라 해도 개체 유지는 가능하다. 

세계 최고의 기량을 갖춘 선수들이 모인 LPGA투어는 숲으로 보면 온갖 맹수들이 우글대는 아프리카 초원이거나 열대지방의 밀림이다. 최고의 포식자인 사자나 호랑이라고 해서 풍요한 삶만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고 포식자라 해도 때론 굶주리고 하위 포식자에게 공격을 당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LPGA투어에서도 최고의 기량을 가진 선수들이 우승을 독점할 수는 없다. 선수 개개인의 생체리듬과 생존 비법에 따라 우승컵을 나눠 갖는다. 우승컵을 만져보지 않고도 상금을 쌓으며 만족한 정글생활을 이끌어가기도 한다.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제위기간을 보낸 아니카 소렌스탐이나 로레나 오초아의 경우는 예외적이다. 이들의 뒤를 이을 것 같았던 청 야니나 스테이시 루이스가 우승과 인연이 없는 보통선수로 추락한 것은 LPGA무대가 약육강식(弱肉强食)보다는 적자생존(適者生存)의 법칙이 더 통하기 때문일 것이다. 


LPGA투어 선수들의 생존 스타일은 다양하고 개성적이다.

군계일학의 기량으로 우승을 독식할 것 같은 선수, 초기에 발군의 실력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다 무대 뒤로 밀리는 선수, 자신의 특장만 고집하다 도태 당하는 선수,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자신만의 비장의 무기로 위기를 돌파해나가는 선수, 돋보이진 않지만 꾸준한 실력으로 자신의 위치를 지키는 선수, 반짝 빛났다가 흔적 없이 사라지는 선수, 버텨내기 벅찰 것 같은데 용케 퇴출되지 않는 선수 등등.

28일(한국시간) 미국 미시건주 앤아버의 트래비스 포인트 컨트리클럽에서 막을 내린 LPGA투어 볼빅 챔피언십에서 통산 네 번째 우승컵을 차지한 호주교포 이민지(22)는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스타선수는 아니지만 꾸준한 기량으로 선두그룹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선수 중 하나다.

주니어시절부터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21)와 함께 남반구를 대표하는 골퍼로 주목을 받은 이민지는 프로에 들어와서는 리디아 고의 빛에 가렸다. 2015년 LPGA투어에 들어와 통산 4승을 거두었다면 대단한 것인데도 최연소 세계랭킹 1위 등극에다 통산 15승이란 화려한 리디아 고의 성적에 가려 도드라져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그의 경기 스타일이나 경기를 즐기고 경기 결과에 크게 연연해하지 않는 태도 등으로 미뤄 리디아 고, 전인지, 유소연, 김세영 등과 함께 LPGA투어 무대에서 롱런이 가능한 선수 중 하나다. 

 
이런 이민지와 우승 경쟁을 벌여 한 타 차이로 준우승한 김인경(30)의 경우는 경탄의 대상이다. 김인경은 4타 차이를 극복하고 공동선두까지 올라가 연장 승부를 기다렸으나 이민지가 마지막 홀에서 버디를 하는 바람에 US여자오픈을 앞두고 컨디션을 긍정적으로 끌어올린 것에 만족해야 했다.

세계 골프팬들에게 김인경은 박세리와 함께 LPGA투어를 개척한 김미현, 장정만큼 불가사의 한 존재다.

161cm의 단신에 단타자임에도 상위권을 유지하며 지난해 브리티시 여자오픈 우승을 비롯해 통산 7승을 올렸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특히 2012년 메이저대회인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마지막 라운드 마지막 홀에서 30cm밖에 남지 않은 퍼트를 놓쳐 연장전에서 유선영에게 패한 뒤 ‘비운의 골퍼’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5년여의 길고 어두운 터널 속에 갇혀 나락을 헤매던 그를 두고 골프전문가들은 재기가 불가능할 것으로 내다봤으나 김인경은 긴 터널을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만 숍라이트 LPGA 클래식, 마라톤 클래식에 이어 메이저대회인 리코 브리티시 여자오픈까지 우승하며 화려한 컴백쇼를 펼쳤다.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도와 동남아 명상센터를 찾고 요가에 심취하는 등의 각고의 노력과 신체적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한 부단한 자기단련을 통해 아무도 쉽게 넘볼 수 없는 선수로 변한 것이다. 30의 나이에 누가 이런 부활을 꿈꿀 수 있을까 싶다.

다가온 US여자오픈에 출전할 선수들이 어떤 생존 비법을 갖고 경기에 임하는지 관찰하는 것도 흥미 있는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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