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비와 김아림. 사진=골프한국

[골프한국] 골프를 잘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것과 실제로 골프를 잘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20일 강원도 춘천 라데나 골프장에서 열린 KLPGA투어 두산 매치플레이 챔피언십 결승전은 골프의 이 같은 모순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세계랭킹 1위 박인비(30)와 시드번호 35번인 김아림(23)이 펼친 결승전은 골프란 뛰어난 신체조건이나 교과서적인 스윙 메커니즘, 비거리 등이 결정하는 스포츠가 아님을 보여주는 훌륭한 실증사례였다.

뛰어난 신체조건이나 이상적인 스윙 메커니즘 등이 골프를 잘 하는 데는 유리한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골프를 지배하는 것은 기량 20%, 정신력 80%’라는 잭 니클라우스의 명언이 골프 철리(哲理)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골프에서 승리란 기량을 높이는데 필요한 조건 외의 다양한 요소들이 긍정적인 화학반응을 일으켜 이상적으로 조화될 때에 얻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신력 80%’는 단순히 정신력의 영역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타고난 조건과 터득한 기량 외에 나와, 나와 관련된 것들과의 조화와 선순환을 극대화활 수 있는 능력들을 망라해서 편리하게 묶은 것이다.

마음의 평정, 자존감, 자기신뢰, 부족한 점을 보완하려는 끝없는 노력, 천변만화하는 주변의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강한 정신력 등이 ‘정신력 80%’의 영역에 포함된다고 보면 된다. 
 

메이저대회 7승을 포함해 LPGA투어 통산 19승을 올린 세계랭킹 1위 박인비의 존재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골프선수로서 그의 조건은 결코 이상적이거나 교과서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승까지 올라오면서 그와 맞붙은 선수들(최혜용, 최유림, 정연주, 김혜선, 박채윤, 최은우)의 신체조건이나 스윙은 그보다 더 좋아보였다. 

유연한 스윙을 하기 곤란한 체격조건, 4분의3 스윙에 가까운 스윙 메커니즘. 짧은 비거리 등은 오히려 골프선수로서 불리한 요소들이다.

그럼에도 박인비는 불리한 요소들을 자신에게 맞게 변형시키고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능력을 키워 아무도 넘보기 힘든 경쟁력을 갖춘 선수로 인정받고 있고 이번 대회에서 경쟁력의 실체를 실제 경기로 입증했다. 
 

이에 반해 박인비와 결승에서 붙은 김아림은 일반 골프팬들에게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았다. 골프팬들은 김아림을 잘 알지 못했고 그동안 눈에 띌만한 성적을 내지도 못했다.  

2013년 KLPGA에 들어와 2015년 드림투어에서 2승을 올렸지만 1부 투어로 올라와서는 지난해 팬텀클래식 공동 3위, 올 시즌 NH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의 3위가 가장 좋은 성적이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그는 LPGA투어의 강자를 연상케 했다. 175cm의 장신에 골프하기 좋은 근육으로 다듬어진 체격, 흠잡을 데 없는 스윙과 올 시즌 KLPGA투어 평균 드라이브샷 거리 1위(262야드)에 오를 만큼 장타까지 겸비했다.

이지현2, 김지현, 나다예, 안나린, 김자영2, 이승현 등 강자들을 차례로 꺾은 그는 이번 대회 참가선수 중 결승에서 박인비와 만날 자격을 얻을 만한 선수로 손색이 없었다.

실제 경기에서도 두 선수는 LPGA투어에서의 수준 높은 경기를 재현했다. 박인비야 평소 하던 대로 하면 되었지만 KLPGA투어에서도 대세의 대열에 끼지 못했던 김아림은 세계랭킹 1위 앞에서 주눅 들거나 겁에 질릴 만도 한데 당당했다. 파워풀한 스윙이나 꼿꼿한 자세로 걷는 모습은 박인비보다 고수처럼 보일 정도로 포스가 느껴졌다.
 컨시드를 주는 태도에서도 고수에 대한 예의를 지키며 상대방의 실수를 바라지 않는 대범함을 보여주었다.

아이언 샷과 퍼팅에서의 정교함이 박인비에 약간 밀렸을 뿐 다른 것은 우월해보였다. 대선수와 살얼음판 같은 경쟁을 벌이면서도 위축되거나 불안해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승부를 마지막 홀까지 끌고 갔다는 것은 그의 정신력 또한 예사롭지 않음을 증명했다. 경험이 더 축적되고 자기신뢰가 굳어지면 KLPGA투어의 대표주자가 될 만했다. 

중계방송의 해설가가 한 “여왕벌이 센 말벌을 만났다”는 코멘트가 실감날 정도로 김아림은 인상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이번 대회에서 박인비는 국내 대회에서 우승을 못하는 징크스를 떨쳐낸 귀한 수확을 얻었다. 2008년 처음 KLPGA 투어에 참가한 이후 국내에서 벌어진 LPGA투어를 포함해 29번 도전 끝에 맛본 소중한 첫 우승이다.

국내선수들에겐 불리한 신체조건이나 제한된 스윙 메커니즘으로도 자신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대선수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증명해보이고 스스로 자신을 더욱 신뢰하는 귀중한 계기가 되었다.

좋은 조건을 갖추고도 그동안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던 김아림으로선 박인비와의 인상적인 경기로 ‘진흙 속에서 발견된 진주’로 인정받는 좋은 기회를 잡은 셈이다.

KLPGA투어에서의 성공을 담보함은 물론 LPGA투어를 향한 꿈도 남의 얘기가 아님을 실감할 수 있었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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