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골프한국
[골프한국] 라운드 내내 스코어에서 해방되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

한두 홀 스코어를 기록하지 않는 경우는 가끔 경험한다. 캐디가 어떤 방식으로 첫 홀 스코어를 기록할 것인가 답을 얻기 전 스코어 기재를 잠시 보류하는 경우다. 스코어를 철저하게 기록하라든가, 첫 홀은 ‘일파만파’ 혹은 ‘무파만파’로 적으라든가, 트리플 보기 이상은 적지 말라는 주문을 기다리는 것이다. 캐디는 4명의 스코어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기에 주문에 따라 한두 홀쯤의 스코어는 금방 적어낼 수 있다.
일행 중 누군가가 “스코어는 정확히 기록해 달라.”고 주문하지 않는 한 캐디는 대개 첫 홀은 ‘올 파’로 적고 두 번째 홀부터 스코어를 제대로 기재하는 게 주말골퍼들의 관행이다.
 
모처럼 주중 라운드를 했는데 세 번째 홀까지 카트 핸들에 끼워져 있는 스코어카드에는 이름 외에 아무 표시가 없었다.

혹시 스코어를 잘못 기억하지 않을까 걱정해서 캐디에게 ‘왜 스코어를 안 적느냐?’고 물으려다 입을 다물었다. 일행 누구도 스코어카드에 눈길을 주기 않았기 때문이다. 스코어를 어떻게 적으라는 요구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더블 보기나 트리플 보기를 해도 별로 개의치 않는 분위기였다. 가벼운 내기도 없어 스코어를 따질 필요도 없었다.

동반자들은 모두 구력이 30년 이상 됐지만 나이도 그만큼 들어 스코어보다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비중을 두고 있었다. 필자 혼자 티 나게 스코어를 제대로 기록하라고 주문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너 댓 홀을 지나자 캐디가 아예 스코어카드를 치워버렸다. 현명한 캐디가 내기도 하지 않고 기량 차이도 심해 스코어 경쟁을 하지 않는 팀이라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일행의 스코어에 대한 무관심은 마지막 홀까지 이어졌다. 캐디가 스코어를 적지 않았으니 스코어카드를 줄 필요도 없었다. 일행 중 누구도 “나 오늘 얼마나 쳤지?”하고 묻지 않았다.
 
물론 엄격하게 룰을 지키고 정확하게 스코어를 기록하는 라운드가 주는 긴장감이나 짜릿함, 집중도는 없었지만 스코어 프리 라운드를 통해 나름 흔치 않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맛볼 수 있었다.

나이 탓을 하며 규칙에 관대해지고 멀리건 인심도 후했다. 그린에서도 웬만한 거리면 오케이였다. 라운드 중에 술을 마신 탓인지 일행의 샷에 대한 칭찬이 많았고 미스 샷을 날리고도 쉽게 잊었다. 라운드 내내 일행의 굿 샷에 박수를 치고 엄지를 치켜드는 일이 많았다. 마지막 홀을 마치고 모자를 벗으며 악수를 나누는 표정이 한결같이 행복해보였다. 한 분은 홀을 벗어나며 “이렇게 기분 좋은 라운드는 처음”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나는 내 스코어를 대충 짐작하고 있어 동계훈련의 효과가 나타난 것에 만족했고 굿 샷보다는 미스 샷이 많았던 동반자는 자신의 문제점을 찾아냈다는 데 의미를 주기도 했다.
 
스코어 프리 라운드가 정도(正道)는 아닐 것이다.

스스로 감독관이 되어 골프 룰을 지키며 동반자를 배려하고 최선을 다해 플레이하는 것이 골프의 정도라면 스코어 프리 라운드는 어찌 보면 변칙에 가깝다. ‘좋은 게 좋다’는 식의 후한 인심은 순간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만들어내지만 골프가 갖는 고도의 집중의 묘미, 팽팽한 긴장감, 스코어 개선을 통한 기량의 발전, 끊임없이 나타나는 과제에 대한 해결능력 모색의 즐거움을 빼앗아가기 십상이다.

그러나 남용만 되지 않는다면 매우 유용한 라운드 방법이 될 만했다. 스코어 경쟁을 할 필요가 없거나 나이나 신체적 조건 때문에 엄격한 룰 적용이 어려운 경우라면 스코어로부터 해방되는 라운드는 동반자 모두를 즐겁게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기량이 뛰어나고 스코어경쟁이 습관이 된 골퍼라 해도 1년에 두어 번 스코어로부터 해방된 라운드를 해보면 또 다른 골프의 묘미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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