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히오 가르시아가 마스터스 골프대회 2라운드에서 컷 탈락하며 경기를 마치는 모습이다. ⓒ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주말골퍼라도 스코어카드에 트리플(triple) 보기나 쿼드러플(quadruple) 보기가 기록된 라운드는 악몽으로 남는다. 보기나 더블 보기만 해도 큰 실수로 받아들이는 프로골퍼가 귀에도 낯선 ‘옥튜플(octuple) 보기’란 상상할 수 없는 스코어를 기록한 심정이 어떨지는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아마추어로선 프로선수가 정규타수보다 8타나 더 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납득이 안 간다.

지구촌 최고의 골프제전 마스터스 대회에서 지난 대회 우승자 세르히오 가르시아(38·스페인)가 옥튜플 보기를 기록, 아마추어 골퍼들에게 그런 용어가 있다는 것과 함께 편치만은 않는 위안을 주었다.
 
가르시아는 지난 6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제 82회 마스터스 토너먼트 1라운드 15번홀(파5, 530야드)에서 무려 8타를 잃는 옥튜플 보기를 했다.

그는 2오버파 상태로 15번 홀 티 박스에 섰다. 투 온이 가능하지만 그린 앞뒤로 연못이 있어 집중을 필요로 하는 홀이었다.

티샷은 322야드를 날아 페어웨이 좌중간에 잘 떨어졌다. 핀까지 거리는 206야드. 투 온이 가능했다. 가르시아는 6번 아이언으로 투 온을 노렸으나 볼은 그린 앞 연못에 빠졌다. 1 벌타를 받고 볼을 드롭한 가르시아는 웨지로 네 번째 샷을 했으나 다시 연못에 빠졌다.

핀 위치로 봤을 때 볼이 그린에 올라가더라도 백 스핀이 걸리면 연못으로 굴러들어갈 위험이 많았으나 계속 웨지를 고집했다. 여섯 번째 샷, 여덟 번째 샷, 열 번째 샷도 그린에서 뒤로 굴러 연못에 빠졌다. 모두 다섯 번이나 볼을 수장시켰다.

12번째 샷을 핀에 붙여 1퍼트로 끝낸 그의 이 홀 스코어는 8오버파 13타. 마스터스 역사상 가장 많은 스코어와 타이기록이다. 1978년 나카지마 추네유키가 13번 홀에서, 1980년에 톰 와이스코프가 12번 홀에서 옥튜플 보기를 기록했다. 

첫 라운드를 9오버파, 참가자 87명 중 85위로 끝낸 가르시아는 2라운드에서도 6오버파로 부진, 두 라운드 합계 15오버파란 치욕적인 스코어로 컷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이 홀은 ‘Firethorn 홀’이란 이름이 붙어 있다. firethorn은 장미과 피라칸타(pyracantha)속의 관목으로 보통 피라칸타로 알려져 있다. 줄기에 가시가 있고 백색 또는 황백색의 꽃을 피우고 빨간 열매가 열린다. 가르시아가 이 홀이 가시를 숨기고 있는 줄 모르고 탐스런 열매를 탐내다 혼이 난 셈이다.   
 
15번 홀에서의 가르시아는 영락없이 케빈 코스트너가 분한 영화 ‘틴컵(TIN CUP)’의 주인공 로이 매커보이를 닮았다.
텍사스 주의 시골 드라이빙 레인지의 레슨프로인 주인공이 우여곡절 끝에 US오픈에 출전, 목전에 둔 우승을 놓치면서도 자신만의 플레이를 펼치는 모습을 감동스럽게 보여주는 보기 드문 골프영화다.
지역 선발전을 거쳐 간신히 US오픈에 참가한 주인공은 마지막 라운드 마지막 홀을 남기고 공동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18홀에서 그의 드라이브 샷은 잘 날아가 그린까지 237야드를 남겨두고 있었다. 어렵지 않게 우드로 2온을 노릴 만하나 그린 앞에 연못이 입을 벌리고 있어 대부분의 선수들은 3온의 안전한 길을 택했다.
 
주인공은 지난 3라운드 내내 이곳에서 2온을 시도했다가 모두 공을 물에 빠뜨렸다. 동반자는 안전하게 아이언으로 호수에 못 미치게 볼을 보냈다.
캐디는 안전하게 보낼 것을 권했으나 주인공은 3번 우드를 뽑아들었다. 볼은 멋지게 날아 그린에 떨어졌으나 백스핀이 걸려 뒤로 구르더니 연못으로 빠지고 말았다. 여전히 그에겐 연못 뒤에서 어프로치샷으로 볼을 핀에 붙이기만 하면 플레이오프에 나갈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자리에서 다시 볼을 드롭해 4타째를 쳤다. 볼은 연못에 빠졌다. 6타째 친 볼 역시 연못에 빠졌다. 아나운서와 해설위원은 무모한 모험을 포기하지 않는 주인공의 행동에 조롱과 경멸 섞인 코멘트를 하며 중계하고 있었으나 갤러리들로부터는 환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주인공은 계속 그 자리에서 3번 우드를 휘둘러 모두 5개의 볼을 연못에 수장시켰다. 12타째로 친 여섯 번째 볼은 그린 위 핀 바로 앞에 떨어져 2m 정도를 굴러 홀인 되었다. 홀에서 볼을 빼낸 주인공은 다섯 개의 볼을 삼킨 연못으로 그 볼마저 던져버리곤 갤러리들의 환호에 손을 흔들며 그린을 벗어났다.

“잘 해냈어요. US오픈 우승자는 5년만 지나면 다 잊혀 지지만 당신은 영원히 잊혀 지지 않을 거예요.”
주인공은 이런 말을 하는 여자 친구를 강하게 포옹하고 주위에선 환호와 갈채가 쏟아진다.
 

세르히오 가르시아가 무엇에 홀린 듯 같은 실수를 되풀이했듯 PGA투어 역사상 터무니없는 스코어를 낸 선수들의 공통된 특징은 고집스럽게 자신이 선택한 방법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11년 4월 발레로 텍사스오픈 1라운드 9번 홀(파4)에서 케빈 나는 티샷을 숲속으로 날려보내면서 무려 16타 만에 홀 아웃을 했다. 존 댈리는 1998년 베이힐 인비테이셔널 대회에서 파5홀을 18타로 마쳤는가 하면 레이 아인슬리라는 선수는 1938년 US오픈에서 파4홀을 19타 만에 벗어났다.

프로 19년차에, PGA투어 통산 10승, 국제대회 21승 등의 베테랑 프로도 이처럼 한번 구렁텅이에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는데 최악의 경우 더블 파로 막을 수 있는 주말골퍼들로선 여간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참고로 쿼드러플 보기 위로는 퀸튜플(quintuple), 섹스튜플(sextuple), 셉튜플(septuple), 옥튜플(octuple), 노뉴플(nonuple), 데큐플(decuple) 등이 있는데 수를 나타내는 라틴어와 순서를 의미하는 수학용어 tuple이 결합된 것이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저작권자 © 골프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