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골프한국
[골프한국] 캐디의 역할은 하기에 따라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

한마디로 경기보조자 혹은 경기도우미라고는 하지만 원하는 골프클럽을 건네주고 볼을 닦아주는 최소한의 보조자에 머물 수도 있고 어려운 퍼팅라인을 읽어주는 일에서부터, 정확한 클럽 선택, 바른 스탠스 잡기는 물론 스윙과 관련한 간단하지만 중요한 팁을 주고 플레이어에게 용기와 자신을 심어줄 수 있는 코멘트 등 캐디의 능력과 지혜에 따라 무한히 확대될 수도 있다.

프로골퍼들에겐 단순히 경기의 보조자가 아니라 없으면 안 될 절대적 존재다.

봄샘 추위가 어느 정도 수그러든 3월 어느 날 여주CC에서 가진 라운드에서 캐디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인가를 깨닫는 행운을 얻었다.

우리에게 배정된 캐디와의 첫 대면은 평범했다. 골프채가 실린 카트를 찾아가자 꽤 경력이 있어 뵈는 캐디가 목례로 맞았다. 마침 주변에 단체팀이 있어 어수선하기도 있었지만 캐디나 네 명의 일행 모두 서로에게 특별한 느낌을 주고받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볕에 그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수건으로 얼굴 일부를 가렸지만 나이는 꽤 들어보였고 언뜻 푸근한 성격의 소유자처럼 느껴졌다.

동반자 모두 구력이 30년이 넘어 캐디가 일일이 채근하지 않아도 알아서 라운드 준비를 할 줄 알아 캐디는 티오프 순서를 기다리며 간단한 준비운동을 리드하는 정도였다.

첫 홀 티샷을 하고 난 뒤 캐디의 숨겨진 가치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네 명 모두 티샷을 무난하게 날리고 난 뒤 카트를 출발시키면서 캐디는 일행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짱이예요!”하고 덕담을 했다.
“에이, 제대로 날리지도 못했는데 뭘….”
“겨우내 라운드 할 기회도 없으셨을 텐데 모처럼 나오셔서 첫 티샷을 모두 성공하기가 어디 쉬운가요? 그 연세에 대단들 하세요.”

순식간에 일행은 캐디를 좋아할 마음의 태세가 되었고 캐디 역시 일행을 도와주겠다는 자세가 읽혔다.
이름도 김유정이었다. 소설 ‘봄, 봄’ ‘소낙비’ 등으로 널리 알려진 소설가와 같아 친근감이 더했다.
한 홀을 지나자 일행의 비거리와 습성을 금방 파악해 정확히 클럽을 뽑아주었다. 특히 그린 읽어내는 눈이 탁월했다.

일행을 들뜨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멋진 샷에 대한 캐디의 반응이었다.
정말 멋진 샷을 날리거나 어려운 라이에서 퍼팅에 성공하면 기계적으로 ‘굿샷’ ‘나이스 퍼팅’이라고 외치는 대신 “회원님처럼 치시면 온몸에 전율이 와요”라고 말하거나 “회원님보다 제가 더 기분이 좋아요”하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플레이어가 기분이 업 되는 것은 당연한 일. 실수라도 하면 기분이 상하지 않게 조심스럽게 문제점을 찾아내 조언해주기도 했다.  

어느 홀에서는 네 명이 모두 드라이브샷을 페어웨이에 안착시키자 캐디는 “1년에 이런 날 손꼽을 정도예요. 더군다나 매너 좋으시고 룰 제대로 지키시는 팀은 1년에 한번 만날까 말까할 정도고요.”라고 말했다. 

전반전을 끝내고 그늘 집에 도착하자 동반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캐디 칭찬을 했다.
“성격이 밝고 항상 웃는 얼굴이라 우리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더군.”
“좋은 며느릿감이야. 되바라지지 않고 얼굴도 후덕하고 센스도 있고.”
“저런 캐디 만나는 것도 행운이야. 일 년에 한두 번 만날 수 있을까 말까 할 걸.”
모두가 캐디에게 감동을 받은 상태였다.

각자의 게임이 뜻대로 잘 풀리기만 한 것은 아니었지만 겸손하고 예의바르고 지혜로운 캐디의 보조를 받으며 라운드를 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기쁨이란 걸 절감했다.

인코스 출발에 앞서 한 동반자가 경기 진행자를 불렀다.
“높은 사람한테 우리가 김유정씨 엄청 칭찬하더라고 전해줘요. 유정씨 같은 캐디만 있으면 맨 날 오고 싶겠어.”
“뭘요? 제가 오히려 선생님들로부터 많이 배우는데요.”

캐디의 한마디 한마디가 라운드의 분위기를 좋은 쪽으로 몰고 갈 것은 당연했다. 후반으로 접어들자 캐디의 영향 탓인지 스윙도 좋아지고 스코어도 좋아졌다. 캐디가 간혹 던지는 간단한 팁도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 

즐겁게 18홀을 끝내고 장갑을 벗으며 일행은 동시에 캐디에게 손을 내밀었다.
“유정씨 덕분에 모처럼의 라운드가 즐거웠어요. 다음에 또 만날 행운이 있을지 모르겠네.”
캐디는 일행과 악수하며 “오늘 회원님들과의 라운드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다음에 오시면 꼭 다시 모시고 싶어요.”라는 인사도 빼놓지 않았다.

우리가 정말 인상적인 플레이를 했는지, 다시 라운드하고 싶을 정도였는지 의문이 없지 않았지만 미소 띤 캐디에게서 듣는 이 말은 라운드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었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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