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경. 사진=골프한국
[골프한국] 세계랭킹 7위의 프로골퍼 김인경(29)이 한국외대 수업에 나오지 않으면서 전액 장학금을 받아왔다는 보도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보도 내용은 2012년 한국외대 국제스포츠레저학부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한 김인경이 경기일정을 이유로 대부분 수업에 불참해 3차례 학사경고를 받았음에도 장학금을 받아왔고 담당교수가 단 한 번도 출석을 하지 않은 김 선수에게 F학점을 주자 대학당국이 이 교수에게 ‘김 선수의 성적을 올려주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구조로 볼 때 김인경 케이스는 특별할 것이 없다.
한쪽은 간판으로서 학벌이 필요하고 한쪽은 대학을 널리 홍보해줄 수 있는 학생이 필요해서 이뤄진 거래의 전형으로 대학가에선 비일비재한 관행이다.
체육특기생이나 유명연예인은 특별전형을 통해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려있고 대학은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이들 유명인사를 학생으로 유치하는데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아이돌 스타나 유명 스포츠스타가 얼마나 많이 재학 중인가가 그 대학 그 학과의 인기 척도로 인식되기까지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시킨 국정농단의 주역 최순실의 딸 정유라와 관련된 이화여대 학사비리도 권력이 개입되고 대학당국이 조직적으로 관련되었다는 점에서 약간 성격이 다르지만 학벌증명서가 필요한 사람과 이를 이용해 득을 보려는 대학당국의 이해가 맞아 떨어져 벌어진 사건이란 점에선 다를 게 없다.
 
요즘엔 학벌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져 대학 졸업장을 필요로 하는 수요는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반면 경쟁이 치열해진 대학들이 오히려 대학 지명도를 높이고 학생을 더 확보하기 위해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스타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학벌을 미끼로 유명인을 입학시켜 대학 홍보에 활용하려는 상술(商術)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간판으로서 학벌의 필요성을 느껴 대학의 제의에 넘어간 사람에게도 책임이 없지 않지만 이번 사건의 본질은 돈을 적게 들이고 높은 홍보효과를 노리는 대학의 통제받지 않는 유명인 유치 경쟁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대학마다 운영 중인 외부인사를 대상으로 한 최고위과정의 경우 사회 저명인사나 유명 정치인에게 등록금 면제 등의 혜택을 주는 것도 유명인을 내세워 수강생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기업이 유명 골프스타의 의상이나 소지품에 로고나 회사명을 부착하려면 거액의 후원계약을 체결해야 하고 경기 성적에 따라 보너스까지 지급한다.
그러나 대학은 졸업장을 미끼로 소액의 장학금만으로 큰 홍보효과를 거둘 수 있으니 꿩 먹고 알 먹는 셈이다.
유명 프로골퍼들의 경우 학벌의 필요성이 간절해 대학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골프 하는데 딱히 학벌이 필요치도 않고 수업을 받을 시간적 정신적 여유도 없다.

필경 대학 측은 유치 대상 선수에게 학점이나 출석 관련 문제는 대학에서 다 해결해줄 테니 적만 올려두면 장학금도 주고 졸업장도 받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 설득했을 것이다. 프로골퍼로서 마다할 까닭이 없다. 많은 스포츠스타들이 그런 식의 혜택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는 것을 봐왔으니까. 대학 졸업장을 받았거나 재학 중인 대다수의 프로골퍼들이 비슷한 입장일 것이다. 
 
교사자격증에 대한 애착이 각별했던 김효주는 학점에 필요한 리포트를 제출하고 교생실습까지 하는 열성을 보였지만 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이게 적나라한 한국적인 현실이다. 누가 김인경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 것인가.
 
미국의 경우 아무리 유명한 스포츠스타라도 대학에서 특별히 제공하는 특혜는 없다. 골프천재로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은 타이거 우즈가 스탠포드대학에 입학했다가 골프선수와 학업을 병행할 수 없어 결국 중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미국 대학의 예외 없는 엄중한 학사원칙을 보여준다.

대학 입장에선 타이거 우즈가 스탠포드 로고를 달고 경기를 하면 세계적으로 대학을 홍보할 수 있었겠지만 수업에 참여하지도 않고 학점도 채우지 못한 학생에게 졸업장을 줄 수는 없다는 대학의 명예와 자존심을 더 중요하게 여긴 것이다.
스탠포드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한 골프 천재 미셸 위의 경우도 학교 수업을 소홀히 할 수 없어 연습시간을 충분히 내지 못하는 바람에 대학 재학 중 성적이 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대학에서의 공부 덕에 자신을 다양하게 알리는 데 출중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아일랜드계 한국인 아버지와 한국 출신 어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재미동포 2세인 앨리슨 리(한국명 이화현)는 2015년 LPGA투어에 데뷔할 때 촉망을 받았다. ‘필드의 슈퍼모델’ ‘골프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수’등의 별명을 들은 그는 기량도 뛰어나 미셸 위와 함께 LPGA투어에 활력을 불어넣을 차세대 스타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데뷔 후 3년간 학업과 골프를 병행하는 바람에 만족한 성적을 올리는 데 실패했다. 명문 UCLA에서 정치사회학을 전공한 그는 올해 대학을 졸업한 뒤 지난 3년간을 ‘살인적인 스케줄의 연속’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로선 투어 출전권을 유지하면서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것 자체가 성공적이었다. 올 시즌부터 투어에 올인 할 수 있게 된 그의 활약을 기대하게 된다.
 
미국 프로 스포츠의 저력은 대학 스포츠에서 비롯되었다고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의 프로 스포츠 스타들은 대학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진로가 결정된다. 졸업에 필요한 학점 취득이나 규정 출석일수 충족은 기본이다. 미국에서 학업과 운동의 겸업은 극히 자연스런 것이다.

영원한 아마추어로 유일하게 ‘구성(球聖)’이란 극존칭을 듣는 바비 존스(1902~1971. Bobby Jones, 본명 Robert Tyre Jones)는 당대 최고의 골퍼이면서 다양한 분야의 학식을 갖춘 지성파 골퍼의 표본이다.
골프사가들은 당시 4대 메이저, 즉 미국과 영국의 오픈 및 아마선수권을 13회나 우승한 그를 ‘골프황제’ ‘구성(球聖)’으로 칭송했다. 그의 기록이 얼마나 위대한 것이었던가는 4대 메이저대회에 출전했던 기간은 겨우 13년, 그것도 9년은 고교와 대학시절로 평생 출전게임 52회 중 23회를 우승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아마추어 골퍼로 활동하면서 하버드대에서 영문학, 조지아공대에서 기계공학, 에모리대에서 법률을 전공해 변호사자격까지 취득했고 프랑스어, 독일어, 영국사, 독일문학, 고대문화사, 비교문학 등을 공부하기도 했다.
그의 골프전성기는 학업에 열중하던 시기와 일치, 운동과 학문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는 아마투어로 은퇴한 뒤 금융계 친구인 클리포드 로버츠와 함께 1934년 조지아 주 오거스타에 오거스타 내셔널코스를 만들어 마스터스 토너먼트를 개최함으로써 골프팬들의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바비 존스의 전설이 아로새겨진 마스터스 토너먼트를 기다리면서 학벌을 미끼로 대학의 잇속을 채우는 저열한 행태, 이를 못 본체 방치하는 교육당국의 총체적 적폐에 슬픔을 금할 수 없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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