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영이 LPGA 투어 호주여자오픈 우승컵에 입을 맞추고 있다. 사진제공=Golf Australia


[골프한국] 지난해 LPGA투어 진출을 결정하자마자 고진영(22)에겐 ‘슈퍼 루키(Super Rookie)’란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붙었다.
국내에서의 화려한 전적은 제쳐두고 2015년 LPGA투어 메이저대회인 리코 브리티시 여자오픈에서의 준우승, 2017년 LPGA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우승으로 탄탄한 기량이 확인된 터라 골프 전문가들은 그를 올 시즌의 신인 중 최고의 신인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지난해 데뷔하자마자 올해의 선수상, 상금왕, 신인상을 휩쓴 박성현(23)에 버금갈 조건을 두루 갖추어 ‘슈퍼 루키’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았다.

그런 고진영이 ‘슈퍼 루키’를 뛰어넘은 ‘울트라 슈퍼 루키’임을 LPGA투어 데뷔전에서 만천하에 증명했다.

지난 15~18일 호주 애들레이드 쿠용카CC에서 열린 LPGA투어 ISPS 한다 호주여자오픈은 고진영의 화려한 데뷔전을 위해 마련된 특설무대나 다름없었다. 전에 몇 차례 LPGA투어에 참가하고 우승 기록도 있지만 LPGA투어의 멤버로서는 이번 대회가 데뷔 무대다.
데뷔 무대에서 그는 첫날부터 7언더파를 몰아치며 단독선두에 나서 마지막 라운드까지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은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으로 LPGA투어에 비상 사이렌을 울렸다.

일부 선수가 불참했지만 그의 우승을 저지할 만한 선수는 즐비했다. 유소연, 신지애, 최나연, 조정민, 최혜진 등 한국선수는 물론 리디아 고, 이민지, 신지은, 노무라 하루 등 동포선수, 캐리 웹, 캐서린 커크, 하나 그린 등 호주 선수들, 크리스티 커, 모 마틴, 넬리 코다, 브리타니 랭, 브룩 핸더슨, 청 야니 등 고진영의 독주를 막을 선수는 많았다.

그러나 지난해 US오픈에서 아쉽게 준우승한 최혜진만이 3타 차이로 그를 위협했을 뿐 모두 그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신인 동기인 호주의 하나 그린이나 미국의 엠마 텔리 등은 잠시 추격하는 듯하다 그의 변함없는 쾌속순항에 손을 들었다. 최혜진은 박성현, 고진영의 뒤를 이어 조만간 LPGA투어의 무서운 신인으로 등장할 것임을 예고했다. 

페어웨이를 지독히 사랑하는 드라이브샷, 좀처럼 그의 의도를 벗어나지 않는 아이언 샷, 무리없는 퍼팅, 시종일관 흐트러짐이 없는 평정심 등 고진영의 경기는 다른 LPGA투어 동료들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사흘 내내 쿠용카CC를 지배한 그의 모습은 더 이상 강렬할 수 없었다.

그는 67년 만에 신인으로 데뷔전에서 우승하는 역사적 주인공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1951년 미국의 베벌리 핸슨은 신인으로서 LPGA 투어 이스턴 오픈에서 전설의 골퍼 베이브 자하리아스를 누르고 우승했다. 1950년 아마추어로 출전한 LPGA 투어 텍사스 여자오픈에서 우승한 뒤 이듬해 프로 전향한 그는 통산 17승을 기록했다. 고진영이 베벌리 핸슨과 함께 신인 데뷔전 우승이라는 역사적 영예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이 앞으로 그의 골프여정이 심상치 않음을 예고한다.

LPGA투어 데뷔전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기량을 십분 발휘하며 끝내 우승컵까지 거머쥔 요인을 곰곰이 생각해봤다.

경기력은 이미 입증된 바다. 기복 없는 플레이를 가능케 하는 정신력 또한 강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데뷔전에 대비해 충분한 전지훈련도 마쳤다.
LPGA투어에 진출하는 한국선수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언어문제에도 비교적 잘 대비해온 편이다. 3년 전부터 노련한 캐디 딘 허든(54)과 호흡을 맞추며 영어를 익혀왔다. 그럼에도 첫 데뷔전을 치르는 선수가 첫 라운드를 끝낸 뒤 통역 없이 인터뷰에 나선다는 것은 예사 용기가 아니다. 잘하든 못하든 첫 인터뷰를 영어로 하겠다는 용기와 도전정신이 데뷔전 우승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많은 한국 선수들이 진출한지 1~2년 언어장벽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심한 경우 언어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슬럼프에 빠지기도 한다. LPGA투어에 빠르게 적응해 제 기량을 발휘한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의 차이는 기량보다는 언어문제가 8할 이상은 차지할 것이다.

김세영이나 장하나 같은 도전욕이 강한 선수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선수들은 신인일 때 인터뷰할 때 통역을 이용하기 마련인데 고진영은 첫 인터뷰를 통역 없이 소화해냈다. 캐디와 교감하며 영어를 익혔다 해도 미디어와의 인터뷰는 또 다른 문제다. 물론 고진영이 구사하는 영어는 유창함과는 거리가 있다. 문법적으로 맞다 틀리다를 따질 계제도 아니다.

그러나 그는 겁 없이 인터뷰에 응했고 알고 있는 영어로 나름대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다. 나는 고진영의 인터뷰 장면을 보며 속으로 ‘어 저 친구, 큰 일 저지르겠네!’하고 생각했다. 짧은 영어지만 통역 없이 미디어를 상대로 인터뷰에 응했다는 사실, 정리되진 않았지만 알아들으려 하고 말을 이어갔다는 사실, 그러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성공적인 LPGA투어 뿌리내림을 예감케 했다.

인터뷰(Interview)란 말 그대로 서로가 보고 보여주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유창함이나 멋진 어휘가 아니라 자신의 모습과 생각을 상대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다듬어지진 않았지만 내 뜻이 전달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외국어가 서투르다고 내 마음을 전달하지 못하란 법은 없지 않은가.
그에겐 매 라운드 선두에 있었기에 라운드를 마칠 때마다 인터뷰 기회가 찾아왔다. 그의 영어 인터뷰 내용은 라운드를 거칠수록 좋아졌고 자신감이 붙었다. ‘일취월장(日就月將)’의 월까지 갈 필요도 없이 나날이 향상되는 게 보였다. 무엇보다 인터뷰 자체를 즐겼다.

이번 대회는 고진영에게 생애 잊기 힘든 두 가지 값진 경험은 안겼다. 신인으로서 LPGA투어 데뷔전 우승이라는 진기한 기록과 LPGA투어 첫 영어 인터뷰가 그것이다. 우승 경험이 많은 그에게 이번 우승은 진열장에 의미 있는 우승컵 하나를 보탰다는 정도이겠지만 그의 영어 인터뷰는 먼저 LPGA투어에 진출한 선배언니들이 두려워하던 언어의 유리벽을 과감히 깨버렸다는 데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고진영의 LPGA투어 행로를 밝게 보는 것은 바로 그의 도전정신과 용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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